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보호소

by 이월

금요일 아침마다 있는 그림 모임에 가려고 길을 나섰는데 꽃무늬 조끼를 입은 갈색 푸들이 동네를 신나게 걷고 있었다. 정확히는 조깅처럼 빠른 걸음으로 목줄도 없이 이리 휙 저리 휙 빠르게 다니고 있었다. 강아지와 3~4m쯤 떨어진 거리에서 강아지를 향해 뭐라고 외치는 아주머니를 보니, 아마 자신의 개에게 돌아오라고 얘기하고 계시는걸까 싶었다. 귀여운 강아지의 일상을 보며 발걸음을 옮기는 길에 아주머니와 가까워져서 뭐라고 외치시는 건지 알게 되었다. ‘쟤가 아까부터 주인도 없이 혼자 다니네!’아주머니가 주인이 아니었다. 귀여운 강아지의 산책을 보던 내 눈이 흔들리며 스릴러로 바뀌었다.


평일 오전의 동네 골목이라서 지나다니는 차가 많진 않지만,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에 나와 아주머니와 그리고 어느새 옆에 같이 서 계신 양말 집 사장님까지 세 명은 발을 동동 굴렀다. 머릿속엔 강아지를 도울만한 그럴싸한 계획 같은 건 안 떠올랐다. 무작정 멀리 있는 강아지의 뒤를 쫓아갔지만, 신이 난 갈색 발걸음은 완전히 다른 길로 휙 하니 가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겠구나 싶어서 포기하고 다시 그림 모임에 가는데 1분쯤 지났을까. 시야에서 사라졌던 강아지가 불쑥 나타났다. 강아지 이름을 모르니, 멍멍아 하고 불러봐도 세상 구경에 신이 난 강아지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입으로 쭈쭈쭈 소리를 내니 슈퍼 앞을 킁킁거리던 강아지가 턴해서 내 발치로 왔다. 얼떨결에 일단 강아지를 안았다. 이제 어떻게 한담. '너 집이 어디니?' 품에 안은 강아지를 쳐다봤는데 우리 집 강아지인 듯, 집에 가는 택시를 탄 듯 ‘날 좀 데려다주쇼’라는 표정으로 참 편하게도 안겨있었다.


꽃분홍 조끼를 입고 있으니 떠돌이 개는 아닐 테고 분명 주인이 있을 것이다. 근처 동물병원에 가서 칩을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발걸음을 몇 발짝 떼었더니, 빨간 우체국 오토바이가 내 앞에 섰다. 집배원 아저씨가 강아지 주인이 저 뒤에 공원에서 찾고 있다고 말해줬다. 공원까지 거리가 멀진 않아서 제가 가볼게요하고 대답했지만 아차. 강아지 주인과 길이 엇갈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으로 가지 못하고 다시 제자리에 서 있는데 오토바이 아저씨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하셨는지 곰곰이 생각에 잠겨 같이 얼음이 되었다. ‘내가 아주머니를 모시고 올게요.’ 집배원 아저씨의 좋은 발상에 나와 아저씨는 얼굴이 밝아졌다. ‘여기에 꼼짝하지 않고 기다릴게요.’ 오토바이는 내 말끝이 흐려지기도 전에 떠났다. 오도카니 동네 골목길에 낯선 강아지를 안고 서 있는지 1분도 안 된 것 같은데 오토바이가 떠나간 쪽과 반대 방향에서 강아지가 입은 꽃무늬 조끼와 비슷한 조끼를 입은 아주머니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계셨다. 누가봐도 커플룩이었다.


나를 중심으로 오토바이는 왼쪽으로 가버리고 아주머니는 오른쪽에서 오시니 마치 연극무대의 한 장면 같았다. 아주머니에게 강아지를 넘겨 드리곤 오토바이가 아주머니를 찾으러 공원으로 갔다고 전해드렸다. 짧은 인사를 나누곤 ‘아이고 그럼 가봐야지’ 하시며 공원으로 향하셨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옛날식 빌라나 주택이 많은 골목이라서 대문이 있는 집들이 많은데, 조금 열린 대문으로 강아지가 쪼르르 나가버렸다고 하셨다. 얼마나 사랑을 많이 받았으면 겁도 없이 신난 마음 하나로 골목을 휘젓고 다녔을까. 그 사랑을 주며 키우신 아주머니는 가슴이 얼마나 철렁하셨을까. 착한 일을 한 것 같아 뿌듯한 마음으로 그림 모임에 가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엄마랑 통화하면서도 강아지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오지랖도 유전이라며 엄마의 오지랖 썰을 풀었다.


3년, 아니 이제는 떠난 지 4년이 지난 우리 집 강아지 하늬. 그 아이도 갈색 푸들이었다. 오늘 내가 안고 있던 낯선 강아지보다 훨씬 뚱뚱했던 우리 집 강아지. 내 동생 하늬를 보내고 4년 만에 갈색 푸들을 품에 안아봤다. 전혀 다른 느낌이었으나 종류가 같은 아이였음에 생각이 났다. 작은 생명들이 안전함 속에 사랑받고 그렇게 지내고 있음을 모를 정도로 천진난만하게 지내는 일상을 살아가기를. 강아지가 계속 돌아다녔으면 맘고생을 좀 더 길게 하셨을 텐데 금방 찾으셔서 다행이다. 혼자 다니는 강아지를 본 뒤로 우체국 집배원을 만나고, 주인을 만나기까지 시간이 후다닥 빠르게 지나갔지만, 긴 시간을 들여서 착한 일을 한 것 같아서 무용담처럼 글로 적어둔다.



25년 3월 21일 수첩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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