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산미가 도는 원두의 맛을 즐기는 것보다 태운 보리차의 그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좋아한다. 물은 대체할 수 없는 청량함이 목을 타고 흘러갈 때 정신이 번쩍 뜨이는 그 기분을 좋아해서 일 것이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커피를 마시는 게 꽤 어른에 가까운 식습관이라 생각해 이따금 아메리카노를 시켜 마셨다. 하지만 그 맛 보다 더 얻고 싶었던 것은 어른이 되었다는 착각의 맛이었다.
대학생이 되고 난 후는 어쩐지 입에 잘 맞기 시작했다. 나에게 성인의 관문은 술이나 놀이문화가 아닌, 커피의 익숙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갈증나고, 마실 게 없을 때 삼삼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오피스 옆에 측면 문이 있는데, 그 문을 이용하면 저렴이 커피를 파는 프렌차이즈를 빠르게 갈 수 있다. 하지만 겨울철 공사로 인해 그 문이 임시폐쇄 되어 정문으로 크게 돌아가야 했다. 이렇게 추운데도 왜 사러 나왔을까. 한 모금을 들이키면 가뜩이나 추운 한기를 머금은 커피가 목을 때려 정신을 맑게 만드는 그 과정이 좋아서다.
카페인의 영향도 있겠지만 이런 건 아이스 아메리카노에서만 느낄 수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본다면 코웃음을 칠 지도 모르겠지만
아메리카노 하니 10cm가 떠오르고, 10cm가 떠오르니 내 고등학교 1학년 때가 떠오른다. 가사 뜻도 모르고 <눈이 오네>나<그게 아니고>를 들으며 가을의 종지부에서 지금같은 추위를 온전히 느끼고 싶어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츠지무라 미즈키의 얼음고래를 감명깊게 읽었고, 그런 소설을 쓰고 싶어 원고지를 들고가 무작정 글을 썼고, 그 시작은 무작정 걷다 도착한 카페였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조심스레 주문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_eOm5wyp3VU
https://www.youtube.com/watch?v=S8PE11WKLCU
https://www.youtube.com/watch?v=PGADim6UzHE
이제 간다 해도 감흥도 없을 그 카페에서 써내려가던 글들이 나에겐 퍽 소중했고, mp3에선 10cm의 눈이 오네가 들려오고 있었고, 종종 디어클러우드의 얼음요새도 있었고, 검정치마의 Antifreeze도 있었다.
그 때 부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좋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