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송파구2

by 이월

고등학교 시절 친구랑 집까지 걸어가고 있었다. 오후 4시쯤이었고 집에 도착하기까지는 사십 분쯤 걸리는 거리였다. 지금의 체력으로는 발바닥 아프다고 힘들어했을 텐데 그때는 공부 안 하고 길에서 시간을 축내며 수다 떠는 게 좋았던 것 같다. 여고생 둘의 수다가 이어지다가 문득 하늘을 봤는데 처음 보는 불빛이 떠 있었다. 얇은 천 뒤에 빛을 비춘 것처럼 뿌연 느낌이 신기해서 친구에게도 알려주고자 손가락질했다. 그때부터 둘 다 고개를 들고 걷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수다의 주제는 낯선 빛으로 바뀌었다. 저게 뭘까, 비행기겠지, 비행기가 저러냐, 비행기면 하늘길을 따라갈 텐데 저 빛은 방향을 어딜 향해 가고 있지 않다며 여고생 탐정들은 목이 빠져라 하늘을 보며 추측과 상상을 했다. 계속 보고 있으니 어느 순간 한 개였던 빛이 여러 개로 늘었다. 10분쯤 더 걷다가 횡단보도 신호에 걸려 잠시 걸음을 멈췄다.


“저거 우리 따라오는 거 아니냐?”


“야. 말이 되냐. 해나 달처럼 따라오는 걸로 보이는 거겠지.”


“아닌데, 정말로 따라오고 있어. UFO아냐?”


“설마 외계인이 우리를 데려가겠냐. 우리가 뭐 특별하다고.”


“너무 평범해서 지구인 평균치를 알아보는 샘플로 제격이잖아.”


그렇게 삼십 분 정도를 걷다가 각자의 집으로 갈라지는 길목에 도착했다.


“저거 여기까지 따라왔네.”


“우리가 갈라지면 쟤네도 나뉘어서 따라오려나?”


“오, 그러면 따라온 거 인정.”


친구는 평소보다 조금은 진지한 발걸음으로 본인 집 아파트단지로 들어갔다. 집에 도착한 나는 별생각 없이 투니버스를 켰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 베란다로 내다보고 있는데 우리 집 위에 빛이 아직도 떠 있어! 너도 빛이 따라왔냐?”


정체불명의 빛에 스토커 라이트라고 멋들어진 별칭까지 붙였지만, 하굣길 수다가 끝나자 흥미가 식어 티브이나 보던 나는 재빨리 집 현관문을 열고 나가 대낮의 하늘을 쳐다봤다. 학교 근처에서부터 따라오던 스토커 라이트가 우리 집 위에 있었다.


“우리 집에 두 개 있어.”


“우리 집은 세 개.”


한 개였던 빛이 어느새 조금씩 수가 늘어나더니 나뉘어서 두 여고생을 따라왔다. 거짓말 아니다. 진짜다. 이후에 어떻게 되었냐면-. 별일 없었다. 빛이 집까지 따라왔다고 해서 경찰에게 몰래카메라 불법 설치나 스토커 신고 같은 것을 할 수 있을 리도 없으니, 오오. 신기해, 라며 소리를 낼 뿐이었다. 교육열이 제일 높은 서울에서 공부를 하는 안경쓴 고3들은 그렇게 오랑우탄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때 벌써 외계 빔을 같은 것을 맞은 걸지도 모르겠다.


몇 년 뒤에 티브이에서 오징어잡이 배에서 나온 빛을 봤다. 어두운 밤하늘에 쏘아진 배의 빛이 하굣길에 봤던 스토커 라이트와 비슷했다. 오징어잡이 배를 모르는 사람들이 UFO로 착각하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한다. 송파구에도 오징어잡이 배를 띄울만한 큰 물가가 있던가. 생각나는 건 석촌호수랑 성내천 정도인데 거기에 오징어잡이 배를 띄울 리가 없다. 어쩌면 우리는 정말 너무 평범해서 ‘평범 샘플’로 관찰 대상이 된 게 아닐까.


영화 <트루먼 쇼>처럼 그 의문의 빛이 종종 나를 계속 관찰하며 행동을 메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 일상에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 망상일 뿐이지만, 출근길 지하철 한 정거장 정도의 지루함은 떨칠 수 있을 테니 이어나가 본다. 만약에 그들이 지금도 나를 보고 있다면, 십 년 넘는 기간 동안 주인공이 바뀌지 않는 프로그램을 보고 계신 외계 선생님들의 지루함이 걱정되므로 시즌2를 제안하는 바이다. 영화 시나리오도 주인공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준 다음에 초월적인 능력을 얻는 장면이 나오는 게 흔한 시놉시스니까 시청률 올리기에 큰 도움이 될 거로 생각 한다. 구미가 당기신다면 앞으로 어떤 내용으로 시즌2를 제작할 것인가에 대한 아이디어가 고민이 될 텐데 지구에는 복권이라는 게 있다. 외부 환경을 바꿀 수 있는 치트 키 아이템인데, 삶의 질이 바뀌면서 주인공을 새로운 환경에 툭하고 가져다 놓을 수 있다. 개연성이 없다고 시청자들에게 욕먹을 걱정은 하지 마시라. 실제로 있는 상품이기 때문에 지구에서의 삶 고증은 확실하다. 결코 내가 풍요롭게 살고 싶어서 제안하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나의 팬들을 위한 배려이다. 외계 선생님들, 나의 순수한 제안을 수락해 보시겠습니까? 도롱똥 빵상.


남이 보면 너 뭐하냐며 눈썹으로 물결을 만들어 쳐다볼 것 같은 상상이다. 이뤄질 가능성이 1%도 없는 것인데, 마치 가능했던 가설이 실패한 것처럼 허무해지기도 한다. 그날 친구와 봤던 의문의 빛은 뭐였을까. 정체를 모르니 의문으로 남았고, 의문이라는 것은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십 년도 넘는 세월 동안 가끔 떠올려보게 되는 기억이 되었다. 여태 그 빛이 뭐였는지는 알 길이 없고, 그래서 계약서 한 장 쓰지 않고 불법으로 관찰 예능에 찍히고 있다는 재밋거리의 상상을 하며, 법치국가의 국민답게 불법 촬영에 대한 협박을 외계 선생님들에게 하면서 대가로 이런저런 합의점을 권해보기도 한다.


선생님들, 충분히 합의 드릴테니 대화를 좀 해봅시다.


"Good morning! good afternoon, good evening, and good night."


KakaoTalk_20250301_213648901_01.jpg 당시에 친구가 찍었던 사진. 얕은 구름뒤에 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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