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 집 앞 하천에 산책을 갔다. 하천을 따라 산책하며 사색하는 일은 내가 좋아하는 일상 중 하나이다.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를 할 때 가장 고려하는 것은 도서관이 집에서 가까운지, 멀지 않게 등산로가 있는지, 그리고 산책할 산책로가 있는지 가장 먼저 알아본다. 물론 주택가 지역이면 더 좋다. 그러면 학군도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 밤에 동네가 조용해서 좋다. 지금 내가 사는 동네는 도보거리에 도서관과, 산책할 수 있는 하천이 있고 밤에 조용해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아 11년째 살고 있다.
시원한 일요일 저녁에 역시나 산책을 나섰다. 하천 중반쯤 걷고 있을 때 중학생쯤 보이는 딸과 아빠가 사이좋게 팔짱을 끼고 산책을 하며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때 딸이 아빠에게 진지하고 약간 실망한 듯한 얼굴로 아빠를 바라보며 말을 건넨다.
'아빠 내일은 왜 월요일이야??'
그 옆을 빨리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아빠의 대답 소리를 듣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혼자 여러 가지 대답들을 생각했다. 아마 딸이 내일이 월요일인지 몰라서 묻는 뉘앙스는 확실히 아니었다. 휴일의 끝을 아쉬워하는 딸의 투정처럼 들렸다. 보통 재미없는 아빠는 ‘내일이 월요일이니깐 월요일이지.’ 이렇게 대답을 할 것이다. 나는 그 순간 어떻게 하면 딸의 실망을 덜어 줄 수 있는 대답이 될 수 있을까? 여러 생각을 하며 걸었다.
일요일 저녁 온 국민이 좋아하는 개그프로가 끝나면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해야 한다. 개그프로가 오랫동안 인기가 있는 이유는 탁월한 방송 시간대도 한몫을 한다고 생각한다. 나 같은 대부분 직장인들은 휴일의 마지막을 개그프로와 함께 씁쓸함을 달래려 할 것이다. 주말의 편안함과 안락함을 아쉬워하면서..
주위 몇몇 동료들이 일요일 저녁에 굉장히 예민해진다고 들은 적이 있다. 괜스레 아내와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고 신경질을 부린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자꾸 예민해지고 과민해진다.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내일 출근할 생각을 하니 자꾸 가족들에게 실수를 한다. 나도 이런 경험이 전혀 없다고 자신 있게 얘기하진 못한다. 30대 초반에는 아내에게 간혹 짜증을 낸 것 같고, 30대 후반에는 애들이 어느 정도 자란 후라 애들에게도 예민하게 군적이 있는 것 같다. 40대가 되어 가족들에게 예전처럼 하진 않지만 가끔씩 잠이 오질 않아 애 먹을 때가 있다.
나의 직장 상사도 잠이 오지 않는지 일요일 자정을 넘어 새벽시간대에 자주 메일을 보내곤 한다. 잠이 안 와 뒤척이다 겨우 잠들어 아침에 힘들게 일어나면 여지없이 새벽에 직장상사가 보낸 업무 메일이 한 두통 와있다. 이 분도 어지간히 나처럼 잠이 안 오나 싶어 웃음이 난다. 특히 긴 휴가 뒤에 오는 월요일 출근은 더욱 직장인들을 힘들게 한다. 아침부터 많은 미팅과 결재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우리 팀의 신입사원이 팀장들은 전혀 월요병이 없을 거라 생각하는지 ‘팀장님도 월요일에 힘드세요?’라는 질문을 듣고 웃은 적이 있다. 질문의 뉘앙스는 설마 '팀장님이 무슨 월요병이 있을까?' 당연히 없을 거라 생각하고 묻는 느낌이었다. 나는 당연히 ‘나도 일요일이면 다음날 출근하기 싫다.’고 대답하였다. 설마 하며 놀라는 눈치이다.
월요일 새롭게 집을 나서는 학생도, 직장인도, 딸도, 아빠도, 엄마도 다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즐거운 이틀간의 꿈같은 휴식이 꿀 떨어지듯 금방 떨어져 버리고 다시 꿀을 기다리는 5일간의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누구나 힘들다. 팀장님도 전무님도, 사장님도 월요일 출근길이 힘들긴 마찬가지다. 어느 재벌 총수는 내일 일을 생각하면 의욕에 넘쳐 잠도 아까워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벅찬 가슴으로 출근을 한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재벌 총수의 초인적인 생각이고 우리 같은 직장인과 보통의 학생들은 힘들 수밖에 없다.
다 똑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공감하니 너무 혼자만 힘들어할 필요 없다. 나 혼자만 이러나 걱정하고 자괴감에 빠질 필요 또한 전혀 없다. 이 또한 보통이고 일상이다. 언젠가 반드시 우리가 그리워할 일상이고 보통이다. 아파서 학교를 가지 못하는 학생에게는, 정리해고가 된 퇴직자에게는, 이런 보통의 일상이 부러움과 소원의 대상이다. 벌써 퇴직한 선배들은 월요일의 긴장감이 그립고 회사 생활을 막 시작한 사회초년생들은 월요일 학교 가는 학생들이 부러운 법이다.
긴 휴가를 끝내고 드디어 내일 출근하는 날이 왔다. 나는 아들에게 항상 같은 질문을 한다.
“내일이 무슨 날이게?” 아들은 항상 똑같은 대답을 한다.
“내일은 아빠 출근하는 날 히히”
아까 학생이 물어본 ‘아빠 내일은 왜 월요일이야?’라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일단 가면 금방 금요일 온다’
좋은 날도, 심심한 날도, 굿은 날도 우리 인생에서 빨리 지나가지 않는 날은 없다. 모든 날들을 단언컨대 그리워하고 추억하는 때도 반드시 올 것이다. 자! 이제는 개그프로가 끝났으니 슬슬 내일을 위해 잠을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