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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쓰는 팀장 Jul 24. 2021

가시나무 인생

  신제품이 런칭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요 거래처에 제품 프리젠테이션 일정이 잡히고 드디어 오늘 저녁, 거래처 고객들을 모시고 신제품을 홍보하는 날이다. 나는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빔 프로젝트와 슬라이드를 준비하고 있었고, 주요 거래처라 팀장님도 일찍 오셔서 대기하고 계셨다. 드디어 발표 시간이 다가오고 모든 고객들이 참석한 가운데 모임의 장이 되시는 분이 5분 뒤에 시작하라고 사인을 주셨고, 나는 맨 앞에 나와 프리젠테이션을 막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막 시작하려는 찰나, 어머니가 입원 중인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암 투병 중이셨기에 급한 전화라고 생각하고 일단 전화부터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여오는 간호사의 목소리는 다급하였고 지금 어머니가 많이 위중하시니 빨리 병원으로 와 달라는 애기였다. 지금 당장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하는데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나 대신 가족 중 한 사람이 하면 되지 않을까?' 반문했지만 입원 시 작성했던 보호자의 서명이 필요하고 위중하시니, 아무튼 빨리 오라는 애기만 하고 전화를 급히 끊었다.

      

  프리젠테이션 2분 전, 다리가 후들 후들 떨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이마에서 진땀이 흐르고 손바닥은 금방 땀이 배어들어, 들고 있던 레이저 포인트가 금방이라고 손에서 빠져나갈 것만 같았다. 짧은 시간 많은 생각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팀장님께 프리젠테이션을 못하겠다고 말씀드리고 빨리 병원으로 가야 하나? 아니면 최대한 빨리 피티를 끝내고 병원으로 달려가야 하나? 빨리 시작하라는 신호를 연신 주고 있는 팀장과 눈이 마주치고 그 상황에서 피티를 못하겠다는 애기는 도저히 팀장님께 할 수 없었다. 보통 30분 정도의 시간과 Q&A를 감안하면 더 지체될 수도 있지만,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것이 나에게는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깊이 긴 호흡을 여러 번 한 뒤에야 겨우 나의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다시 눈에 힘을 주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차분하게 나는 피티를 시작하였지만.... 

    

  나의 말이 빨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목소리는 약간 상기되어 떨리고 있었고 슬라이드 한 장 한 장은 빠른 속도로 넘어가고 있었다.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 순간 의식도 없으며 빨리 끝내야 한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물론 결과적으로 나의 피티가 고객들에게 큰 임팩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평소보다 2배나 빠른 속도를 피티를 끝내고, 그 시간도 나에게는 엄청 긴 시간이었지만 어쨌든 초를 다투는 시간이 나에게는 지나가고 있었다. PT를 끝낸 후에 팀장님께 급히 상황 설명을 하고, 같이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였으나 나는 고객들에게 개인적인 일이라 양해를 구하고, 팀장님께 죄송하다는 말을 남긴 채 그곳을 빠져나와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을 하였다. 저녁시간이지만 나의 머리는 밀리지 않는 최선의 도로를 순식간에 검색해 주었고 나는 시계와 앞만 번갈아 쳐다보며 병원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그때 병원에서 또 전화가 왔다. 나는 발신된 병원 전화번호를 보고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혹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받는 나의 목소리는 상기되어 떨리고 있었다.      

 “여 보 세 요.?”      

 수화기 넘어 들려오는 간호사의 말은 ‘아까는 정말 위중하셨는데 지금은 다시 호흡도 돌아오고 의식도 다시 찾으셨다. 다행이라고, 급하게 안 오셔도 될 것 같다’는 약간 안정된 음성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감사합니다”를 연거푸 말하였지만 그 순간 나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병원으로 가는 자동차 안에서 혼자 있는 나는 긴장이 순식간에 녹아 없어지면서 지금까지 참아 왔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성인이고 든든한 아들이라 어머니의 암 투병에도 티도 내지 못하고, 내 감정을 속인 채 하루하루 버텨가던 나는 그 순간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내내 참아왔던 눈물로 운전이 힘들어졌지만 겨우 마음을 추슬러 병원에 도착했다. 

     

  어머니가 나를 보고 환한 미소를 보이며 ‘괜찮으니 걱정마라고’ 눈으로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중환자실에 계셔서 오래 뵙지 못하고 짧은 만남을 뒤로한 채 나는 병실을 나섰다. 만약 어머니가 내가 중요한 회사일로 마음고생했던 것을 알았더라면 나보다 더 가슴 아프게 생각하셨을 어머니를 생각하니 더 마음이 짠해졌다. 바쁜 아들에게 연락한 병원을 야속하게 생각하시리라. 이러한 어머님의 마음이 짐작 가기에 병실을 나서는 나는 더 아프고 눈물이 맺혔다.      

 

  살면서 나만 겪는 일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누구나 인생을 살면 이러한 일을 겪는다. 태어나서 어머니를 통해서 사별이라는 것을 처음 경험하였다. 누구는 자식이 아파서 걱정이고, 누구는 부모가 편찮으셔서 걱정이고, 누구는 배우자가 아파서 마음고생이다. 누구나 살면서 절체절명의 순간과 사선을 넘어서는 것을 경험한다. 이것이 보편적인 인생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을 무던히도 가장으로서, 직장인으로서 티 내지 않으려 노력한 것 같다. 지금 나이에 비하면 어린 나이였지만 두 아이의 아빠이며 집안의 가장이고 어머니를 대신하는 보호자였다. 많은 후회도 남지만 그 나이의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다. 아빠로서 아들로서 사회인으로서 어머니의 암투병과 더불어 모든 일을 무리 없이 소화하기에 역부족이었지만, 힘이 되는 아내와 격려하는 친구들 배려하는 직장동료로 인해 그 시절을 무리 없이 보낼 수 있었다. 얼마 못가 어머님은 돌아가셨고 어느덧 어머니를 제외한 나의 일상생활도 다시 시작되었다. 문득문득 사무치는 그리움은 못난 불효자의 몫으로 남아 아직도 나의 텅 빈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런 굴곡이나 사정없는 인생은 아마 없을 것이다. 누구나 다 겪는 일이고 나만 예외일 수는 없다. 사선을 넘은 경험과 아픔이 우리를 더욱더 어른으로 성장시킨다. 죽음을 인지하고 인식할 때 우리의 인생은 더 풍요롭고 귀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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