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집순이고 아빠는 자연인이다. 아빠 말로는 엄마가 젊을 때 신나게 놀아서 질린 거라고 한다. 엄마한테 나가자고 하면, 나가면 돈이나 쓰지 뭣 하러 가냐고 자신의 의견을 강력히 던지고는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는 모습을 주로 봐서 상상이 안 간다. 집에서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엄마와 밖에서 땀 흘려야 하는 아빠는 각자의 행복을 찾아 금요일 밤에 서로 떨어졌다가 일요일 오후쯤에 재회한다. 거기엔 자취하고 있지만 주말마다 본가에 들어오는 내가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게 흔한 거실 풍경이다.
아빠가 차와 현관문을 왔다 갔다 하면서 꽉 채워진 큰 비닐봉지를 집으로 한 개, 두 개 계속 옮기면 엄마가 방에서 나오신다. ‘아니, 이게 뭐야.’ 아빠는 매번 거대한 양을 가져오는데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엄마가 봉지를 뒤척인다. 그러면 아빠가 현관문 너머로 목소리를 보낸다 ‘어-. 그거 배추야.’ 그럼, 옆에서 같이 구경하던 내가 다른 봉지를 하나 발견하고는, ‘아빠- 이건 배추 아닌데?’하고 외치면 ‘어 그건 버섯이야. 아빠가 구워줄게.’라는 답변이 온다. 그쯤에 엄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늘 하던 대사를 한다. ‘아니. 이걸 누가 다 손질해. 돈도 안 되는걸’ 오해 마시라. 엄마는 짜증 난 게 아니다. 오히려 어떤 요리를 할지 궁리하느라 신난 상태이다. 아빠가 배추를 가져오시던 미나리를 가지고 오시든 무를 뽑아오시든 간에 게임 NPC같이 늘 하는 대사다. 식재료가 담긴 큰 봉지에 돈뭉치를 담아와도 ‘아니, 요즘 누가 현금을 들고 다녀 입금해야지’라고 잔소리하실 것 같다. 느긋하게 주말을 보내던 엄마가 그 어느 때보다 빨라지는 것도 이 순간이다. 아빠가 가져온 것들의 종류를 파악하시고는 뒤 베란다에 팍팍 옮겨놓으신다. 그러면 집으로 들어온 아빠는 거실에 자리를 잡으시고는 가져온 식재료들을 엄마랑 같이 다듬고 손질한다. 요리를 좋아하고 손이 큰 엄마는 곰탕을 끓이는 큰 솥이나, 중국집에나 있을 것 같은 크기의 궁중 팬을 꺼내 드신다. 자식들 출가하고 두 분에서만 사는 집인데 하시려는 음식량이 최소 10인분은 되어 보인다.
대충 마무리가 되면 아빠가 처음 보는 버섯들을 삶거나 구워서 가져오신다. 고된 노동이 끝난 뒤의 야식 시간이다. 먹는 방법을 설명하시면서 돈 주고도 못 구한다. 돈 주고 살려면 이거 하나에 얼마를 내야 한다고 설명을 붙인다.* 나는 버섯들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서 신기하네 대단하네 라며 맞장구를 친다. 나는 관심 없지만 아빠가 좋아하는 야생 동물 다큐 같은 것을 같이 보며 버섯을 쏙쏙 골라 먹다 보면 아빠의 소주병이 반 정도 줄어있다. 알코올 때문에 헬보이** 처럼 피부가 붉어진 아빠는 버섯을 어떻게 채취했는지 무용담을 들려주신다. 그럼 나는 또, 김 씨 아저씨가 안 도와줬으면 못 했겠네. 허리 아프니까 무리하지 마시라고 걱정하면 허리 병원 가야 하는데 라며 주제가 바뀐다.
*어른들은 항상 사 먹었을 때와 집에서 먹을 때를 비교하신다.
**온몸이 빨간색인 코믹스 주인공. 영화도 유명하다.
엄마가 침대와 일체화되기 전에는 (내가 교복을 입던 시절에) 엄마까지 부지런해서 우리 집엔 손님들이 자주 있었다. 아빠가 스킨스쿠버로 잡아 온 문어, 사냥했다던 멧돼지* 같은 것들이 뒤 베란다에서 손질되어 접시에 나간다. 옆집 권사님, 정민이네 엄마, 미소네 엄마 등등 모여서 동네잔치가 따로 없었다. 스킨스쿠버 옷을 거금 주고 샀다가 들켜서 엄마의 잔소리 따발총이 며칠 동안 아빠의 등을 저격했었는데 아마 본전은 뽑았을 것이다.
우리 집 냉장고는 항상 산과 바다에서 온 식재료로 꽉 차 있었다. 언제 한번은 친구가 집에 놀러 왔다가 우리 집 냉동실을 열었는데 꽁꽁 언 자라가 스키 타듯이 미끄러져 내려와서 끼약하고 놀랐던 이야기는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친구가 종종 꺼내는 이야기다. 내가 그 친구의 집에 갈때마다 식탁엔 늘 빵 같은 간식이 올려져 있었다. 평범한 간식이 떡 하지 있는데 먹는 사람이 없어서 며칠을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장면이 나에게는 마치 드라마속 소품 같이 느껴졌다. 우리 집이었으면 가족들이 먹거나 엄마의 손님들이 와서 커피타임 간식으로 털었을 것이다. (친구야, 네가 우리 집 냉동 자라를 보고 놀란 것만큼 나는 너희 집 식탁에 올려진 빵을 보고 놀랐단다.)
산나물에 묻은 흙이 거실 바닥에 펼쳐놓은 신문지 위에 후드득 떨어지고 김장할 때나 쓰는** 대형 대야가 하루 멀다고 쓰이는 우리 집. 여기는 서울 한복판, 송파구의 2인 가정집이다.
*멧돼지 고기는 치아 사이에 잘 끼고 맛이 없었다.
**요즘은 가정정집에서 김장을 잘 안해서 큰 대야가 없는 곳이 많을 것 같다. 우리 집은 세 개나 있다. 매번 풀가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