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중견 기업의 연말

회사가 연말을 보내는 3가지 방법

by 호디에

보통 연말에 대해 생각해 보면 떠오르는 심상이 몇 가지 있을 것이다.


가게마다 하나씩 세워져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 어두운 밤을 밝히는 여러 개의 꼬마 전구, 떠들썩한 술집을 가득 메운 사람들, 핫팩 하나를 나눠 잡고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연인들, 코가 새빨개진 채로 입김을 불며 부모님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이들.


생각만 해도 따뜻해지고 마음 충만해지는 모습이다. 연말은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내년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오르는 시간이다. 하지만 이러한 장면들은 평일에 바쁜 업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직장인들에게는 다른 세상의 얘기처럼 들릴 것이다. 우리나라의 직장인들에게 연말은 오히려 연중 가장 치열하고 경쟁적인 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이 말을 듣고 회사를 뭐 그렇게 힘들게 다닐까 생각하며 여유로운 마음으로 연말 휴가를 기다리고 있는 운 좋은 직장인 분들도 많을 것이다. 나도 진심으로 그런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고 그런 직장인이 되는 게 개인의 안녕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업무 상 다른 나라 담당자들과 소통할 일이 많은데 해외 담당자들은 연말이 되면 늘 일주일 이상의, 길면 2주 가량의 Holiday Notice를 보내오곤 한다. 실제로 미국 주식 시장은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조기 폐장을 하며 긴 Christmas vacation을 보낼 준비를 하고 일본도 1월 1일을 전후로 일주일 가량의 공휴일을 부여하는 쇼가쓰를 보낸다. 그 기간 동안 업무 담당자들은 휴가 중인 것은 물론 해외 기업 자체적으로도 휴가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분위기는 어떠한가? 어느 국내 사기업도 연말이라고 자체적으로 연차 외 휴가를 부여하는 기업은 없다. 오히려 대부분의 국내 기업에게 연말은 인사 평가와 인사 이동 그리고 사업 계획 수립으로 1년 중 가장 바쁘고 각박한 한 해를 보내는 기간이라고 생각한다. 인사 평가 및 이동은 인사팀에서 결정하여 통보하는 형식이므로 대부분의 직원들은 연말을 사업 계획 시즌으로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의 담당자들은 지인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여행을 떠나 휴식을 하고 있는 그 시간에 나는 내년 성과에 대해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것이 야속하지만 그게 현실이니깐 순응할 수 밖에.


보통 기업의 규모가 크지 않은 기업이라면 사업 계획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보다는 당장 처리해야 할 업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규모가 큰 대기업이나 모기업, 지주사 혹은 사모펀드의 지배를 받고 있는 기업이라면 실무자들이 제시하는 사업 계획에 대한 의견과 숫자로는 경영진을 만족시킬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1차 사업 계획을 바탕으로 5차 이상까지 그 계획을 수정하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지금 재직 중인 회사 또한 대기업의 계열사였다가 분리가 되어 현재 사모펀드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깐깐한 사업 계획을 수차례에 걸쳐 작성할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 3번의 회사에서 모두 신입 사원 포지션으로 재직해 봤지만 현재 회사처럼 신입 사원에게 높은 기대치를 가지고 있는 회사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이번에는 열심히 선임들과 함께 사업 계획을 짜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는 중이다. 그런 김에 회사의 연말에는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지 크게 3가지 정도 생각해 보려고 한다.




1. 사업 계획


전 부서가 한 해 동안 가장 신경을 써서 작성하는 보고서로 내년의 예상 실적으로 수치로 표현하고 그 실적을 수립하게된 근거까지 수치로 제시하는 것이 큰 카테고리 중 하나이다. 두 번째 카테고리는 내년 업무 추진 계획으로 어떤 업무를 중점적으로 할 것인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낸 뒤 구체적인 실행 계획까지 세부 항목으로 작성하는 것이다. 업무에 대한 아이디어와 실행 계획은 부서 내에서 작성한 것으로 통과될 수 있지만 숫자와 관련된 예상 실적을 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수치를 제시해주기 마련이다.


정량적 사업 계획인 예상 실적과 정성적 사업 계획인 업무 추진 계획 이렇게 두 가지가 수 차례의 수정을 거쳐 확정이 되면 이는 곧 내년도 인사 평가를 내리는 1차적인 지표가 된다. 실적에 대해 달성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서원은 아무도 없지만 실무진의 동의 여부는 그닥 중요하지 않다.



2. 인사 평가


자체적으로 올해 계획으로 세웠던 업무 추진 항목과 수행 결과를 작성하는 것이 하나이다. 자체 평가가 끝난 후 이는 인사팀으로 넘어가 인사팀에서 이를 객관적으로 재평가하고 각 팀장과 파트장이 팀원들을 평가한 결과를 종합하여 인사 고과가 결정된다. 이러한 정성적인 평가에 더하여 작년에 세웠던 사업 계획의 수치 대비 올해 얼마 만큼의 실적을 달성하였는지 정량적인 평가가 들어간다. 올해 2024년을 기준으로 봤을 때 실적을 예상치만큼 달성한 기업의 비율은 매우 낮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기가 많이 안 좋았으니까 말이다.


크게 A,B,C,D 단계로 나뉘며 C,D등급의 항목을 받은 직원은 내년도 성과금이 깎이는 엄벌에 처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A,B등급의 항목을 받았다고 해서 성과급이 오르는 것은 아니다. 이는 단순히 성과급 유지를 할 수 있는 조건이고 해당 등급을 2번 이상 받아야 성과급 인상의 대상이 된다.



3. 인사 이동


지점이 전국적으로 여러 개가 있고 해외에 지사까지 두고 있는 대기업들이라면 인사 이동이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적극적으로 일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인사 이동 시 1지망에서 3지망까지 작성을 하면 그에 맞춰 인사 이동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듣기로는 지망에 상관 없이 인사팀으로부터 통보를 받아 서울에서 지방으로 발령을 받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고 한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그러나 이렇게 전국적으로 지점이 퍼져있는 회사는 손에 꼽을 정도 이니 대부분 기업들은 본사가 하나 밖에 없는 기업 혹은 서울 본사와 지방 공장 이렇게 나뉘어져 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사 이동이 일어나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타 팀으로 가더라도 어차피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고 있으니 완전한 인사 이동이 되었다고 보기도 힘들고 애초에 인원이 많지 않은 팀에서 팀원 한 명을 빼내어서 다른 팀으로 이동시키기가 인사팀에서도 쉬운 결정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통의 회사에서 어떤 연말을 보내는지 신입 사원이 보고 느낀 바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 보았다. 물론 나의 위치에서 보고 듣는 것은 회사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극히 일부이고 이에 대해 감히 내가 어떤 의견을 가지고 평가를 한다는 것에 대해 수십 년에 걸쳐 근속한 선배들이 보기에는 우스워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연말의 분위기를 회사 내에서는 느낄 수 없어 이질감이 든다는 사실만큼은 공감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 모두 책임감을 내려놓을 수 없기에 연말을 평온하게만은 즐길 수 없는 피곤한 직장인들이니깐. 그럼에도 얼마 남지 않은 12월의 연말을 일부러라도 즐겨 보려고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마음을 고쳐먹고 밖에만 나간다면 어디에서든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고 이를 만끽하는 걱정 없는 사람들을 볼 수 있지 않은가. 일은 일이고, 일단 당장은 오늘을 살아 보는 것이다.


내년에는 또 어떤 폭풍이 휘몰아칠지 모르는 일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