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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볼버leevolver Sep 29. 2024

[D-95] 6% ‘지금, 바로, 표현‘하여 채우기

100일 남은 2024년, 매일매일 나에게 고한다 [6]

스물여덟,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에게 애틋한 존재와 헤어지게 된 것은.


친구들과 떠난 여름휴가, 돌아오는 날 아침 동생에게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아, 할머니가 위독하시구나. 느낌이 왔다. 바로 전화를 걸었다.

“무슨 소리야, 할머니 돌아가셨어.”

할머니 눈을 마주치고 인사할 기회도 없이 할머니가 우리 곁을 떠나셨다.

누군가의 죽음을 경험한 것은 처음이 아니었지만, 나에게 애틋한 누군가와 헤어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외할머니의 외모를 많이 닮았다. 마냥 품어주시기보다는 다소 엄한 편이셨지만, 태어날 때부터 나에게 할머니란 존재는 외할머니뿐이었고 말없는 다정함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할머니를 정말 좋아했다. 피부가 몹시도 고왔던 할머니의 보드라운 살결, 특유의 포근한 체취, ‘할머니 귀엽다’고 말하면 놀리냐며 뭐라 하시지만 은근하게 좋아하시던 그 웃음, 동생과 다툴 때면 내 편을 들어주시던 든든함까지, 그냥 할머니라서 참 좋았다.

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요양병원을 떠나 얼마간 우리 집에서 지내시기로 했다. 평생 하지 못한 효도를 이제라도 하겠다며 엄마가 자처하신 것이다. 큰외삼촌과 외숙모는 평생 효도하셨지만, 거동을 못하시는 할머니를 돌보는 일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큰 딸인 엄마가 그 의무를 다하겠다고 마음 먹으신 것이다.

평생 소식과 채식만 하신 할머니는 식탐이라곤 없으셨는데, 예전이라면 어쩌다 한 번 드실까 말까 한 아이스크림을 하루 10개 넘게 드셨다. 너무 과하게 드신다 싶을 때, 그만 드시라며 말리곤 했다. 식사는 거의 하시지 못한 채 아이스크림만 드시니 밥을 조금이라도 더 드시게 하고 싶었다.


친구들과 여름휴가를 떠나던 날, 나는 이른 아침 집을 나섰고, 할머니는 주무시고 계셨다. 할머니 잠든 모습만 보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다녀와서 할머니랑 얘기해야지, 하면서. 할머니는 그로부터 이틀 후, 가족들이 모두 잠들어 있는 새벽에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무더위가 아직 기승을 부리던 8월 중순이었다.

나는 그날 할머니를 안아보지 않고 집을 나선 것, 할머니가 비비빅을 더 드시지 못하게 한 것을 지금도 후회한다.




몇 년 전 겨울, 출근길 버스 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평소처럼 나는 어두컴컴한 새벽 출근을 했고, 남편은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출근했다. 전화를 받았을 때는, 버스가 경부고속도로 한복판을 달리고 있을 때였다. 우리 아이와 동생네 아이들 둘, 세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 분주한 아침, 엄마는 아빠가 눈을 뜨지 않는다고 했다.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내릴 수 없어, 강남에 도착할 때까지 눈물만 흘렸다. 출근길 버스 안은 고요해서 소리는 입 안으로 삼켜야만 했다. 나는 셀럽과 첫 계약 성사를 위한 중요한 업무를 처리해야만 하는 날이었지만,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택시를 잡아타고 회사에 연락을 했다. 오늘은 출근할 수 없다고.

아빠는 구급차로 이송되었고, 큰 아이 둘은 어린이집에 보내고, 우리는 막내만 데리고 모두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빠는 원인은 모른 채 그냥 깨어나지 않고 계셨다. 응급실에는 엄마만 들어가실 수 있어, 우리는 그저 병원 로비에서 대기할 뿐이었지만, 넋을 놓고 앉아 있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는 채, 기다리다가 몇 시간 후 아빠가 깨어나 우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원인불명의 이유였고, 그렇다면 언제 또다시 찾아올지도 모른다.

대기실에서의 기약 없는 기다림 중 나는 계속해서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아빠에게 내가 마지막으로 한 말을 무엇이었는지. 마지막으로 내 마음을 전한 것은 언제였는지.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내 곁에 영원히 머물지 않을 수 있다. 아니, 머물지 않을 것이다. 이것만큼은 절대불변의 진리이므로.

불과 1분 전까지만 해도 나와 같이 있었던 사람들을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몇 번의 경험 이후, 나는 후회를 남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좋은 감정은 기억하고, 나쁜 감정은 되도록 빨리 털어버리는 것.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한다 말하고,

다툼 뒤에는 최대한 빨리 미안하다 말하고,

습관처럼 늘 고맙다고 말하기로 했다.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 그저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사랑이다. 특히 아이에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수시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남편과 부모님께도 가급적 하루에 한 번 이상 사랑한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왜 이러냐는 반응을 보이던 사람들도 이내 곧 사랑한다는 말로 화답한다.


다툰 후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과가 더 어려워진다. 나에게 손톱만큼이라도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무조건 미안하다고 말한다. 혹여 상대의 잘못이 더 클지라도, ‘미안하다’ 다음에는 절대 ‘그런데’를 덧붙이지 않는다. 쿨한 사과에 상대방도 쉽게 마음이 풀리는 법이다. 결국 상대는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게 마련이다.


세상에는 고마운 일이 참 많다. 보통 우리는 도움을 받았을 때 고맙다는 말을 한다. 때로는 고맙다는 말을 생략하기도 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내 곁에 있어주어 고맙고, 나를 믿어주어 고맙고, 나를 기다려주어 고맙다. 대신 문을 잡아주거나 나에게 길을 양보해 주어 고맙다. 어떤 때는 나에게 화를 내지 않아 고마울 때도 있다.


시간은 내 편이 아닌 것 같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 마음과 사정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흘러갈 뿐이다. 가족, 친구, 소중한 존재들 뿐만 아니라, 그리 친하지 않은 직장 동료조차 오늘 나의 행동을 내일 후회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바로 표현해야 한다.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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