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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라 Dec 19. 2024

리버스 삼손

머리 자르고 광명 찾으세요


머리를 잘랐다. 길디 긴 머리였고, 길디 긴 스트레스였다. 자르게 된 계기는 버스 유리창에 비춘 내 모습이,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 많이 달라 보였던 것이 첫번째, 그 머리를 말리는 데에 들어가는 시간 비용이 두번째, 머리 때문에 느끼는 스트레스가 탈모를 일으킬 것만 같아라는 생각이 든 것이 세 번쨰 였다. 


지금 보니 저건 타고난 머릿결이었

나는 오원이라는 셀럽? 모델? 분을 좋아하는데, 중성적인 매력이 참 좋은 분이다.  뷰티나 패션도 그러하고, 내가 지향하는 포근한 삶에 가깝달까. 근데 그 머리를 보고야 말았고, 기르고 포기하고를 반복하던 차에 드디어 그 날이 된 것이다.


참 예쁘게 잘생겼다


내가 변화라는 걸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미용실에는 일시적인 환각 탈취제가 있는 것일까. 나는 그 때 내 머리가 퍽 괜찮다 생각했다. 근데 지금 보니 래퍼 지구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내가 원한 건 분명 charming하고 currrly한 hair였는데.



예?


물론 그런 머리가 가능했지만 제품을 네 개(에센스 그루밍토닉 컬크림 왁스스프레이) 바르면 되었다. 저렴한 집밥을 먹자고 생각했다가 배달비용 보다 비싼 식재료를 산 자취생의 감정이 이런 걸까. 급한 아침에는 맞지 않는 머리다.



직장인들의 머리가 짧은 이유가 드디어 밝혀졌다. 관리하기가 무척 단순하고, 편하다. 복잡한 게 싫단 건 아니지만 귀찮은 건 피하고 싶다 생각하던 차, 당근을 하러 다른 방향으로 버스를 타던 내 얼굴을 보았고, 머리를 아무리 쓰다듬어도 망할 볼륨은 죽을 기미가 없었고, 지구인이 된 나는 다음날 점심이 되자마자 예약 가능한 미용실로 부리나케 뛰어갔다.



살려주세요 / 어서오세요 나의 도파민


살려주세요. 라는 마음으로 간 미용실의 사장 님은 이게 왠 떡이니 라는 표정으로 가위를 들었다. 다듬기만 하는 가위질이 거침없이 자를 수 있단 쾌감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표정을 발견해 버렸다. 



사장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나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윈윈하는 상황으로, 지금의 평화가 찾아왔다.



n회자 장발 도전기도 이제는 가볍게 마음을 접을 수 있다. 안녕 내 장발욕심. 근데 귀 뒤로 머리 넘기는 건 좀 그리울듯



힘을 되찾은 기분이다. 리버스 삼손. 아침이 상쾌하고 머리 말리는 고민이 없는 이 하루가 좋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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