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사자 업무 방해

by 이영진

2024, 수필춘추 여름호 기재


저승사자 업무 방해


이영진


“야, 인마. 빨리 올라와.”, “알았어, 알았다니까. 요거 한 컷만 더 찍고.”

1983년 여름. 동기, 후배들과 한라산을 올랐다. 아침 일찍 서둘렀는데, 동기 중 한 녀석이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아 첫차를 놓쳤다. 다음 차는 한 시간 뒤, 하늘을 보니 구름이 심상찮았다. 한라산 정상은 이미 구름에 가려있었다. 다른 녀석들은 바다 건너 낯선 땅에 온 것만으로도 한껏 들떠 있었다. 아무 일 없이 잘 갔다 올 수 있을까?

시외버스에서 내려 성판악 코스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지루한 코스지만 가장 빨리 오를 수 있고 교통편이 좋아 이쪽 길을 택했다. 가파르진 않아도 계속된 오르막이라 군사 훈련으로 다져진 장교 후보생들에게도 힘에 부쳤다.

몇 번 올랐던 경험이 있어, 내가 앞장을 섰다. 가는 곳마다 사진 찍느라 시간이 지체되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가야 한다며 재촉해도, 남는 건 사진뿐이라며 귓등으로 들었다. 정상에 오르니 곧 비가 올 것 같아 바로 하산을 서둘렀다. 한 녀석이 없어 소리쳐 찾으니 야생화 찍는다고 저 밑 백록담에 내려가 있었다. 한참 후에야 올라온 놈에게 두 번 다시 개인 행동하지 말라고 따끔하게 경고했다.

하산 길이 문제가 될 것 같았다. 예정했던 관음사 쪽이 아닌 성판악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했더니, ‘남자가 쩨쩨하게 뭔 소리냐.’, ‘미래의 육군 장교가 이 무슨 비겁한 행동인가.’ 하며 벌떼같이 대들었다. 특히, 시간을 지체시킨 두 놈이 한술 더 떴다. “딴소리하지 마라. 왔던 곳으로 다시 간다. 비 오면 관음사 코스는 더 미끄럽고 위험하다, 안전이 우선이다. 여긴 내 고향이고, 너희를 무사히 데리고 내려가는 것도 내 임무다.” 강력하게 주장하니 모두 수긍했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니,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졌다. 우려했던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비 피할 곳이 없어, 진달래밭을 1시간가량 거의 뛰다시피 내려왔다. 숲이 시작되는 곳에 간이 대피소가 보였다. 잠깐 비도 피하고, 한숨 돌리려 들어갔다. 그곳엔 우리 또래 여자 셋이 추위에 떨고 있었다. 산에 대한 지식이라곤 전혀 없었는지 청바지, 운동화 차림이었다. 거기다 먹을 것도, 물도 없었다. 일단 우리 것을 나눠주고, 웃옷을 벗어 체온 유지를 위해 건네주었다. 소중한 시간이 계속 지연되었다. 점점 어두워져 더는 머물 수 없었다. 셋 중 둘은 그나마 걸을 수 있지만, 한 여자는 저체온증 때문인지 입술은 파랗고 양다리에 쥐가 나서 도무지 걸을 수가 없었다. 당시엔 지금처럼 휴대 전화가 없어 위급상황을 알릴 방법이 전혀 없었다.

내가 그녀를 업고 내려가기로 했다. 나머지는 먼저 가서 성판악 휴게소에 도착하면 구조대를 보내든지 아니면 짐을 풀어놓고 너희가 직접 구조하러 오라고 부탁했다. 내 걱정에 함께 가겠다는 동기 한 놈만 남고, 다 내려보냈다. 일행이 떠나자 축 늘어진 그녀를 등에 업었다. 다리가 휘청할 정도로 생각보다 무거웠다. 자꾸만 흘러내리는 그녀를 추스르며 어두워지는 산길을 내려갔다. 숲길로 접어드니 비는 나무들이 막아줘 그나마 괜찮았지만, 길이 미끄러워 몇 번이고 넘어졌다. 마음은 급한데, 갈 길은 멀었다. 먼저 내려간 녀석들이 돌아올 시간이 된 것 같은데도 감감무소식이라 더욱 힘들었다. 숨은 턱까지 차고, 힘들어 미칠 지경인데, 등에 업힌 여자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이러다 나까지 여기서 죽는 게 아닐까 걱정되었다.

다시 비가 거세졌을 때 저 멀리 성판악 휴게소 불빛이 보였다. 안심이 되긴 하였지만, 이번엔 먼저 내려간 녀석들이 걱정되었다. ‘아직도 도착하지 못한 건가? 길은 이것밖에 없어 길 잃을 염려는 없는데.’

성판악 휴게소에 들어섰다. 여자애들과 시시덕거리던 녀석들이 그때에서야 수고했다며 우르르 마중 나왔다. 순간 눈이 돌았다. 여자를 내려놓았다. 빠른 응급조치를 부탁하고, 후배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엎쳐. 너희들은 오늘 내 손에 죽는다.” 밖에 쌓아놓은 장작더미에서 쓸만한 몽둥이를 골라 패기 시작했다. 거센 빗소리를 뚫고 들리는 후배들 비명에 휴게소 안은 우리가 조폭들인 줄 알고 겁에 질려 있었다고 했다. 기진맥진, 젖 먹던 힘까지 다 쏟아낸 상황에서 내 손에 피멍이 들 때까지 후배들을 매타작한 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아마도 빈손으로 돌아가게 된 저승사자의 울분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그녀는 살아났다.

요즘도 후배들이 그 일을 이야기하면, 나는 “의리를 배반한 것들은 처맞아야 해”하고 당당하게 말한다. 얼마 전 제주도에 내려가 서귀포로 넘어가는 길에 성판악 휴게소에 들렀다. 꺅꺅거리며 떠들던 마지막 팀이 올라갈 때까지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성판악 등산로엔 고요가 찾아왔고, 그들의 젊음이 부러웠다. 옛 생각이 나서 다시 그곳, 사건의 현장을 찾았다. 아직도 장작더미가 잔뜩 쌓여 있고,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옛 모습 그대로였다.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40년 전 그대로. 믿어지지 않았다. 그사이 내겐 기뻤던 일, 하늘이 무너지는 일 등, 많은 사연이 있었다. 몸도 마음도 늙어, 머리는 백발이 되었고, 함께 올랐던 동기 5명 중 둘은 먼저 떠났다. 늦장 부려 첫차를 놓치게 한 놈과 사진 찍는다고 하산을 지체시킨 녀석이다. ‘내가 지금 꿈을 꾸나? 꿈이라면 빨리 깨라.’ 중얼거리며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관음사로 하산하지 못하게 시간을 지체시킨 두 놈이 괘씸해서 저승사자가 먼저 데려간 걸까? 근데 그들보다 더 크게 업무 방해한 나는 왜 놔두었을까?’

봄날 오전 나른함과 산새들 노랫소리에 취해 살짝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저승사자의 목소리를 들었으니 말이다.

“워매? 요새 영업도 잘 안되는디, 저놈이 왜 또 왔다냐? 그 사이, 많이 늙었구먼. 인마, 사는 게 다 꿈이라는 걸 아직도 몰랐냐? 이 멍청한 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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