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단지, 별사탕

by 이월

하루전, 아니 이제 열두 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친구를 통해 알게 된 브런치에 글을 올리려고 봤더니 주간연재 선택지만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매주 토요일마다 글을 올리게 되었는데 1월부터 시작한 일이 벌써 벚꽃이 피는 4월까지 이어지고 있다. 강제로 만들어진 기적과도 같은 성실함이 이제 한번 끊어지려고 하고 있다. 직업으로 글을 쓰는 사람도 아니고 그저 종종 쓰는 글을 올릴 곳이 필요했을 뿐인데 글 올리는 날짜가 생기니 맞춰는 보고 있으나 출퇴근만 하는 일상을 사는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 글로 적어서 보여줄 정도의 해프닝이 얼마나 벌어지겠나. 그렇다고 내가 매일 뭔가 새로운 걸 깨닫는 사람도 아니고. 주 1회씩 깨달음을 얻는다면 부처님 머리 위에 있어야 할 것 같다.*


*기독교 집안의 무교인입니다.


뭘 적어야 할까. 괜히 잘난 척하는 것도 싫고, 찌질한 일기 같은 글도 싫다. 고민하다가 나의 보물단지를 열어서 공유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주제로 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단어가 적힌 별사탕을 하나씩 꺼내어 나눠 먹어보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단지에서 몇 개 꺼내보아야지.


1. 우리 동네 튤립.


서울집을 떠나 어쩌다 흘러온 인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낯선 이 동네에 벌써 거의 10년을 채워가고 있다. 집 뒤에는 굴포천이라는 천이 있다. 예전에는 물이 오물이라서 더럽고 냄새가 났다는데, 내가 이사 왔을 땐 개선해서 제법 멋진 공원이 되어있었다. 집 앞에는 도보와 찻길 사이에 넓지 않은 잔디밭이 있다. 봄이면 튤립을, 여름엔 양귀비를 심어주시는 분들이 있다. 단골 카페 사장님이 그분들에게 음료를 주시는 걸 봤는데 구청에서 나와서 일하시는 게 아니라 봉사활동으로 하시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으로 음료를 대접해 드리고 있다고 했다. 꽃을 심는분들의 성실함. 그 따뜻한 마음으로 하나씩 심어진 꽃들이 귀엽게 빵긋거리면 한 시즌 내내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길고양이들의 사진 명소가 된다. <연꽃 빌라>라는 독립 서점이 있는데 그 앞에 튤립 산책길이 생겼다. 가짜 꽃인 것처럼 선명한 붉은색과 노란색의 꽃봉오리들이 점심시간을 즐기는 주변 직장인들의 힐링 장소가 되어주고 있다. 마음을 쓰며 꽃을 심고 마음을 내려놓으며 꽃을 즐기는 선순환을 보는 것이 기분이 좋다. 입에서 금방 녹아 없어지지만 잠시의 즐거움이 되는 내 별사탕이다.



2. 아침마다 똥꼬쇼.


출근 전에 동네를 걷다 보면 한 카페의 데크에 꼬리가 찌그러진 고양이가 자주 있다. 카페에서 챙겨주시는 듯 밥도 있고, 물도 있고, 집도 있고 심지어 스크래치까지 있다. 그 고양이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아서 만져볼 수 있다. 고양이 앞으로 가서 쭈그리고 앉아 쓰다듬어 주면, 내 오른쪽 허벅지로 자신의 몸을 대고, 꼬리가 살랑이는 엉덩이는 내 무릎 쪽으로 경계심 하나 없는 얼굴은 내 엉덩이 쪽으로 몸을 돌려 선다. 고양이 얼굴이 보고 싶은데 매일 엉덩이만 보여주는 놈이다. 궁디팡팡을 해주면 엉덩이를 들어 똥꼬를 보여주다가 스르륵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이렇게 넉살이 좋으니 챙김을 받는구나. 올겨울 추웠을 텐데 안 아프게 잘 버텨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출근길을 떠난다.



3. 안 사요. 만들어요.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같이 간 친구들이 자개 모빌 만드는 체험을 하고 싶다고 해서 일정에 끼워 넣었다. 소품 가게를 가면 자개 모빌이 예쁘긴 하지만 비싸기도 하고 우리 집은 바람이 솔솔 불면서 무언가를 걸만한 자리는 없기에 사지 않았던 물건이다. 만들기를 하러 간다고 할 때도 집에 가져 가면 문손잡이에 달게 되려나 그건 별론데 생각했다. 그림은 그리지만 만들기는 재주가 없어서 헛손질하며 어찌어찌 엮어서 만든 모빌이 완성되었다. 집에 가져갔을 때 처음엔 커튼을 거는 압축봉 끝에 달아놨었다. 모빌은 흔들리며 예쁜 소리가 나는 게 장점이지만 창문을 안 여는 쪽에다가 둬서 우리 집에선 오도카니 있었다. 고리가 달린 자석을 사서 현관문 쪽으로 옮겨봤더니 문 여닫을 때 흔들거리기는 한다. 소품 가게에 있는 것처럼 햇빛을 받으며 예쁘게 반짝이진 않지만, 애정을 주며 만들어서 그냥 걸려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넉넉해진다.


4.베스트프렌드 마이 스튜던트.


미술학원 강사로 오래 지내다 보니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놈이 대학교 2학년이라며 우리 집에서 술을 마시며 논다. 대학교 2학년이 된 요놈들은 총 일곱명이다. 뭉쳐 다니던 아이들이 한 명은 일본으로 이민을 가고 한 명은 그림을 그리던 놈이 공대를 가며 서로도 얼굴 보기 힘들어진 것 같다. 일곱명 중 일부가 일 년에 한 번쯤 우리 집에 올 때가 있는데, 나와 제자들이 모두 만화를 좋아하는 오타쿠라서 무슨 말을 하는지 너무 잘 알아서 웃음 포인트가 같다. 얘네가 중학생 때쯤 우리 집에 왔다가 태풍이 오는 바람에 부모님 허락을 받고 자고 간 적이 있다. 그 뒤로 부모님들도 ‘쌤 집에서 놀고 있어’ 하면 안심하시고 오케이 하신다. 학원 강사라는 직업과 학원 다니는 학생 이상의 관계가 된 것 같다. 제자들에게 이모 같은 포지션일까. 이 일곱명의 무리 말고 우리 집에 단골로 오는 두명도 있다. 게스트 하우스처럼 그냥 올 수 있는 곳. 2차로 카페를 또 가기엔 고민되니깐 편의점에서 먹을 것을 사서 우리 집으로 올라가서 수다 떠는 편한 곳.


초등학생이 성인이 될 때까지 나는 뭘 하며 지낸 걸까. 너희는 언제까지 나랑 연락하며 놀아줄까. 언제까지 대화 주제가 맞아떨어질 수 있을까. 훗날 선생님 장례식 때 제자들은 즉석에서 크로키 하라며 유언 남길 거라고, 내가 죽어서 검사해 주진 못하겠지만 크로키 하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더니, 빨간펜으로 분신사바 해서 그림 검사받을 거라던 놈들. 그래 그렇게 선생님을 유쾌한 사람으로 기억해 주고, 서로의 이상한 말들에 맞장구쳐주자. 그렇게 같이 있으면 웃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마음 한편, 기억 한쪽에 나를 둬 주기를.


5.덩그러니가 된다면.


제주도 여행 중에 우도에 들어갔는데, 조개를 주워 오자는 목표 말고는 딱히 없었다. 몇 년 전 우도에 갔을 땐 날씨가 좋아서 햇살을 만끽하며 파도 근처에 누워 조용히 시간을 보냈는데, 이번에 갔을 때는 날씨도 흐리고 너무 추웠기에 산책하기가 어려운 날씨였기 때문이다. 차를 타고 한 바퀴 돌던 중 창문에 초록색 테이프로 BOOKS라고 적힌 집을 보고 들어가 봤다. 독립 서점 <밤수지맨드라미>였다.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책 방’이라는 문구가 적혀있고 BOOKS가 써진 창문으로는 바다가 보이는 우도의 멋진 서점이었다. 사진도 찍고 한참을 구경하고 왜 이름을 <밤수지맨드라미>로 지었는지 설명글을 크게 써두신 것도 천천히 읽어보며 시간을 보냈다. 생각해 보니 우리 동네에도 독립 서점이 제법 있다. 사장님의 취향으로 골라진 책들, 그리고 그곳에서만 살 수 있는 드립커피나 소품들이 꼭 있다. 여기서 뭘 하나 사 가야지, 어떤 것으로 골라볼까라며 고민하는 즐겁게 지낼 수 있는 곳. 제주도에는 세 번째로 오는 것이라서 이제 신기해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서점이라는 새로운 장소를 가보니 즐겁고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작은 서점은 정말 좋다. 그곳에 방문하는 각자의 개성과 이야기를 가진 손님들도, 어쩌면 작가로 활동하고 있을 확률이 높은 사장님도, 언젠가 유튜브에서 봤던 추천 그림책이 놓여 있는 반가움도 다행히 아직은 지겹지 않은 행복이다. 언젠가 낯선 동네에 갔을 때 또는 익숙한 동네라서 어차피 다 아는 식상한 곳이 되어버렸다면 근처 독립 서점을 가봐야지 생각했다. 비슷하지만 각자 다른 독립 서점에 가는 설렘을 최근에 찾았다. 보물같이 작은 행복 행동을 속닥거리는 마음으로 공유해본다.


시험지 문제도 오지선다이기 때문에 이만 나의 보물단지를 닫아본다. 5년 전쯤인가, 몇 년 전 대화에서 기분이 안 좋을 때 반드시 좋아질 수 있는 것이 뭐가 있냐고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글쎄 나는 그냥 지나가길 기다리지 기분을 상기시킬 어떤 행동이나 물건이 있지 않아. 상대방은 게임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기분 좋아지는 방법이 하나도 없다니 불행하구나’라고 했다. 그때에는 정말 떠오는 게 없었다. 그리고 내가 가진 것들의 힘을 인지하고 있지 못했다.


길거리의 만개한 꽃을 보고, 그 꽃을 보는 사람들을 보며 아주 잠시 귀여운 마음을 가지는 것. 지나가는 고양이가 오늘도 건강하게 동네를 산책하고 있구나 하며 안심하고 기특한 마음을 가지는 것. 나는 몇초 뒤에 휘발될 그런 것들을 마른 마음에 한두 방울 떨어뜨려서 생활하는 것 같다. 주변이 평안한 것. 아무 일 없이 무탈한 것. 그건 아주 크고 또 아주 얇은 봄바람 같은 것이라 인지하지 못해도 괜히 기분이 좋고 사무실에 들어가서 일하면 잊어버리게 되는 것과 같다. 야채가 맛있어지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보물단지 안에서 별사탕이 하나 만들어지고 있다.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요즘 오이가 맛있고 싸서 좋다는 통화를 할 수 있는 여름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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