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친절한가요?

by leeway


친절이라는 단어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친절(親切)은 친할 친, 끊어질 절(또는 정성스러울 절)을 쓴다. 그래서 친절은 정성스럽고 정답거나, 또는 그러한 태도를 말한다.


요즘 책이나 인터넷 글에서 유독 '친절'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특히나 AI 시대가 쓰나미처럼 몰려와

일상 곳곳에 스며드는 동안, AI 전문가들은 앞으로는 더 '친절해야 한다'고 말한다.


AI는 친절하지 않다. 아니 친절할 수도 있다. 인간이 어떻게 셋팅하느냐에 따라 다를 테니. 하지만 확실한 건, 기계적 응답이 아닌 진짜 마음에서 우러나는 친절함은 여전히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거대한 조직 뒤에 숨을 수 없는 시대


그 AI를 다루고 시대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조직의 뒤가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버틸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거대한 조직은 느리다. 의사전달부터 결정까지 단계가 많다. 그 단계를 밟아 뭔가를 결정하고 실행하기엔 세상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요즘은 AI 활용으로 거대 조직 못지않은 성과를 달성하는 1인 기업들도 등장하고 있다. 그런 조직은 실행도, 결정도 빠르다.


사람들의 기호는 점점 빠르게 변화하고, 그 변화에 발맞춰 변화하지 않으면 개인도, 조직도 살아남을 수 없다.

능력이 갖춰진다 해도, 그 능력을 어떤 태도로 사용하느냐가 관건이다.



불친절한 상사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아무리 맛집이라도 불친절한 가게는 오래가기 어렵다. 불평불만 없이 가만히 기다리는 시대는 사라지고 있다.내가 근무하는 조직에는 한때 상당히 '파워 있고', 한 시대를 '호령'했던 대단히 '불친절한' 상사들이 많았다.

그들은 조직을 등에 업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양 '거세고', '막강한 파워'로 '불친절'을 당연시했다.

조직 내에서 막강한 권한을 가졌거나 그 이상이거나. 어쨌든 조무래기 직원들의 '조직 생사여부'를 손에 쥐고 있었던 '그들'이었다.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퇴직 후에도 여전히 '그런' 삶을 살아간다는 얘기가 간간히 들렸건만,

지금은 그런 풍문조차 들리지 않는다.


반면 '친절했던' 또 다른 상사들도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직원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그들'의 안위와 평온을 바라는 이들도 많다.


조직의 간판이 사라진 순간 누가 기억되는지, 답은 명확하다.


모두에게 친절할 순 없지만


굳이 AI 시대가 아니더라도, 개인 명함으로 브랜딩되는 시대가 아니더라도, '친절함'은 언제 어디서나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이다. 그렇다고 모두에게 정성스러운 태도로 친절할 순 없을 것이다.


무례한 이에게는 '친절'도 '독'인 양, 친절을 악용하는 이에게는 '친절'을 '방어막'으로, 각자의 '친절'에 맞는 맞춤형 '친절'로 응할 수 밖에.


그럼에도 기본적인 '친절'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친절'이라는 삶의 태도를 나에게 그리고 시대 흐름에 맞게 조절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이런 생각 속에서 나의 '친절함'은 어디쯤일까를 돌아보게 된다. 스스로 '친절한 00씨'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

애써 꾸며진 친절은 오래갈 수 없다. 살아온 모습, 가치관으로 스며든 친절은 얼굴에서부터 행동까지 조금씩 스며져 나오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삶의 모든 선택의 합이 현재의 내 모습이기에 다시 한번 나를 들여다보게 된다.



'친절한 리웨이씨'로 살아가기


개인의 역량을 다지고, 그만큼 친절해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법! 조직 뒤에 숨어있을 땐 친절하지 않아도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AI가 할 수 없는 것, 그것은 진심 어린 친절함이다. 기계는 매뉴얼대로 친절할 수 있지만, 상황을 읽고 마음을 헤아리는 친절함은 인간만의 몫이다.


내 삶 구석구석에 스며든 AI 시대에도 나의 이름으로, 나만의 브랜딩으로, 가볍고 단순한, 그럼에도 '친절한 리웨이'씨로 자리잡고 싶다.


이전 01화지는 게임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