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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쓰는 팀장 Jul 22. 2021

혼자 무니까

 몇 년 전 친구들과 같이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초등학교 동기들이며 나와는 32년 우정을 자랑하는 나의 가장 절친 들이다. 직업도 제 각각, 여행 일정을 맞추는 것도 너무나 힘든 과정이었지만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드디어 우리는 비행기에 올랐다. 옛 친구들을 만나면 말투가 좀 거칠어지는 경향도 있지만 그래도 다 일가를 이루고 한 집안의 가장인지라, 우리는 확실히 어른으로서 성숙해 있었고, 서로의 삶에 귀 기울이고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절친 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나이가 되었다. 

     

 이른 오전, 현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일정이 시작되었다. 가이드와 미팅을 한 후 바로 관광 시작, 그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그냥 즐거운 시간 들이었다. 여행을 가면 으레 빠질 수 없이 그 나라의 음식과 술을 맛보는데, 방문한 지역에 100년이 넘는 매주 공장이 있어 그곳의 맥주를 거의 매일 마시게 되었다. 점심때부터 저녁까지, 밤에도,  그 지역의 맥주는 물이 깨끗해서 맛이 좋다는 가이드의 말을 들으며 정말 원 없이 맥주를 마셨다. 그전에 한국에서도 마셔 본 적이 있지만 한국에서 맛본 것과는 전혀 다른 부드럽고 정말 입맛에 딱 맞는 술이었다.      

 

 다들 많은 스케줄로 바쁘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너무나 빨리 돌아와 3일간의 아쉬운 여행을 뒤로한 채 우리는 다시 삶으로 돌아왔다. 아직 여행의 여운이 남은 시간이라 3일간 찍은 사진도 서로 SNS에서 공유하고 맛있는 음식들, 멋있는 풍경들을 되새기며 여행의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다. 퇴근하면서 여행의 아쉬움을 달래려 여행기간 동안 줄곧 함께 했던 맥주를 사서 집에 들어갔다. 시원한 맥주를 유리컵에 따라 사진을 찍고 친구들의 단톡방에 올렸다. 

     

 ‘ 시원하게 한 잔 해라’ 내가 먼저 글을 올렸다. 

 ‘ 낮에 한 캔 했다 ’ 답글이 올라왔다. 

  그리고 잠시 후

 ‘ 여행할 때의 그 맛이 안 난다’는 답글이 올라왔다. 

 ‘ 혼자 무니까 그렇지.... ’ 내가 대답했다.

 ‘ 그런가 보다 ’.

     

 여행의 아쉬움을 달래려고 올린 글이 그만 여행의 그리움을 더하게 되었다. 역시 음식은 여럿이 먹어야 더 맛있다는 옛 어른의 ‘말씀이 맞다.’는 것을 떠올렸다. 예전 내가 잘 아는 나이가 지긋하신 고객은 항상 음식은 4명이 먹을 때가 제일 맛있다는 말씀을 나에게 자주 하곤 하셨다. 그 고객은 애연가이면서 미식가였는데, 지역 내 맛있는 음식점을 줄줄이 꿰고 있었고 또한 음식점 사장들에게 음식에 대한 잔소리가 많기로 유명한 분이었다. 그 분과 저녁식사 때 유명한 일식집에 갔었는데 음식 하나하나에 최상의 조합으로 먹는 방법이 있다고 항상 설명하시고 자신의 가르쳐준 대로 음식을 먹지 않으면 짜증을 내셨다. 그리고 음식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당장 식당 사장님을 불러 몇 시간이고 잔소릴 하셨다. 하여간 음식에 애정이 깊은 분으로 때마다 철마다 먹어야 하는 음식을 나에게 일러주곤 하셨다.

      

 그 시절만 하더라도 식당에서 흡연이 가능한 시절이라 매 흡연을 하는 모습은 흡연을 하지 않는 사람도 그분의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면 '정말 담배가 맛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담배를 음미하면서 피우시는 애연가였다. 우수에 찬 눈빛과 전방이 아닌 특정한 곳을 응시하며 연기를 내 쉴 때의 얼굴은 천하를 다 얻은 듯한 표정이었다. 뵙는지 오래되었지만 요즘도 애연가인 줄은 모르겠다. 그분의 말씀에 따르면 음식은 4명이 먹을 때가 가장 맛있다는 것이다. 실제 우리 옆 아파트에 사셨는데 쉬는 날 집 근처 맛집에서 몇 번 뵌 적이 있었는데 항상 4분이 식사를 하러 오셨다. 

     

 정말 음식은 더 적은 혹 더 많은 사람들보다 4명이 먹을 때가 가장 맛있는 것일까? 확인할 길은 없지만 어쨌든 음식은 혼자보다 여러 명이 먹는 것이 맛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인간은 원래 생물학적이나 역사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다. 선사시대에 매머드나 그랜드 타이거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서는 항상 단체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 같이 살아온 사회적 동물이기에 오늘날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혼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방영되는 프로그램이 시청률 1위를 차지하는 점은 사람들 간의 소통과 교제, 서로 간의 공감과 배려를 통한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소홀히 한 결과 일 수도 있다. 그중에는 어쩔 수 없이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지 가정이 파괴되고 결혼을 포기하고 출산을 포기하는 것은 함께 생활하는 본성을 가진 인간들에겐 어쩌면 불행 일 수도 있다.

      

 요즘 유행하는 혼밥, 혼술, 혼영은 함께함보다 효율성이 강조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남과 함께함은 양보와 배려를 동반하는 것인데 그러한 과정 또한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세대들이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여가를 즐기며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고 남의 감정이나 눈치 볼 필요 없이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긴다.      

 함께함의 재미와 행복은 혼자함보다 더 배가되고 더 즐겁다. 음식도 더 맛이 있고 여행도 더 재미나다. 나는 경험으로 알고 체득했다. 인간은 어차피 혼자 살 수 없다. 함께 살아야만 한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 친구들은 내년에 또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다시 한번 더 결의를 다졌다. 친구 1명은 와이프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푸념도 하였지만 함께하는 음식과 여행의 행복을 알기에 와이프는 당연히 이해해 주리라 생각한다. 통장을 만들고 매월 일정 금액씩 적립하기로 약속한 순간부터 벌써 다음 여행이 설레어졌다.  

       

 오랫동안 내려온 옛 조상들의 말에는 거의 틀린 것이 없다. 인체가 느끼는 음식의 맛도 미각이라는 하나의 감각이 아니라, 마음의 작용이 일어나는 근간인 ‘뇌’에서 비롯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의 질과 양을 넘어 ‘즐겁고 신나게, 좋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마음을 먹는 것’, 바로 그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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