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게임'안에서의 성실함은, 적어도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아무런 힘이 없다.<더 퍼스트>, p.310
이 문장을 어쩌란 말인가.
방어막 없는 나에게, 성실함의 끝에서 책임감으로 똘똘 뭉쳐있는 나에게, 너는 왜 그렇게 살아왔냐고
궁색한 변명조차 늘어놓을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버린 구절이다.
성실함을 품고, 책임감을 온몸으로 감싸안으며, 누구에게도 굴하지 않을만큼 최선의 삶을 살아왔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지는 게임' 안에서였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치열하게 살아왔던 내 시간들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 지난한 시간들이 고난의 연속이었고 힘든 순간들이 더 많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모든 게 애초에 '이길 수 없는 게임판' 위에서였다는 걸 느끼는 지금,
그 상실감이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이 물음을 한번 더 진지하게 마주해야 할 때인가 보다.
책 속에서 마주한 이 문장 하나는 왜 톱니바퀴로 살아가느냐고, 왜 린치핀이 되지 못하느냐고, 왜 너의 방향을 바라보지 않았느냐고, 너는 왜 지는 게임 안에서 죽어라 지는 경기만 하고 있느냐고 나를 거칠게 몰아세웠다.
자꾸만 생각이 '고민'의 방향으로 흘러가는 걸 보니, 어쩌면 지금이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타이밍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시기'라는 건 있는 듯하다.
무언가에 몰두할 시기, 다음 단계를 고민할 시기, 변화를 모색할 시기, 그리고 좀 더 숙성시키며 기다려야 할 시기. 그 어떤 시기라 할지라도 조급함으로는 나아질 수 없다는 걸 안다.
언젠가 이런 글을 쓰다 끝맺지 못한 모양이다.
'그 어떤 시기'가 이전부터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이유도 어쩌면 내가 나를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글은, 그 어떤 시기가 이어진 지금에서야 이제 더는 늦출 수 없기에 나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함을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해주는 듯하다.
그러니 이 글과 다시 마주하며 나의 고민과 직면할 수밖에.
모든 게 짜맞춘 듯 나에게 이런 글들만 다가오는 건, 더는 외면하지 말라는 강력한 권고이자 최후의 통첩일지도 모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