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동창 녀석이 쉬는 날
나를 시간여행 시켜준다며
내 군인 시절 근무했던 곳으로
차를 몰았다. 구석구석 내가
가 보자는 곳 여기저기를
데리고 다녔다.
35년 전 근무했던 곳 동해안.
모든게 바뀌었다. 천지개벽.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스치듯
차안에서 추억을 씹었다.
육군 소위로 첫 부임받은
삼척 부남리 해안.
내 통제 하에 있었던 조그만 포구.
지금은 사유지가 되어 출입이
통제되어 내려가 볼 수도 없었다.
내가 근무했던 소초는 없어졌는지
아무리 찾아도 없고, 다른 곳에
새로운 소초가 생겼다.
젊은 군인이 어떻게 오셨냐 묻길래
예전 아주 오래 전 여기 근무했었고
혹시 여기에 내 젊음의 흔적이
남아 있을까 해서 왔노라고 대답했다.
유일하게 알아볼 수 있었던 집 하나.
조그만 매점도 같이 운영하던
어촌계장집이 화려하게
별장처럼 바뀌었다.
가끔 회나 드시러 오라고
연락 받아 내려가면
마을 어르신들과 경월소주에
한잔하곤 하였다.
계장님은 돌아가시고
어린 딸 셋을 거느린
사모님은 이 집을 팔고
서울로 가셨단다.
그곳에 내 젊음이 남아있겠냐만
고마운 친구 덕에 푸르른 동해 바다
원없이 보고, 친구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며 즐거운 여행을 마쳤다.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
내 청춘을 더듬어 보았다.
사는 게 그저 한바탕 꿈이었나
싶기도 하고 가버린 세월을
붙잡아 보려는 내가 어리석은 건 아닌가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내버려두어야 하는 게 아닌가
이 생각 저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