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아이들은 원숭이 시절이 있다고 한다. 올라가 볼 수 있는 곳이면 다 올라가 보고 걷기보다 달리면서 움직이기를 좋아해서 체력이 떨어진 엄마를 강제로 운동시키는 효자 효녀 시절. 나의 초등학교 저학년 때를 생각해 보면, 매달리라고 설치해 놓은 철봉 사다리 위에 올라가서 침대처럼 누워 하늘 보기를 좋아했고 아파트 놀이터에 시멘트로 만들어진 니은(ㄴ) 모양의 큰 조형물이 미끄럼틀로 보여서 올라가서 놀곤 했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행동 중에 동네 이웃들도 기억하는 나의 어린 시절 명장면은 자판기에 올라갔을 때다.
유치원생쯤 혹은 그보다 더 어릴 때. 그쯤 어린 시절에 같은 빌라에 살던 한글이 오빠와* 한 쌍으로 붙어 다녔다. 그날도 빌라촌 골목을 뽀작뽀작 걸어 다니면서 놀고 있는데, 집 옆의 슈퍼 입구에 서 있는 빨간 자판기가 시선을 끌었다. 늘 같은 자리에 서 있는 커피자판기 옆에 못 보던 회색 철제 사다리가 서 있었는데, 사다리를 타면 자판기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딱 좋은 위치였다. 모험심 많은 나는 높은 곳은 싫다는 오빠를 기어코 끌고 가서 자판기 위로 올라갔다. 꼭대기에 도착한 두 명의 어린이는 각기 다른 표정을 지었다.
*이름이 한글이었다. 성이 아마도 이 씨였던 듯싶다.
한 명은 대단한 일을 끝마친 듯한 속 시원함과 뿌듯함이 있었고, 여전사에게 인질처럼 끌려 올라온 남자아이는 네발로 기며 어떻게 내려가야 할지 막막한 표정을 지으며 땅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이 고요한 평일 오후. 자판기 위에서는 더 이상 구경거리가 없어서 인제 그만 자판기에서 내려가고자 내가 앞장서서 사다리를 잡았다. 사다리 아래 칸으로 발을 뻗었는데, 아뿔싸 발이 안 닿는다. 사다리를 잡은 양손 중에 한쪽 손을 놔야 발이 다음 칸에 닿는다는 원리는 알겠으나,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높이가 무서워서 사다리를 잡은 양손을 놓지 못했다.* 사다리에서 다시 자판기 위로 올라온 용맹한 여전사의 처참한 복귀를 보던 한글이 오빠는 상황 파악을 하더니 울기 시작했다.
*이때 기억이 정말 선명하다. 어린 나이에 사다리에 내려오는 방법을 알고 있던 것도 신기하고, 알지만 행동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충격도 또렷하다. 방법을 알면 해결된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흔들린 날이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은 슈퍼 어른들이 나와보시더니 우리를 보고는 어이없어하시다가 웃다가 하며 우리를 안아서 내려주셨다. 90년대 아이들은 못 가는 친구 집이 없었고, 안 들어가 본 골목이 없었으며 길이 아닌 곳도 콜럼버스가 되어 마구잡이로 뚫고 들어가기 일쑤였다. 탐험가 딸이 어느덧 서른이 넘었지만, 엄마는 종종 그 자판기 이야기를 하신다. 왜 거길 올라갔냐고, 고양이 마냥 높은 곳은 다 올라가 보고 사내애처럼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고.* 한글이 오빠랑 결혼하겠다고 한 건 기억하냐고, 연락이 끊겨서 아쉽고 보고 싶다고 방법 좀 찾아보라며 옛날이야기로 넘어간다.**
*우리 집 고양이는 도련님이라서 냉장고, 식탁 위 같은 곳은 올라가지 않고, 캣타워만 탄다. 나보다 기품 있는 내 고양이.
**흔하지 않은 이름이라고 생각해서 페이스북을 통해서 찾아보려고 했었는데 이 한글이라는 사람이 제법 많아서 포기했다. 송파구 유웅빌라에 살던 한글 오빠를 찾습니다. 한양슈퍼 자판기에 올라갔던 순둥이 찾아요.
엄마에게 ‘애들은 다 원숭이 시절이 있데.’ 라고 설명해 주니 30년 만에 의문이 풀렸다는 표정을 딱 소리가 나게 지으셨다. 그래서 네가 그때 사람이 아니었구나! 하는 느낌. 두 발로 걸을 수 있을 땐 집을 기준으로 동네를 그렇게 열심히 쏘다녔는데, 이후에 인라인스케이트가 생겨서 옆 동네까지 가며 활동 범위가 더 넓어졌다. 부모님이 잡을 수 없을 만큼 야생마가 되어버려서 나를 그냥 풀어놓고 키우셨다. 어차피 부모님 눈을 벗어나서 돌아다녀 봤자 동네 어른들이 다 보고 있으니 괜찮은 그런 시절이었다.
주말 아침에 디즈니 애니메이션 <티몬과 품바>와 한국에서 만든 3D애니메이션 <레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친구들과 놀다가 집으로 오면, 빌라 마당에 있던 야외 평상에서 엄마와 아줌마들이 모여서 수박을 먹고 계셨다. 어른들이 건넨 수박을 하나 잡아서 사각사각 먹고는 옆에 화단에 씨를 열심히 뱉었다. 씨를 먹으면 배에서 수박이 자랄 수도 있다는 막연한 상상이 부지런히 움직이게 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원숭이 시절이라서 수박 한 개를 클리어한 뒤에 또다시 놀이터로 뛰쳐나갔다. 감기에 걸려서 아픈 날엔 엄마는 내가 누워있는 이불 더미를 그대로 옆으로 쭉 밀고는 아줌마들과 모여서 맥심커피를 마시며 빠다코코낫을 드셨다. 몸이 아프고 이불도 무겁게 느껴지는 징한 몸살이었지만, 다 나으면 엄마가 남긴 커피에 빠다코코낫을 찍어 먹겠다고 생각하며 엄마의 커피잔을 노리던 꼬맹이의 당찬 시선이 있었다.
놀이터 정좌에 있던 벤치들 위를 뛰어다니면서 얼음땡을 하다가 발을 헛디뎌서 벤치 모서리에 갈비뼈를 맞아서 엄청 아팠던 기억, 술래잡기할 때 안 잡히려고 높은 곳에 매달렸다가 떨어져서 명치 쪽이 엄청 아팠던 기억 등 분명히 위험하다는 걸 인지할 만큼 겪은 것 같은데 다음 회차에 멀쩡히 살아 돌아오는 만화 속 캐릭터처럼 다시 놀이터로 뛰어갔었다.
에너지 빵빵하게 날뛰던 원숭이가 긴고아*머리띠를 쓰게 된 것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부터였다. 그 시기부터는 놀이터에서 같이 놀던 친구들이 학원을 가면서 얼굴을 보기 힘들어졌고, 집으로 놀러 온 동네 아줌마들은 나보다 훨씬 어린아이들을 나에게 맡겨놓고 아줌마들의 휴식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집에서 놀기의 달인이 될 어린싹을 틔웠더랬다.
*손오공의 머리띠. 삼장법사가 주문을 외우면 머리를 조여서 고통을 준다.
요즘은 Y2K 스타일이 유행이라 그 시절 패션이나 소품들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지금 중고등학생 제자들이 선생님은 그 시절을 겪은 사람이라서 부러워요 라고 하는데, 2000년대 초반에 나는 원숭이 시절을 벗어나서 만화를 보는 집순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네 살 많은 언니는 보아의 CD를 사 왔고, GOD의 손호영이 잘생겨서 좋다며 만화 말곤 관심 없던 나에게 대뜸 좋아하는 멤버가 겹치지 않게 김태우를 좋아하라고 지정해 줬다.* 그 시절 연예인 사진이 빼곡한 육 공 다이어리를 써본 적은 없지만 언니가 가진 것을 본 적은 있다. 주황색 머리띠에 흰색 체육복을 입고 다니던 초등학생 때부터 홍대 병에 걸린건지 유명 연예인은 관심이 없어서 대중문화를 즐기지 않았고, 집에서 투니버스를 보는데 학원에서 돌아온 언니가 엠넷을 틀어서 아이돌을 화면에 띄우면 투덜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나의 Y2K, 90년대부터 2000년대 기억은 놀이터였고 인라인스케이트였으며 투니버스 채널의 만화로 채워져 있었다.
*그때부터 은근히 마음에 담아둬서 오늘날까지도 김태우씨를 응원하고 있다. 저도 막내입니다. GOD 막내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