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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쓰는 팀장 Jul 20. 2021

쪼지도 말고 태우지도 말라

 열심히 인생을 살았다. 부모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좋은 대학도 갔고 졸업 전에 좋은 직장에 취직도 했다. 회사에서도 인정받아 동기들보다 빨리 승진도 했고, 가정도 이루고 내 집도 장만했다. 뜻한 바가 있어 퇴사를 하고 나의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에 좀 힘들었지만 나의 근성과 경험으로 3년 만에 회사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았다. 직장생활보다 훨씬 많이 벌고 더 큰 집으로 이사도 하고, 해외여행도 온 가족이 다녀왔다. 직장생활 때 보다 더 바쁘긴 하지만 이쯤이야 아직 더 버틸 체력과 자신도 있다.      


 그러다 갑자기 찾아온 인생의 위기!!


 오후 무렵 퇴근시간이 다 돼서 거래처와의 미팅을 위해 차로 이동하던 중 갑작스러운 멀미와 구토가 계속되었다. 심한 두통이 동반되기에 뇌경색이나 뇌출혈을 의심하고 바로 119에 도움을 요청하고 구급차를 기다리는데... 시간이 더 지체될 것 같아 직접 운전해서 대학병원 응급실로 정신없이 도착했다. 도착 즉시 중환자실로 입원. 병명은 ‘길랑발레 증후군’ 말초신경에 이상이 생겨 발생하는 질환으로 주로 운동마비가 온다. 대개 인구 10만 명당 1명꼴로 발생하며 정말 재수가 없는 경우에 걸리는 질병이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더욱이 발병률이 현저히 낮은 병이 갑자기 찾아온 것이다. 치료는 가능하다고 하나 중환자실에서 1달을 보내고 고열에 시달리며, 사투를 벌인 끝에 석 달만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행히 잘 회복되어 예전처럼 회사에 출근해 또다시 일을 시작하였다. 

     

  갑자기 든 의문??     

 ‘나는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회복 후 예전같이 일은 하지만 삶에 대한 회의와 평소 생각도 못한 의문들과 질문들이 계속 나를 괴롭혔다. 나의 삶은 이것이 맞는가?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하는가? 40대 중년의 남자에 갱년기도 아닌, 권태기도 아닌 그 무언가가 지속적으로 마음속에 찝찝함을 남긴 채 맴돌고 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며 갑자기 변해야 되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날 이후 내가 직접 처리하는 중요한 업무 외에 대부분의 사업을 외주 업체로 넘기고 일단 저녁 이후의 시간을 많이 확보했다. 평소에 연락하지 못했던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고, 모임을 만들고 친구들과 자주 만나고 가족과의 시간도 많이 보냈다. 평소 하고 싶었던 취미생활도 하고 배우고 싶었던 것도 다시 배우기 시작한다. 세상이 기대하는 사회에 맞춰온 일정이 아닌 삶, 내가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삶을 살고자 다짐한다. 대학원에 가서 공부도 하고 나의 경험을 살려 교수님의 추천으로 학생들에게 강의도 할 수 있는 기회도 잡아본다.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얼굴이 변했다는 애기를 많이 듣는다. 더 잘생겨졌다고 하시는 분도 계시고 얼굴이 밝아졌다고 평소보다 많이 웃는다고 한다. 일로 사람을 만나기보다 친목 목적으로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니 예전보다 인간관계는 훨씬 넓어진 느낌이다. 나는 ‘왜 이렇게 진작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지금이라도 이렇게 살았으니 다행이다.’는 느낌이 더 크다. 지금까지 남에게는 관대하고 자기에게는 엄격하라는 말을 너무도 잘 지키고 산 느낌이다. 주위에는 물론 남에게 엄격하고 자기에게는 관대한 사람들도 많지만 열심히 사는 대부분 사람들은 본인에게 엄격하며 큰 기대치를 두고 자기를 쪼고, 태우는 사람이 있다. 무한 경쟁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강박증과 불안증까지 겹쳐 경쟁에서 살아남는다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자신 스스로 태우고 쫀다. 자신을 채찍질하고 자책하고 그러면서 자존감이 낮아지고, 남과 비교하고 자기에게 있는 장점과 재능을 보지 못한다. 또 후회하고, 또 자신을 쪼고 태운다. 세월에 몸을 맡기고 사회가 짜 놓은 틀에 자기를 맞추려고 소중한 시간을 쪼며 태우며 보낸다. 한 번씩 변화와 멈춤의 필요성도 느끼지만 그렇게 생각할 여유조차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인생의 큰 전환점이 찾아온다. 가까운 가족이 갑자기 큰 중병에 걸린다든지 아주 큰 교통사고로 생명의 고비를 넘기다든지, 본인이 중한 질병에 걸려 긴 투병 생활을 경험한다든지, 위의 나의 선배처럼 이러한 전환점을 맞이해 인생이 새로이 바뀌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종종 보곤 한다. 최근 베스트셀러 작가로 알려진 ‘채사장’도 직장생활을 하다가 큰 교통사고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새로운 삶을 사는 것에 감사하고 대학시절부터 하루에 1권씩 읽은 그의 막대한 독서량과 주위의 권유와, 무엇보다 본인이 변화된 삶을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그를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변화와 삶의 큰 계기가 없으면 안 되는 걸까? 옛날 영화에 나오는 무협영화처럼 게으르고 사고뭉치에 술만 마시던 아들이 갑자기 나타난 원수로 인해 부모님의 죽음을 목격한 뒤, ‘변화가 가장 쉬워요’ 하면서 개과천선해서 수년간의 무술 수련을 통해 강호의 고수가 되어 부모님의 원수를 갚는 그런 삶을 살아야만 하는 걸까? 그러면 그런 삶의 큰 계기가 없으면 우리는 변화되지 못한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고 싶다. 우리는 삶에 쫓겨, 남이 나를 쪼고  태우고 나도 남을 쪼고 태우고 내가 나를 쪼며 태우고 산다.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우리는 쪼고 태우지 않으면서 변화될 수 있다. 삶을 여유를 가지고 심호흡을 하고 잠시 멈춰 돌아서 생각하자. 우리는 변할 수 있다. 하루아침의 큰 변화가 아닌 매일 조금씩 작은 변화가 큰 성장을 이룰 수 있다. 하루에 1번씩 생각하자. 변화할 수 있는 작을 실천을 하나씩 시작하자. 지금 당장 연락이 뜸했던 친구를 만나 차 한 잔 하면서 옛 추억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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