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말로는 내가 100일 때 송파구에 왔다고 했다. 걷지도 못하던 아기가 운동화 대신 인라인스케이트를 신고 다니면서 골목대장을 하는 것 같더니, 교복을 입고 집순이로 진로를 틀어 어느새 취직했다며 출가해 버리기까지 부모님은 30년의 세월을 같은 동네에서 터를 유지하고 있다. 종종 부모님 집에 갈 때면 동네 친구들이 보고 싶지만, 친한 친구들은 이미 다른 지역으로 모두 떠났다. 얼굴이라도 한번 보려면 함께 뛰놀았던 송파가 아니라 강남이나 홍대처럼 교통의 요충지에서 약속을 잡아야 겨우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송파는 예전보다 제법 심심해졌다.
송파의 부모님 집에서 잠이 깬 어느 주말, 매번 성실히 떠오르는 햇살만큼 한결같은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 친구들이 SNS에 올린 게시물에 하트를 누르고 있었다. 그렇게 디지털 세대다운 일을 한 시간쯤에 걸쳐서 끝내고, 점심인지 오후 간식인지 애매한 시간대의 밥을 먹으며 귀한 주말을 축내고 있을 때, 중학교 동창의 SNS 하트에 불을 켠 것이 글로 답이 왔다.
“이월아, 너 아직 송파에 있니?”
SNS의 하트가 마치 무인도의 SOS 신호처럼 붉은빛을 내어 심심한 송파의 일상으로부터 구조대를 보내온 것이다. 친구는 근래에 자취를 시작했는데 우리가 다니던 중학교 앞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고 했다. 서로의 집까지 15분 정도의 거리라서 가벼운 마음으로 근처 카페에서 보기로 했다. 약속이 잡히자 그제야 어푸어푸 세수도 하고 주섬주섬 옷도 입었다. 생각해 보니 그 친구와는 중학교 졸업 이후로 만난 적도,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없었다. 작은 손가방에 지갑 등을 넣고 있을 때쯤, 문득 어느 날 들었던 커플의 대화가 떠올랐다. 서로 연락을 안하던 친구에게서 청첩장을 받은 여자친구가 가야 할지 고민하자 옆에 있던 남자 친구가 연락 안 한 지 일 년 지났으면 인연 끝난 거라며 심드렁하게 말했었다. 고작 일 년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와 내 친구는 자그마치 15년 만의 재회다. 15년이라는 시간은 아주 강력할까 아니면 종이처럼 얇을까.
걱정의 물음표는 만나기로 한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없어졌다. 먼저 와있는 친구와 눈 맞춤을 하고는 너도나도 그대로구나라며 텔레파시를 보내고서는 몇 마디 주고받자, 속까지 그대로인 것을 보고 진짜 그대로네 라고 말을 주고받았다. 그날 친구가 나에게 그대로라고 한 말에 당연하다며 수긍했지만, 돌아서 생각해 보니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못 만났던 15년 동안 별의별 일을 겪어봤을 텐데 나와 친구는 어떻게 서로에게 그대로라는 느낌을 줄 수 있었을까. 어른들 말에 사람 안 바뀐다는 게 이런 걸까. 서로를 중학교 시절과 똑같이 대하며 대화했기 때문에 그 시절과 같다고 느낀 걸까. 만약 우리가 종종 연락했었고, 그러던 중에 기분 상하는 일이 생겨서 ‘너 그렇게 안 봤는데'라며 평소와 다른 시선으로 상대를 째려보게 된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변한 사람’이 될 수도 있었을까.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에 왜 당연할까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자,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다행인지 안 좋은 건지 요즘은 MBTI로 자기소개를 하면 어느 정도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과 비슷하게 설명이 가능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MBTI도 잘 안 맞는 것 같아서 E라고 나오는데 I 같아요 라고 하면 상대가 ‘아, 나도 그래’ 하며 또 나름대로 이해를 해준다. 그러다 보면 타인이 나를 특정 MBTI로 인식하되, 너무 치우치지 않은 성향인, 이른바 중간자로 한 번 더 카테고리화하여 정리한다. 결론을 놓고 보면 정해진 게 없는 것 같아서 ‘결국 어느 쪽이라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러한 애매한 정보에도 상대는 머릿속 사전의 어느 귀퉁이에 나를 넣었는지 만족스러운 얼굴을 한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 친구도 나를 어떠한 사람으로 정의를 하여 기억 서랍에 넣어놨을 텐데 그때와 지금의 내 모습을 동일시하고 있었다. 그것에 더하여 한치의 미운 감정도 없다. 가능한 일이니 겪은 경험이지만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신기한 의문은 마치 마술쇼를 보는 느낌이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도 훌쩍 넘긴 시간 동안 쌓인 각자의 경험에도 우리는 바뀐 게 없고, 본인 또한 중학생 때보다는 사람을 보는 관점이 넓어지고 세분화되었을 텐데 상대에 대한 정의를 바꾸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교복을 입었던 때처럼 다시 수다를 떤다.
나를 거쳐온 사람 중 나를 보는 시선이 바뀌어 거리를 두고 멀어진 사람도 있을 테고, 어떤 일부분을 보고 나의 본모습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라는 한 사람을 각자의 사람들이 다르게 생각하는데, 그런 사람들을 모아서 ‘자, 이제 저라는 사람에 대해 정의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질문은 끝나고 받겠습니다.’라며 PPT를 켜놓고 발표할 수도 없으니 정정하거나 덧붙이지는 못할 것 같다.* 그러니 의도치 않게 폐를 끼친 분들에게는 ‘아이고 죄송합니다. 저도 이제 살아보는 중이라서요 보험 처리하시죠’라며 맺음 인사를 하고, 좋게 봐주는 분들에게는 ‘제가 그렇게 좋은 사람만은 아닌 것 같긴 한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웃어야지.
*만약에 가능하다고 해도 나라는 사람에 대해 발표한 것이 맞는 답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