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범인 찾겠다면서 주변 사람들까지 조사하기 시작하면 이웃에게 민폐고, 사람들이 뒤에서 쑥덕거리는 것도 싫은데…”
주변 사람을 조사한다는 말에 동식의 가슴이 철렁해졌다. 여자의 시무룩한 목소리가 혼잣말인 듯 아닌 듯 이어졌다.
“아무 흔적 없이 물건만 사라졌으니깐 이 건물은 물론이고 근방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은데, 제 생각에 범인은 이 건물 사람 같거든요. 혼자 생각해 낸 게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경찰분들에게 전부 다 말씀드리면 되겠죠.”
여자의 말에서 ‘근방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방금 TV에서 토막 시체의 범인을 설명할 때와 일치하는 부분이었다. 경찰에게 이야기한다는 말이 귀에서 맴도는 듯했다. 어느새 땀이 난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같은 건물 사람들부터 조사를 시작하게 될까? 그럼, 우리 집이 바로 옆집이니 우선순위 아니야? 아오! 내가 살인범도 아닌데 경찰이 오는 걸 왜 걱정해야 하는 거야.’
동식의 억울함과 복잡한 마음을 알 리 없는 옆집 여자는 또 혼자 추리하듯 말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헤어진 남자 친구가 범인인 줄 알았어요. 근데 생각해 보니 사귀었던 사이인데 냉장고 물품을 뒤져가며 저에 대해 궁금할 것도 없을 것 같은 관계여서 용의자에서 제외했죠.”
“냉장고 속 물건만으로 그 사람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 하는 변태라고 생각해서요?”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데…. 범인을 특정하고 확신하는 이유가 뭐지. 내 생각엔 전제 자체가 틀린 것 같은데.’
동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꺾었다.
"냉장고에 여자 모양 레고블록을 넣어봤는데 그것도 없어졌어요."
“레고…. 블록이요?”
동식은 몇 달 전 자신의 냉장고에 수박과 함께 들어있던 여자 모양 레고블록이 생각났다.
“네, 갈색 단발머리에 빨간 옷을 입고 있는 여자였는데 없어졌더라고요.”
‘우리집에 있는 거랑 똑같아!’
도둑이 누구인지 골똘히 생각하는 여자와 냉장고 속 시체의 출처가 옆집일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동식. 둘은 각자 다른 생각을 하며 서로의 앞에 서서 있었다.
‘옆집 여자분이 살인범이고, 자기 집 냉장고에 넣어둔 토막 시체들이 우리 집으로 순간이동을 했다면?’
동식은 벌어진 상황과 정리되지 않는 연결고리들을 이어보고자 애를 쓰고 있었다.
‘이 여자분은 자신의 냉장고에 물건이 갑자기 사라지는 건 모르는 건가? 애초에 관련 없는 일일 수도 있지만… 옆집 물건이 우리 집으로 오는 건지 확인 해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우선 경찰을 부르는 것부터 미룰 방법이 뭐가 있을까…’
생각들이 동식의 가슴을 살포시 밀친 듯이 현관문에 등을 기댔다. 고민으로 이마를 짚던 희고 긴 손가락이 흘러 내려온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와….”
여자의 감탄사에 동식의 시선이 고개를 들었다.
“왜요? 혹시 무슨 다른 생각이라도 난 게 있어요?”
“아뇨, 그게 아니라..”
동식의 물음에 여자는 고개를 숙였다. 부끄러운 듯 운동화 끝이 꼼지락거렸다.
“잘생겨서요. 참, 우리 서로 이름도 모르죠? 저는 김유나라고 합니다. 스물세 살이에요.”
동식은 뜬금없은 인사에 조금 어리둥절했지만 그대로 인사를 받아줬다.
“아, 예. 감사합니다. 저는 김동식이고 스물아홉입니다.”
“제가 시간을 너무 많이 뺏었죠. 괜찮으시면 내일 만나서 한 번 더 이야기 나눌 시간이 되실까요? 경찰을 부르면 집주인도 안 좋아할 것 같고, 눈치가 보여서 아직 고민이 되네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저랑 조금만 더 고민해 주시면 안 될까요?”
“아. 네. 그렇게 할게요, 과일도 주셨으니까.”
경찰을 바로 부르지 않겠다는 여자의 말에 대답이 바로 튀어나왔다. 동식의 대답에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손뼉을 짝 치며 들뜬 마음을 보였다.
“시간 언제 괜찮으세요? 전 내일 주말이라서 언제든 좋아요.”
“전 내일 오후엔 일 나가야 해서 오전이 괜찮습니다.”
“그럼, 내일 10시쯤 뵐까요? 제가 간단한 브런치 해드릴게요.”
어쩌다 보니 여자의 집으로 초대도 받았다. 잘하면 냉장고를 구경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두 사람은 내일을 기약하며 각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옆집에 이상한 사람이 살고 있구나!' 하며 평소처럼 저녁 메뉴나 고민하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거실로 들어 온 동식은 굳게 닫힌 냉장고를 바라봤다.
“열어보니깐 또 새로운 게 생겨있는 건 아니겠지?”
걱정이 현실이 될까 봐 불안한 마음에 차마 냉장고를 열진 못했다. 옆집 여자, 김유나가 준 과일은 냉장고에 들어가지 못하고 옆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과도한 스트레스에 위가 쓰려오기 시작했다. 위장약을 찾기 위해 휘적거리던 동식의 손길에 그동안 자신이 섰던 무대의 대본들과 언젠가 하고 싶은 작품이라고 찜해두고 공부했던 프린트들이 스치며 눈을 껌뻑이며 동식을 바라보고 있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이거 꿈 아니냐고."
오늘 하루가 너무 싫었다. 분명 아침에 일어났을 때만 해도 선배가 줬던 술깨스틱을 짜 먹으며 화이팅을 외쳤는데 검정 봉지가 생긴 이후로 아주 엉망이었다. 자신이 범인이 아님에도 토막 살인 뉴스에 놀라고 옆집의 호의에 경계하며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던 하루가 짜증을 넘어서 이젠 현실에서 떨어진 일인 듯 낯설게 느껴졌다.
"냉장고가 이상한 것을 경찰에게 증명할 수 있다면, 내가 범인이 아니라는 걸 알아줄 텐데."
동식은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에 4개 냉동실에 3개. 총 7개의 크고 작은 낯선 통과 까만 비닐들이 동식을 맞이했다. 한 개도 줄지도 늘지도 않고 아까와 같은 개수였다.
"순간이동으로 물건이 생기는 기능을 경찰에게 어떻게 보여주지?"
냉장고에 순간이동 기능을 켰다가 끌 수 있는 스위치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생기는 현상이었다. 동식은 경찰에게 신고하는 상상을 해봤다.
“우리 집에 시체가 있습니다. 제가 가져다 둔 건 아닌데, 우리 집 냉장고에 있어요. 냉장고에서 갑자기 생겨났어요.”
경찰에게 할 말을 읊어보다가 커다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눈꺼풀을 닫자,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검정만이 가득했다. 절망적인 상황에 앞이 더 깜깜하게 느껴졌다.
"믿을 리가 없지. 초등학생의 거짓말도 이것보단 말이 되겠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에 문뜩 엄마 생각이 났다. 그냥 어린애처럼 무너져서 엄마에게 다 말하고 싶었다. 엄마 생각을 하자 당당히 드렸던 천만 원이 생각이 났고, A 브랜드 박도후 대리의 말이 생각났다.
[ 마약이나 살인 같은 것에 연관되면 당연히 계약은 파기되며 피해보상을 청구한다는 건데, 배우님은 걱정 없으실 것 같은데요? 하하. ]
현실 같지 않은 일에 감각이 몸과 멀어져서 붕 뜬 기분이 들다가도, 자신에게 닥쳐올 위기와 누명과 그에 뒤따라올 피해가 파동처럼 퍼져나가자 몸을 마비시키는 독이 올라오는 듯했지만, 8천만 원 이상의 돈을 물어줘야 할지도 모른다는 숫자 감각에 이성을 찾고자 고개를 흔들었다.
“정신 차려! 이건 현실이야. 방법을 찾아야 해.”
동식은 위장약을 찾아서 꿀떡 삼켰다. 힘들어서 쳐졌던 눈이 결심과 함께 힘이 들어갔다.
"일단, 우리 집에 있는 토막 난 시체들을 버리자. 어떻게 해서든 버려야 한다. 쓰레기 버리는 곳에 버려야 하나? 아이스박스 같은데 넣어서 산속에 가져가서 버려야 하나, 믹서기에 갈아서 변기에 조금씩 내려?"
동식은 자기 생각이 정상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토막살인 같은 짓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쓸 순 없었다. 피해자를 흔적도 없이 치울 수 있는 각종 방법을 떠올리며 어느 방법이 제일 좋은지 순위를 매겨보았다. 자동차에 시동을 건 듯이 금방이라도 실행해 버릴 듯이 몸에 힘이 들어갔지만, 서울대에 들어간 기특한 딸의 죽은 몸이라도 온전히 찾고 싶어 할 그녀의 가족들의 슬픔이 자동차 배기 연처럼 피어올랐다.
"나는 가족 없나! 나도! 엄마, 아빠가 있고 직업이 있는 사람이야! 경찰은 뭐 하는 거야. 범인 좀 빨리 잡지!"
혼자 있는 집에서 누군가에게 소리치듯 강하게 외친 말들이 탓할 사람을 찾았다. 경찰이 범인을 잡으면 지금보다 상황이 훨씬 좋아질 것 같았다. 시체를 믹서기에 간다든가 하는 애먼 짓까지 하지 말고 범인이 잡힐 때까지 시체를 그냥 놔둘지 잠시 고민도 했다.
'일단 놔둔다. 밖에 버린다. 집에서 처리한다.'
동식은 여러 가지 방법을 놓고 각각 선택할 시 어떤 방법이 있으며, 어떤 게 자신에게 제일 나을지를 생각하다 보니 잘 시간이 훌쩍 넘었다. 머리가 아프도록 생각하던 동식의 곁에는 버려진 위장약과 편두통약이 아무렇게 놓여 동식의 잠을 함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