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작가의 시집
내 친구 중에는 한 해 동안 읽은 책이 100권도 훌쩍 넘는 도서관 VIP도 있고, 장르 가리지 않고 책을 사는 교보문고 VIP도 있다. 마치 독립 서점 같은 친구의 집에 책장을 비우는 날이 찾아오면 도서관에 기증할 정도로 많은 양의 책이 나오지만, 신기하게도 책장에 공간이 안 생긴다. 책장에 꽂혀있던 책들이 밖으로 나가면 어딘가에 숨어 있던 다른 책들이 그 자리를 다시 채우기 때문에 바뀌는 게 없어 보인다. 이런 친구들 사이에 껴있는 나를 보며 ‘너도 다독하겠구나!’라고 정답인 양 외쳐도 머쓱한 웃음을 지어낼 수밖에 없다. 알라딘 서점의 쿠키가 맛있다는 것, 출퇴근길엔 짧은 단편소설들이 좋다는 것, 작법서는 남에게 빌려주면 안 된다는 것* 정도를 아는 수준이려나.
*공부하려고 작법서를 읽기 보다는 일반 책처럼 보는 편이다. 빌려 간 사람들은 재미가 없었는지 어디 뒀는지 기억을 못 하다가 한참 뒤에 반납하곤 한다.
이 작은 한반도가 소리치고 기뻐하던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소식이 터졌을 때, 가뭄이 오래된 어느 먼 나라에 비 소식을 뉴스로 듣는 듯, 외지인처럼 한 발짝 떨어져 있었다. 노벨문학상이라는 것이 멋지고 대단한 작가에게 주는 상이라는 막연한 이미지만을 가지고 있었기에 얼마나 대단한 건지 잘 몰랐다. 상의 위엄이 직접적으로 느껴지게 된 것은 출판업계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였다. 출판사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요즘 참 어려웠는데 서점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며, 단비를 맞은 듯한 기쁨을 보였다. 그들에게 ‘다행이다. 잘되었다 축하한다.’라며 마음에 단어들을 하나씩 쌓자, 문학계가 연 파티에 ‘실례합니다. 연관 없는 사람인데 너무 신나 보여서 같이 춤추러 왔어요.’라며 은근히 몸을 흔들어대었다.
한강 작가 본인의 가족이나 친구처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람이 아님에도, ‘출판계’라는 이름으로 묶인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직접 준다는 게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국가에서 복지 예산을 늘렸을 때 보다 바뀐 것이 또렷하게 보인다고 느꼈다. 뻗어나간 위력만 해도 이렇게 큰데, 중심점에 있는 수상자 본인의 삶에는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을까. 그녀의 묵묵한 얼굴을 떠올려본다. 차분한 목소리, 살며시 뜬 눈. 하나씩 그려진 초상화에 오히려 태풍의 눈처럼 고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강 작가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내 친구들처럼 다독하는 사람이 아니니 독서 생활 중 만나지도 못했고, 광주민주화 운동이나 가부장의 폭력성 이 담겨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거리를 두게 되었다. 호기심은 있지만 다가가기 두려운 마음으로 10월, 11월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한강 작가 책을 입문하려는 사람을 위한 추천 도서, 한강 작가 수상소감 영상 등 유튜브 알고리즘에 차곡히 쌓여가는 긴 생머리 여작가의 얼굴을 보면서 내가 언젠가 이분의 책을 보게 될지 생각했다. 10월의 축제였던 노벨 문학상이 끝난 2월의 어느 날 제자가 한강 작가 시집을 불쑥 내밀었다. 본인은 다 읽어서 빌려주려고 챙겨왔다고 했다. 혹시 내 알고리즘을 엿보기라도 한 건지, 알고 보니 셜록 홈즈 처럼 척 보면 딱 알 수 있는 추리능력이 있다든가 하는 B급 영화 한 편 뚝딱 만들어질 법한 비범한 능력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카피바라 같은 제자의 얼굴을 보자 머릿속 시나리오가 부질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흑막 같은 표정으로 줬으면 시즌2까지 상상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예고도 없이 쳐들어온 시집. 아니 어쩌면 출판계의 기쁨에 함께 내적 댄스를 같이 추던 그때부터 예고되어 있던 만남일지도 모르겠다. 소설보다는 시집을 읽는 게 마음 쓰임이 덜 할 것 같아서 첫 장을 펼쳤다. 시집의 특성상 얇은 페이지 수와 글자 사이의 여백이 넓어 책을 펼친 자리에서 마지막 장까지 단숨에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기에 3, 4일 안으로 돌려줄 생각이었는데 예상과 달리 대여 기간이 2주를 넘겨버렸다.
시를 하나씩 읽는데 발길이 턱턱 잡혀서 멈추고 쉬어가기를 반복해서 완독까지 제법 오래 걸렸다. 후기를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 있겠지만, 한강 작가 책 감상 글은 검색하면 쉽게 찾아볼 수 있을 테니 후기글은 물리고자 한다. 나는 다독가도 아니고, ‘시’는 시험을 치기 위해 배웠지만 기억에 남은 것은 국어 문제집 264페이지에 이육사 시인의 설명이 적혀 있어서 해당 출판사의 책을 골랐다던 학원 선생님의 농담밖에 없는걸.
그러면 왜 한강 작가 이야기를 꺼냈는가. 얇은 시집의 두터운 단어들을 겨우 반 정도 읽었을 때 작가의 용기에 감탄했기 때문이다. 축축한 시집의 내용과는 다르게 용기를 떠올린 것이 생뚱맞아 보일지도 모르겠다. 읽다 보다 보니 누군가의 일기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기장이라고 느낄 정도의 솔직한 감정을 출판하여 퍼트릴 수 있는 것이 대단한 용기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솔직하게’ 말하면 ‘오글거린다'라는 말로 반품받기 일쑤고, 가까운 사람에게도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기 어렵고 그냥 평소처럼 밥이나 먹자며 넘기기는 경우가 많은데 작가들은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자신을 들어낼 줄 알며, 그것을 경청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게 역시 재주는 재주다 라는 생각이 든다.
뉴스에서 말하는 ‘현대인’처럼 우리는 항상 피곤하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그러다 보니 스스로를 챙기기에 바빠서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적어진 것이 당연해진 걸까. 죽는다는 것이 그저 사물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한강 작가의 고된 하루가 필자 개인만의 느낌이 아니라 누군가 공감하는 삶일 수 있고, 솔직한 마음을 글로 이야기하는 작가들처럼 우리도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들과 만나서 아이처럼 유치하게 웃고 수다를 떨며 일상을 보낸다. 모두 어찌 되었든 간에 살아있고 살아가고 있음을 새삼 보게 되었다. 어떤 때는 서로에게 무관심한 삶이 주된 것 같다가도 이렇게 얇은 종이로 하여금 다시 주변을 돌아보게 되기도 한다. 종이 페이지를 넘기듯, 동전의 앞뒤인 듯, 새끼 고양이가 자신의 꼬리잡기 놀이를 하듯이 어디가 먼저인지 알 수 없이 빙글빙글 돌지만 어차피 살아가기 시작했으니 좋은 대로 골라보자.
남에게 민폐를 주지 않게 지하철 탑승 후 문앞에 서 있지 않고 백팩 앞으로 메기, 같이 영화 보러 간 친구에게 좀 더 잘 보이는 자리를 양보하는 눈물 나는 우정의 배려, 아침 회의한다고 다들 모이게 해놓고 자기 자랑 늘어놓는 사장과 맞장구치는 부장 보면서 점심 고민하는 무심함으로 그렇게 괜찮은 선택을 하면서 밥을 먹어야지.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이 사라지고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 명치 어딘가까지 아프도록 뜨겁고, 여름이 되면 비빔면 끓여 먹을 생각을 하며 용기 있게 다음 계절을 기다려야지.
아직 추우니 롱패딩 입고 나가라는 엄마의 말을 들었다가 친구들을 만나서 덥다고 투덜거리고, 감기 걸린 것보단 나은거라며 내 편보다 엄마 편드는 친구에게 웃으면서 솜방망이 주먹을 날리는 그런 어느 주말을 기다려야지. 이왕이면 다 같이 웃자, 그게 더 웃기니깐. 비빔면의 계절을 기다리는 개인의 용기를 가지고, 같이 실없이 수다 떠는 내일을 고대하며 오늘도 친구들 단톡방에 귀여운 동물 영상을 공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