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인연

by 이영진

어떤 인연


이영진

​나는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을 좋아한다. 절제된 문장과 살짝 웃음 짓게 하는 위트, 고결한 인품이 스며있는 선생님의 글을 좋아한다.얼마 전에 중고서점에서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 중 일부를 뽑아, 해설과 함께 흠모의 정을 담아 엮은 김정빈의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라는 수필집을 샀다. 기대감에 첫 장을 열자, 놀랍게도 속표지에 선생님의 자필 서명이 있었다.

“박○○ 양 청람, 2003년 5월 28일, 피천득”

만년필로 정성껏 쓰신 피천득 선생님의 글씨. 마음속으로만 흠모해오던, 한 번도 뵌 적 없는 선생님이 내게로 오신 것 같아 왈칵 눈물이 났다. 내게 직접 주신 책은 아니지만, 이 귀중한 책이 나에게 온 것이다. 어떠한 사연으로 이 책을 팔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나와는 귀한 인연이 되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도 그러하지만, 사람과 사물도 불가피한 인연이 있는 것 같다. 문득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 <인연>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나에게도 이와 비슷한 ‘인연’이 있다

마다우 디아즈(Antonello Madau Diaz) 선생님은 내 오페라 연출 선생님이다. 이태리 <라 스칼라> 극장의 연출가이며, 서울시립오페라단을 비롯한 국내 유명 오페라단의 초청으로 한국에서도 종종 연출을 맡으셨다. 그때마다 나를 조연출로 부르셔서 많이 가르쳐주셨다. 더 공부하고 싶으면 이태리에 오라고 하시던 다정다감한 분이다. 나는 이태리 말을 못하고 마다우 선생님은 한국말을 못하니 우리는 늘 통역이 필요했다. 통역이 없는 날은 손짓발짓이나 그림을 그려서 소통했다.

하루는 마다우 선생님께서 딸과 부인을 데리고 연습실에 오셨다. 부인도 우아했지만 딸은 그야말로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오드리 헵번이 환생한 듯했다. 성격도 무척 쾌활했다. 우리는 첫 인사를 나눴는데, 그녀는 의상디자이너라고 했다.

그녀를 두 번째 만난 것은, 내가 일본 유학 중 극단 <사계四季>에서였다. 너무 뜻밖의 만남이라 꿈을 꾸는 듯했다. 우리는 서로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나는 이태리어를 모르고, 그녀 또한 한국말을 모르니, 우리는 어설픈 일본말로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내가 “유어 파더… 컨디션…오케이?” 하고 영어로 어설프게 물으니, 그녀는 깔깔깔 웃으며 “얍, 마이 파더 컨디션 오케이” 했다. 그리고 마주보고 웃기만 했다. 벚꽃이 바람에 눈처럼 날리고 뻐꾸기가 우는 봄날 오후였다. 우리는 벤치에 앉아 말없이 그림 같은 풍경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한참 후 그녀는 나에게 왜 일본에 왔느냐고 물었다. “에어플레인…부우웅…스터디 인 제팬” 했더니, 한참을 깔깔 웃었다.

우리는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그녀의 하얗고 따뜻한 손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극단 <사계> 대표 ‘아사리 게이타’ 선생이 이태리<라 스칼라> 극장에서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을 연출하셨는데, 그 인연으로 마다우 선생님과 친구가 되었다. 그래서 마다우 선생님 딸을 의상디자이너로 초청했던 것이었다.

그 후, 3년이 지나서 세 번째 그녀를 만났다. 그 또한 일본 극단 <사계>에서였다. 그녀가 의상디자이너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은근히 기다렸다. 그런데 그녀를 만나자 나는 깜짝 놀랐다. 몸은 예전의 두 배가 되었고, 키는 더 작아진 것 같았다. 나를 보고도 눈인사만 하고, 자꾸 시선을 피했다. 후에 들은 소식이다. 그녀는 결혼했으나 이혼했고,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성 폭식으로 인해 그렇게 변했다고 한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난 것만 못했다. 그 후로는 서로 만나지 못하고 세월만 갔다. 그래도 가끔은 잘 살고 있는지 문득문득 생각이 난다.

피천득 선생님 수필 <인연>이 생각나는 나의 삶의 한 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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