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일요일에 엄마와 아빠 함께 새로 생긴 추어탕 집을 갔다. 여기는 나이든 사람들이 좋아할 솥밥을 내놓는다며 칭찬일색을 하며 추어탕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주었다. 사실 이 얘기는 100번도 더 들은 이야기.
내가 돌도 지나지 않았을 떄의 이야기다. 다섯 식구가 추어탕 집을 가 추어탕을 먹었는데, 첫 돌을 앞둔 나는 멀뚱히 가족들이 먹는 추어탕을 바라보기만 했다고 한다.
추어탕과 같이 시킨 추어튀김. 추어튀김이 빠르게 없어졌다는 걸 엄마는 뒤늦게 확인했다. 의아함을 느끼고 주위를 둘러보던 엄마는 폭소를 터뜨리며 아빠와 함께 추어탕 집에서 목젖이 보일 때까지 웃엇다.
이유는 어린 내가 밥그릇에 추어튀김을 몰래 수집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누가 먹여주지도 않았지만 작은 소시지같은 손으로 그 맛을 보더니, 형과 누나에게 뺏기고 싶지 않아 몰래 저장을 해두었을 거라고 엄마 아빠는 그 때로 돌아간 것처럼 웃고 있었다.
재밌는 점은 돌도 안된 나는 그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붐비던 신림역의 추어탕 집과 번잡스럽다 해도 될 정도로 많은 그릇과 정신없던 엄마 아빠의 얼굴이 기억났다.
스치는 장면이 유독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때가 있다. 한 번 기억하려고 하면 더더욱 인이 새겨지는 일과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기억에 깊숙히 박히는 일까지.
신체의 시계와 뻔한 사계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이런 글을 쓰는 이유다. 순간을 기억한다면 하루의 해상도가 높아질 거야. 챗바퀴 출퇴근은 매번 같지만 사람의 표정과 복장, 그 안의 귀여움을 발견하는 일은 매일 다르고 오늘은 오지 않는다.
조바심에 뱉었던 말과 행동들이 얼마나 미숙했을까. 그리고 그 미숙함이 낳은 생각은 얼마나 다채로울까를 생각해 본다면 꽤 나쁘지 않은 하루다.
순간을 기억하는 일에 큰 의미를 둔다면 일의 시작이 부담이 될 것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