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유학을 가는 친구들, 대학원에 진학하는 친구들을 보며.
올해 첫 명절 연휴가 끝나가는 시점이다. 운이 좋게도 3일 명절 연휴에 임시 공휴일까지 더해져서 이번 주의 시작은 월요일이 아닌 금요일이다. 많은 직장인들이 명절 후유증을 느끼게 되는 지금, 유난히 짧았던 이번 1월을 뒤로하며 명절 후유증을 지나온 과거와 다가올 미래에 대한 고민을 통해 극복해 보려고 한다.
1년 정도는 쉬어도 괜찮다, 젊었을 때 많은 경험을 해야 한다라는 말들이 많이 보이는 요즘이다. 실제로도 주변에 졸업 요건을 모두 채웠음에도 별 이유 없이 1년 이상 졸업 유예를 하는 친구들도 있고 많은 경험을 해 보기 위해 해외에서 한 달 살기 혹은 세계 여행을 하고 있는 친구들 또한 많다. 그리고 취업 준비 기간을 오래 가져가면서 대기업 스터디를 하는 경우, 국비 지원 아카데미를 선택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이것에 대한 나의 솔직한 심정은 "부럽다" 이다.
누군가는 일을 하지 않고 쉬거나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나태하고 현실을 도피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나는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부럽다는 생각만 들뿐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현역으로 대학에 진학하고 군휴학을 제외하면 공백 기간 없이 쭉 달려 4학년에 취업을 했기 때문에 무언가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온전히 시간을 쏟아 고민하고 세계 각지로 나가 다양한 경험을 쌓는 친구들이 정말 부럽다.
그럼에도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고 지금 와서 돌이킬 수는 없기에 부러워하기보다 내가 일찍 취업을 하기로 결심한 이유에 대해 다시 한번 상기시켜 보는 게 좋을 것이다. 주변에 취업 준비 혹은 다양한 경험을 명목으로 취업을 미루며 누구보다 인생을 즐기고 있는 친구들이 자꾸 나의 결심을 흔들어 놓고 있기에 202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내가 어떤 심정으로 취업을 하려고 했는지 그 간절함을 떠올려 보려는 것이다.
1.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라서
2023년, 교환학생을 갔다가 한국에 귀국했을 때 우리 집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버지 회사의 사업은 흔들리다 못해 아예 파산을 해 버려서 몇 달째 소득이 없는 상태였다. 그 결과로 퇴직금이 아닌 빚을 껴안게 되어 많은 돈은 아니더라도 일부라도 보탬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대학생 때 알바만 하면서 내가 쓸 돈만 간간히 모아 오던 시기와는 다르게 이제는 집 안의 가장 역할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겼다. 스무 살이 되었다고 해서, 편의점에서 술과 담배를 살 수 있다고 해서 어른이 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다. 이게 내가 어디든 취업을 하겠다는 결심을 한 가장 큰 계기였다.
2. 인생의 갈피를 못 잡고 있어서
대학 생활 내내 나는 복수 전공 및 전과 등 내가 시도해 볼 수 있는 변화는 모두 시도해 본 것 같다. 대학에 들어가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꿈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수업을 들으면서 그런 방향성을 잡지 못했었다. 그리고 그런 나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전공하는 학과가 바뀌고 환경이 바뀐다면 내 자체도 자연스럽게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일종의 도피였을 뿐 정작 바꿔야 할 것은 나의 나태함이었다. 그리고 그걸 바꿀 수 있는 것은 학과, 환경이 아닌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더 이상의 변화 없이 주전공 1개와 복수 전공 1개 학과의 학점을 모두 채우고 졸업 학기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꿈이 무엇인지 찾지 못했기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며 방황할 바에는 경력을 쌓고 돈을 버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철없던 시절 정신 차려 보겠다며 입대를 선택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3. 무슨 일이든 주저하지 않는 성격이라서
나는 특별한 장점이 없다. 대학교도 서울의 평범한 대학교를 나왔고 학과도 국어국문학과, 그렇다고 자격증이 엄청 많은 것도, 어학이 특출 나게 뛰어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 유일한 장점이라고 하면 별로 가리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이든 하기 싫은 일이든 그 일을 하는 명분만 주어진다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 덕분에 새로운 시도 및 도전에 거리낌이 없다는 것이 장점이다.
대기업 입사를 위해서라면 영혼도 팔 수 있을 것처럼 취업 준비를 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 대기업에 입사하지 못한다면 이후에도 쭉 대기업은 가지 못 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목표가 대기업이었던 적도 없고 설령 목표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위해 내 노력과 시간을 전적으로 쏟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일단 무엇이든 경험을 하기 위해 당장 지원할 수 있는 회사를 선별한 뒤 내가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직무를 선택하여 입사를 하였다.
이런 여러 상황과 나의 성향을 바탕으로 일찍 취업을 선택한 나는 현재 3년 차 직장인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는 중이다. 결과적으로 내가 내렸던 선택이 어땠는지에 대해 평가해 보면 꽤나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실무 경험은 물론 회사에서 배운 사회생활과 경험이 내 인생을 살아갈 때 많은 밑바탕이 되어주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돈도 나름 많이 모아서 대학생 때는 쉽지 않았을 선택들을 지금은 큰 어려움 없이 지불할 수 있다. 김밥천국에서 원조김밥이 아닌 모둠김밥을 시킬 수 있게 된 것처럼, 서브웨이에서 에그마요만 먹다가 이제는 스테이크&치즈를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밥 먹고 옷 사고 공과금도 내고 남은 돈으로 적금도 들고 주식 투자도 하며 비로소 어른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최연소 남자 사원 입사자라는 타이틀을 다는 것도 나름 나의 가치를 더해준다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좋다. 물론 누가 봐도 어려 보여서 그런지 고객사에서는 종종 반말과 험한 말을 듣는다는 단점이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런 때가 회사를 다니는 것에 대한 회의가 파도처럼 밀려올 때이다.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요즘 들어 친구들이 해외 유학도 많이 가고 대학원 진학도 하면서 취업보다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을 많이 봐서 그런지 나의 선택에 종종 회의가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돌아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주변 친구들이 배우고 싶은 공부를 하고 다양한 해외 경험을 쌓는 것이 부럽지만 친구들이 간 길로 나도 갔더라면 어느새 또 방황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바빠지고 여유가 없어지면 비로소 내가 하고 싶은 것의 우선순위를 매길 수 있게 된다. 나는 이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꿈이 무엇인지 희미하게 보이는 것 같다. 온전한 시간을 투자하여 꿈은 찾기 위해 방황해도 보이지 않던 것이 모든 삶의 여유가 사라진 순간 나에게 찾아왔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