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핑크 물감

by 이월

<불명의 화가 반 고흐> 전시회를 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 어느 전시회보다 사람도 많을 것이고 <별이 빛나는 밤>,<아몬드꽃>,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같은 대표작은 한국에 오지 못했다는 소식에 흥미도 떨어졌었다. 석 달 이상 진행하는 고흐 전시회가 다음주에 끝난다는 소식을 들었다. 관심 없다가 마지막이라는 말을 들으면 조급해지는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리라. 결국 표를 사버렸다. 관람객이 조금이라도 적은 오전에 가려고 나갈 준비를 끝마쳤을 때, 엄마가 코인 세탁실에 다녀오라고 해서 한 시간가량 잡혀있었다. 아무도 없는 무인 세탁실에서 소심한 듯 대범한 듯 애매한 목소리로 노래 한 소절을 불러보고, 세탁해도 없어지지 않는 얼룩을 보고 따로 세탁을 한 번 더 해야겠다든가 하는 엄마의 아쉬운 소리를 듣고 집을 나섰더니 예술의전당에 도착할 땐 점심시간쯤이었다.


들어간 전시장 입구는 사람들이 한 줄 서기를 하고 있었다. 안내하는 직원이 줄 안 서도 괜찮다고 자유 관람이라고 해서 들어갔더니 다른 사람들이 줄서기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줄을 이은 사람들이 그림 앞에 서 있어서 자유 관람하는 사람들은 좀 떨어져서 감상해야 했다. 전시된 그림들은 크지 않아서 한 줄 서기 한 사람들의 뒤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도 길고 느린 줄에 끼었고 처음 뵙는 분들과 오밀조밀 모여서 그림을 보고 있으니 작은 수다 소리가 들렸다.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그림을 취미로 배우시는 듯한 아주머니분들이 잘하는 사람들은 붓을 막 해도 잘한다며 호호호 웃었다. 또 어느 관람객은 초등학생 저학년 아들과 젊은 어머니였는데 아들에게 그림을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라고 권하시고 물감을 두껍게 사용했다며 설명도 해주시며 열정적으로 관람하고 계셨다. 아이는 딴청을 부리다가 마지못해 그림을 5초가량 쳐다봤다. 자유 관람을 하던 이십 대 남자 두 명은 ‘고흐 망했잖아’, ‘정신병원에 있을 때인 듯’ 등 동네 친구를 이야기하듯 말했다. 모르는 사람들과 칙칙폭폭 기차놀이를 하면서 어느새 그림만큼이나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한 줄 서기로 그림 관람을 하게 되면 짧은 감상 후에 다음 그림에 도달할 때까지 멍때려야 해서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 풀밭 (Patch of Grass) 39cm x 30cm >

고흐의 드로잉 그림들이 끝나고 알록달록한 유화 그림들이 시작될 때 A4용지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풀밭>이라는 그림을 보게 되었다. 나는 고흐가 그린 잔디 그림들을 좋아한다.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에서 봤던 <풀이 우거진 들판의 나비>도 오랜 세월이 지나서 물감 색이 바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청량함을 유지하고 있어서 기분 좋게 하는 색감이 기억에 남았다. 두 작품 다 작은 크기임에도 임파스톤 기법*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런 기법들도 충분히 내세울 만한 아름다움이지만, 고흐가 그린 작은 생명체들에 더 마음이 간다. <풀밭> 그림에는 핑크색 물감이 조금씩 톡톡 발라져 있는데, 무성한 초록 풀들 사이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작은 들꽃들을 보고 있었을 그의 시선과 <풀이 우거진 들판의 나비>에서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작은 흰나비들을 그려 넣기 위해 작은 캔버스보다 더 작은 붓으로 뱅글뱅글 쓱쓱 붓질했을 손동작이 보여서 미소가 지어진다.


*물감을 두껍게 발라서 붓 터치를 입체적으로 남기는 기법.


< 풀이 우거진 들판의 나비. 64.5cm x 80.7cm >

그림이 그려지기까지의 과정이 참 좋은 것 같다. 어떤 것을 보았고 그것이 꽤 마음에 들었으며 그것을 그리기 위해 흰 캔버스에 스케치하며 크기나 형태를 잡기 위해 집중하다가 굽은 허리를 한번 펴고 잠시 밥을 먹고 와서 집중하다 보면 어느덧 채색 과정에 들어갔을 테고, 별로인가 아닌가 아리송해하며 실눈을 뜨고 보기도 하고 한 발짝 떨어져서 그림을 보기도 하며 확인해 보고 완성하면 스스로 뿌듯해하는 그 과정들을 떠올려보면 애정이 가는 시간이다. 한 장의 그림일 뿐이지만 그 안에는 화가의 시선이 담겨있고 그것을 도출해 내는 시간이 두껍게 칠해져 있음을 안다.


고흐의 그림들을 보다 보니 만약에 시간을 초월해서 고흐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다면 오늘 하루 본 것을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정말 봄인가 봐, 여기도 조금씩 초록색이 돌아오고 있어. 그림 봤어, 예쁘더라. 그림으로 담을 만큼 마음에 들었나 보네. 오늘 출근길을 나서는데, 화단에 데이지 꽃을 심어둔 것을 봤어. 데이지꽃이 깨끗한 흰색이라서 눈에 띄는 예쁨이었지. 너는 내일 어디로 산책하러 나갈 거니. 병원 근처에는 작은 숲이 있다고 들었는데 솔방울이 제법 떨어져 있겠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작은 것들이 너에게 행복을 주길 바라. 잘 지내.”


고흐에게 당신이 좋아하는 압생트에는 환각 증세를 일으키는 성분이 있으니 조심하라던가, 자살하지 말고, 건강히 오래 작품 활동을 해달라던가 하는 이야기 말고 오랜 동네 친구처럼 일상을 공유하고 싶다. 고흐가 SNS를 하면 좋을 텐데.*


*고흐라면 인스타가 아니라 X(트위터)를 할지도 모르겠다. 기술이 발전하면 예전 예술가들의 성격을 분석해서 그들의 SNS 계정을 만들어서 AI가 운영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겠다.


툭툭 발라진 핑크색 물감이 내가 태어나기 130년도 더 전에, 그림으로 자주 그리던 어느 들판에서 생을 마감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총을 겨눈 어떤 남자에게 SNS 했으면 좋겠다는 될 리 없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친밀감을 느끼고, 내가 본 작은 꽃을 과거의 누군가도 보고 좋아했구나 하는, 일종의 위로 혹은 동질감에서 오는 안도감이 들었다.


꼭 전시회가 아니더라도 <언리미디트 에디션>,<일러스트페어>등의 그림 관련 행사를 갔을 때, 나와 같은 시선을 가진 사람이 색감까지 완벽하게 내가 본 세상과 같은 것을 그린 것을 볼 때면 미래에서 온 내가 보낸 비밀 메시지를 받은 것처럼 묘한 기분이 든다. 나와 비슷한 감성으로 일상의 어느 한 풍경을 눈에 담고 톤까지 맞다니! 천생연분 같은 기분에 마음이 펄쩍 뛰지만, 작은 목소리로 ‘이거 하나주세요’ 라고 계산만 할 뿐이다. 해당 부스를 빠져나올 때는 부디 그림을 오랫동안 그려주시라고 속으로 기도하듯이 마음을 담아 한 발 한 발 다른 곳으로 향한다.


산책하면서 보는 동네 풍경들이 기분을 좋게 할 때가 있다. 이른 아침 아직 오픈하지 않은 카페의 데크에서 햇볕을 쬐고 있는 길고양이, 공사장에 나란히 줄 맞춰 걸려있는 노란색 안전모, 차도 한 가운데 자리 잡은 화단에 꽃을 새로 심고 있는 형광색 옷을 입은 인부들, 독립 서점 안에 사랑을 받으며 제멋대로 자라고 있는 식물들, 나무 사이로 떨어져 바닥을 동글동글 반짝이게 만드는 여름 햇빛, 추운 겨울날 통통한 패딩을 입은 커플들, 알록달록 복잡한 꽃무늬 패턴의 옷을 입고 옹기종기 모여계신 할머니들. 그리고 오늘처럼 큰 걱정 없이 그저 빨래가 잘 되었는지 확인해보는 엄마의 일상. 좋아하는 풍경을 나열하면 길쭉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내 그림에도 그런 작은 것이 주는 행복이 담아지길. 그런 풍경들을 사랑하는 이에게 닿기를 바라게 된다.

이월 일러스트 스티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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