1
달빛이 경경히 비치는 밤. 인희는 하릴없이 방에서 나와 삼각산 자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먼 곳에서 동네 개들이 컹컹 짖는 소리가 아련히 들려온다. 칭얼대던 성현을 간신히 잠재우고 자리에 누웠으나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잠은 오지 않고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흩어져서 바깥으로 나왔던 것이다.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다.
오월의 봄바람은 참으로 감미로웠다. 인희가 지금의 심사만 아니라면 고양이 털 같은 봄바람에 뺨을 비비고 있으련만, 가을 기러기도 아닌 마음이 저 멀리로 자꾸만 흩어져 가서 괜스레 서럽기만 했다.
어찌할 것인가…….
지금 자신의 처지는 어떠한가? 남들에게는 꽃다운 청춘이겠지만 인희는 그것을 누릴 형편도 아니고 자격도 없다. 자신은 누구인가? 한 여인인가? 아기 엄마, 즉 성현 엄마인가? 사장에게 자기는 또 무어란 말인가? 사장 댁 사모님이나 그 딸들에게 자신은 어떤 존재인가?
세상을 너무 힘들게 살아왔던 자기가 또 너무 쉽게 자신을 내어주고 말았다. 이제 자기는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성현이 있는 이상 이제 자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무데도 갈 수 없다. 천형을, 넘지 말아야 할 천계를 스스로 깨뜨린 대가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어제 저녁, 지금 시각이 자정이 넘었으니 이제는 어제가 되는 셈이다. 어제 저녁 늦게 사장이 집에 왔다. 평창동 댁에 가지 않고 몰래 온 것이다. 사장이 그런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인희는 알 수 있었다. 딸들과 함께 낮에 한번 잠깐 다녀간 이후 사장 혼자 이곳에 온 것은 처음이었다. 사장은 성현 옆에서 자고 가겠다고 했다. 인희는 사장에게 평창동 댁으로 가라고 했다. 사장은 아기 옆에서 자기만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나 인희는 완강히 거부했다. 평소 말없이 따르기만 했던 인희의 갑작스런 변화에 사장은 처음에는 당황하여 머뭇거렸으나 인희가 단호한 태도로 재촉하자 하는 수 없이 집을 나갔다. 새벽에 다시 오겠노라고, 목포로 내려가기 전에 아기를 꼭 보고 싶다며 변명하듯이 말하고.
새벽에 사장이 오면 인희는 확고하게 약조를 받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다시는 인희네 집으로 오지 말고 평창동으로 들어가라고. 그것은 사장과 인희뿐만 아니라 성현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평창동 사모님은 지금껏 자신을 관대하게 받아들여 주었다. 그러나 여자의 마음은 다 같은 것. 인희가 송구하다면 사모님은 참혹할 것이다. 인희가 부끄럽다면 사모님은 무참할 것이다. 그런데도 사모님은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그 마음 왜 모르겠는가. 칼로 가슴을 도려내는 그 심정 인간이라면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인희는 보았다. 사모님 얼굴에서, 인희를 볼 때마다 은은히 미소 짓는 그 모습에서 인희 자신을 본 것이다. 인희는 지금껏 남들에게 끌려다녔다. 그때 인희의 마음은 나약함이 아니라 자포자기였다. 자기 스스로는 헤어나오거나 결단할 수 없는 무심의 상태. 인희는 안다. 그런 상태에서 인희가 늘 꿈꾸었던 것, 그것은 죽음이었다. 인희는 사모님을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안 된다고. 제발, 제발 그것만은 안 된다고. 그러나 인희로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단 하나, 인희는 낮이 가면 밤이 오고, 밤이 진해지면 새벽이 오듯이 그렇게 인희가 흘러가야 할 길을 알고 있었다. 인희가 늘 했던 것. 떠나는 것이다. 그것만이 사모님이 살고, 인희도 아기도 사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새벽이 되면 사장이 올 것이다. 그리고 다시 사장이 떠나고 나면 인희는 늘 그렇듯 사라져야 한다.
2
도현은 분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학교로 갔다. 하루 종일 그 생각이 머리를 사로잡아 공부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면 영어와 수학 과외를 받아야 한다. 마음은 당장이라도 성현네로 달려가 인희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당장 떠나버리라고. 아빠를 돌려주고 자기 가정 근처에는 얼씬도 말라고.
도현이 과외 선생님 집으로 가까이 다가가는데 그 집 대문에 선생님이 나와 있는 게 보였다. 선생님도 도현을 보고 급히 달려온다.
웬일이지? 도현은 어리둥절했다. 선생님은 숨을 헐떡이며 도현 앞에 선다. 얼굴이 새하얗게 변해 있다.
“도, 도현아, 빨리 집에 가봐야 돼. 얼른.”
“왜, 왜요?”
“아무튼 빨리 가봐. 어머니가……. 어머니가 병원에 실려가셨어. 빨리…….”
도현은 숨이 넘어가는 것 같았다.
성진운수와 성진실업, 성진건설의 대표이사이자 성진빌딩 소유주이며 목포 남도관광호텔과 서귀포 남해관광호텔 대표이사이기도 한 김평수 사장의 부인 되는 민성희 여사가 향년 45세로 영면했다. 사인은 약물과다복용. 고인은 부군과 1남4녀를 세상에 남겼으며, 장지는 이천김씨 종친 선산이고 장례식장은 서울대학교 영안실, 발인은…….
그날 도현은 과외 선생님이 잡아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달려갔다. 집에는 일하는 아주머니가 사색이 되어 울면서 도현을 맞았다. 아주머니의 말에 의하면 이러했다.
그날 아침에 그동안 성현 때문에 양쪽 집 왔다갔다 하느라 고생했다며 아주머니에게 집에 가서 며칠 쉬라고 민 여사가 말하며 보냈다. 그러나 아무래도 마음에 놓이지 않는 일이 있어서 오후에 아주머니가 집에 돌아와서 안에 들어갔다. 그러나 집안이 너무 조용하기에 무심코 안방 문을 열었다가 방바닥에 쓰러져 있는 민 여사를 보았다는 것이다. 그 옆에는 편지봉투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아주머니는 너무 놀라고 또 예감도 안 좋아 거실로 뛰어나와 곧바로 큰고모에게 전화를 했다. 김 사장과 같은 평창동에 사는 큰고모가 경찰과 병원에 연락해서 앰뷸런스를 보냈는데 그때는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였고, 가까운 병원에 실려갔지만 곧바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큰고모가 병원에서 집에 있는 아주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딸들에게 연락하라고 말해서, 아주머니는 전화번호 적어둔 노트를 뒤져 딸들의 주변인물들에게 할 수 있는 대로 다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그러나 도현이 집에 도착할 때까지 딸들과 아무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도현이 가장 먼저 집에 온 것이다. 그 다음 바이올린 교수 집에서 달려온 셋째언니 미현, 첫째인 수현은 데이트 약속이 취소되었다고 투덜거리면서 저녁에 들어왔고, 둘째 지현은 미팅에 갔다가 밤 10시 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남편인 김평수 사장은 밤늦게까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서울의 회사 사무실이나 목포와 서귀포 호텔에서도 사장의 행방을 모르고 있었다. 하루 종일 어떠한 회사에 오지도 않고 연락도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밤 11시경 목포 호텔에서 서울대병원 영안실로 전화가 왔다. 그때서야 사장이 호텔에 나타났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희. 도현이 집에 가서 어머니가 병원에 실려갔다는 말, 그리고 병원에서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병원이 아니라 인희의 집이었다. 아주머니가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눈물이 범벅이 된 채 택시를 잡아타고 인희의 집으로 갔다. 한옥집 대문을 마구 두드리자 주인 할머니가 나왔다. 도현의 모습을 보고 할머니가 놀라서 주춤하고 있는 사이, 도현은 집 안으로 들어가 뒤채로 뛰어갔다. 인희와 성현이 사는 방으로. 방 문을 와락 열어젖뜨리고 들어가 보았으나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바닥에 편지봉투 하나만 덩그마니 놓여 있을 뿐.
주인 할머니가 놀란 얼굴로 달려와서 방 안에 들어간 도현을 보고 설명을 해주었다. 오늘 아침에 사장이 잠시 다녀갔고, 그 얼마 후 새색시가 아기와 함께 떠나면서 할머니에게 인사를 했다고. 그동안 감사했다며. 도현은 편지봉투를 찢어서 열었다. 편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그동안 사장님 댁에 큰 폐를 끼쳐서 미안하며, 성현을 데리고 아주 먼 곳으로 떠나겠노라. 그리고 자신이 떠나는 것은 사장님 의사와는 관계없이 자신이 내린 결정이며, 다시는 사장님은 물론 평창동 댁에 피해가 가지 않게 하겠다고.
도현은 편지를 박박 찢었다. 울면서. 통곡하면서. 엄마를 살려내라면서.
도현은 장지에 가지 못했다. 장례식장에서 발광을 하다시피 해서 결국 병원에 입원하고 말았다.
셋째인 미현도 병원에 입원한 도현을 돌보기 위해 장지에 가지 못했다. 처음에는 고모 중 한 사람이 남기로 했었는데, 도현이 고모들을 보면 더 발광을 해서 미현이 남게 된 것이다.
둘째인 지현은 자신이 미팅에 나갔다가 늦게 돌아온 것에 대한 죄책감이 너무 커서 거의 실신상태가 되었다. 부축을 받아가며 장지에 갔지만 관 위에 엎드려 붙잡고 놓지 않고 우는 바람에 하관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영안실에서 졸습을 할 때도, 그리고 소렴과 대렴 때도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하관 뒤 동방개를 덮고 흙은 내릴 때는 묘 안으로 뛰어들려 해서 주변 사람들이 진땀을 뺐다.
맏이인 수현은 그래도 몸을 가누고 맏상제 노릇을 하며 아버지 대신 장례 전반을 이끌어 갔다.
아버지 역시 정신이 반쯤 나가 거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고, 장례 내내 멍하니 앉아만 있어서 혹이나 변고라도 일어날까 주변에서 감시하고 살피고 했다.
고모와 고모부들, 외사촌 오빠와 누이들, 시골에서 올라온 친척들, 그리고 회사의 간부들이 주가 되어 장례를 치렀다.
영구차가 선산 앞에 서자 온갖 꽃으로 치장한 상여가 기다리고 있었다. 상여를 앞세우고 선산으로 올라가는 긴 행렬에는 수많은 만장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상여 앞에는 방상씨, 그리고 그 뒤로 명정과 공포를 높이 올리고, 단강과 장강 위에 꽃가마를 올려서 앙장 밑에 유소와 보장을 달았다. 상여 앞뒤로는 불삽과 운삽이 들려 있었다.
“엄마, 이렇게 많은 행렬이 꽃가마를 뒤따르고 있어. 외롭지 않지?”
두 딸은 상여를 뒤따르며 울었다.
“우리는 울어도 엄마는 울면 안 돼, 알았지? 엄마가 울면 우리는 견디지 못해. 제발 울지 마.”
서울에 남겨진 두 딸도 그 행렬에 끼어들었다. 마음으로 상여 뒤에 바짝 붙어 갔던 것이다.
“엄마, 엄마. 혼자 가지 마. 나도 같이 갈래. 혼자만 죽으면 안 돼. 절대 안 돼. 죽지 마…….”
긴 상여 행렬이 장지에 도착하자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호상이 아니니 이렇게는 할 수 없다 저렇게는 할 수 없다 하며 베옷 상복 입지 않은 종친들이 시비를 걸었기 때문이다.
종친들의 요구대로 까다로운 절차를 거친 뒤, 집사자의 지시에 따라 나무깃대를 회격 위에 가로로 걸친 뒤 밧줄로 관을 내렸다. 그 이후 동방개를 덮고 나서 흙을 덮을 때 지현이 통곡을 하면서 뛰어들려 했던 것이다.
3
도현은 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다. 자다가 헛소리도 심하고 발광도 하며, 밥도 잘 먹지 못하고 사람들과 대화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중학교 3학년.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휴학을 하기로 결정했다.
미현은 그래도 강했다. 동생 도현도 잘 보살피고 학교도 정상으로 다녔다. 그러나 집에만 오면 울었다.
지현은 집에서 도현과 아버지를 돌봐야 한다며 휴학했다. 대학 들어가자마자 몇 개월 안 되어 학업을 중단한 것이다.
수현은 국문과에서 경영학과로 옮기겠다고 했다. 아버지를 이어 회사를 이끌어 가겠다는 것이다.
김평수 사장은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고 바깥출입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목포 호텔은 결국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겉으로 나타난 이름은 엉뚱한 사람이지만 그 뒤에는 강 회장이라는 족제비가 있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서귀포 호텔은 아직 건재했다. 물론 겉으로만. 처음 예상한 것보다 서귀포 인근의 관광지 개발계획이 늦어지면서 호텔 역시 사업전망이 그리 밝지 않았다. 족제비 강 회장은 처음에는 서귀포 호텔을 노렸을 것이다. 그러나 사태가 예상과 다르게 돌아가자 얼른 서귀포를 포기하고 목포로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결국 김평수 사장은 사업성이 차츰 나아지고 있는 목포를 빼앗기고 빚만 잔뜩 쌓인 서귀포를 떠안게 되고 말았다. 그런 중에도 다행인 것은 서울의 다른 기업들은 피해가 적었다는 점이다. 대학과 고등학교 동창들의 도움을 얻어 정치권에 줄을 대서 한 실세 국회의원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덕분이었다. 그 이후 김 사장은 그 국회의원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함께 외국에 자주 다니곤 했다.
목포 호텔의 매니저인 김 상무는 서귀포로 이동했다. 무척 성실하고 실력도 인품도 지니고 있어서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호텔을 그런대로 이끌고 나갔다.
이렇게 잠시 혼란의 시기가 있었지만 김 사장의 사업은 대체로 평온이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면 집안 사정은 어떠할까?
우선 막내 도현은 정신과 치료도 받고 집에서 고모와 언니들의 보살핌도 받아 다소 안정이 되었다. 그 해 겨울에는 서귀포 호텔로 가족이 모두 여행갈 때 동행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미현은 악착같은 데가 있어서 학교생활도 집에 와서도 두루두루 잘 해내고 있었다.
지현은 많이 힘들어 하기는 했지만 아주머니와 함께 집안일을 그런대로 잘 이끌어 갔다. 특히 막내 도현에게는 아주 좋은 친구이자 의사이자 엄마였다.
수현은 전과를 하기 위해 영어를 비롯한 몇몇 군데 학원을 쫓아다니며 꿋꿋이 버텨가고 있었다.
아버지인 김평수 사장은 한동안은 풀이 죽어 있었지만 다시 기운을 차려 회사에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경영에서는 대부분 손을 떼고 회사 간부들에게 맡겼다. 그 대신 예전에는 거의 나가지 않던 동문회 같은 모임으로 발걸음이 잦았다.
인희는?
아무도 모른다. 어디에서도 소식이 오지 않았다.
성현은?
아무도 찾지 않았다. 아니,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 언젠가는 그 문제가 불거지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내색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해 성현은 딸만 많은 이 집안 가문의 오대독자다. 배 다른 자식이긴 하지만.
그러나 어떻든 이러한 상태에서도 도현의 집은 외적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흘러갔다.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