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쾅. 띵동 띵동띵동]
겨우 잠이든 동식을 깨운 건 현관을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와 이어지는 초인종 소리였다. 부스스 일어난 동식은 피곤과 걱정을 어깨에 올린 채 침대 밖으로 나왔다. 문 쪽으로 간 동식은 문을 열지 못하고 멈칫했다.
'설마 경찰이 날 잡으러 온 건가?'
"주말 아침부터 시끄러워 죽겠네! 어느 집이야!"
집 앞에 서 있는 녹색 머리의 남자는 이웃의 고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동식의 집 문 앞을 지키고 서며 거칠게 문을 두드렸다. 동네 사람들 이목을 다 끌 것 같아서 동식은 문을 조심히 열었다.
"누구세요?"
처음 보는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동식이 잡고 있던 문손잡이를 가로채서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성난 황소처럼 성큼성큼 집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을 두리번거리는 남자의 모습에 당황한 동식은 재빨리 부엌으로 가는 길목에 서서 냉장고 앞을 자연스레 막아섰다.
"아니, 누구신데, 집에 함부로 들어옵니까. 이거 주거침입입니다."
"너 유나랑 사귀냐? 잤냐?"
"예?"
동식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온 남자는 곧 한 대 때릴 듯한 기세였다.
"나 김유나 남친이다."
"김…. 유나?"
"그래! 옆집 사는 김유나 말이야!"
동식은 익숙한 듯 낯선 이름을 곱씹어봤다.
"아. 옆집 분! 어제 처음 만난 사람인데…"
녹색 머리 불청객은 부엌 테이블을 주먹으로 쾅 내리쳤다.
"이 새끼가 대놓고 거짓말을 하네. 그러면 유나 집에 있는 네 사진들은 뭔데!"
‘사진이라니. 어제 처음 본 여자가 내 사진을 가지고 있다고?’
잠에서 깬 지 오분도 채 안 된 동식은 불청객의 쏘아붙임에 정신이 없었다.
"아니, 그게 무슨… 일단 진정하고 차분히 말로 합시다. 방금도 말했지만 저는 김유나라는 분을 어제 처음 봤어요. 옆집 분이 이웃에게 과일 나눠준다고 돌아다니면서 우리 집에도 찾아와서 그때 처음 봤어요."
"배우 인생 끝나고 싶은가 보지? 얼굴 믿고 여자들 끼고 다니면 좋냐? 내가 이렇게 발뺌 할 줄 알고 증거도 가져왔어!"
남자는 주머니에 손을 푹 집어넣고 뭔가를 움켜쥐더니 동식의 앞으로 던졌다. 꼬깃꼬깃하게 던져진 것들은 동식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었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모습, 집 앞에서 찍힌 사진, 자신의 SNS에 올렸던 친구가 찍어준 남친 짤 분위기의 사진 등이 적어도 열 장은 넘어 보였다.
“이거 다 유나 집에서 가져온 거야! 이래도 어제 처음 보는 사이라고 계속 우길거냐?”
"이이게 무슨. 아니, 잠시만요. 만약 당신이 말한 것처럼 사귀는 사이면 같이 찍은 사진이 있어야 하는데, 없잖아요."
동식은 남자가 증거라고 들이댄 사진들과 남자의 오해에서 어긋난 부분을 찾아냈다. 하지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네가 배우랍시고 비밀 연애해야 한다며 같이 사진 찍는 것을 피한 거겠지! 너 항상 그런 식으로 여자들을 만나고 다니지? 나도 음악하는 사람이야. 너 같은 애들 한두 본 줄 알아?"
무슨 말을 해도 녹색 머리의 남자에게 동식은 이미 여친을 뺏어간 사람으로 보이는 듯했다. 동식은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앞이 깜깜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던 안 믿으실 것 같으니 옆집 분 불러서 삼자대면해 봐도 좋아요. 그리고 이 사진 중 몇 장은 제 SNS에 올라간 사진들이고 나머지는 제 일상이 찍힌 걸 보니 파파라치 컷 사진 같은데, 제 동의 없이 찍힌 사진들입니다. 자세히 보세요."
동식의 말에 남자는 사진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 사이 동식은 핸드폰에서 SNS를 켜서 남자가 가져온 사진과 같은 이미지들을 보여줬다.
불청객 남자는 점점 화가 삭히면서 물음표가 담긴 얼굴로 변하고 있었다.
"옆집 분이 저랑 사귀는 사이라고 그러던가요? 전 어제 처음 봤는데, 언제 그런 말을 하던가요?"
"일주일 전쯤 헤어지자면서 만나는 사람 있다고 했어. 그리고 집에 가보니까 이런 사진이 잔뜩 있어서 난 새 남친이 당신인 줄 알았지. 그러면 유나가 당신 사진을 몰래 찍었다는 거야?"
동식은 어제 김유나와의 이야기 중에 '전 남자 친구가 범인인 줄 알았어요'라고 말하던 게 생각이 났다.
"저는 아무 관계도 아니니깐, 제 집에서 이러지 마시고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세요."
남자는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내가 유나를 위해 모든 다 했는데 이렇게 빨리 남자 친구가 생길 리 없지. 그렇지."
"저기요 이제 좀 나가주시겠어요?"
피곤한 듯 내쫓는 동식의 손길이 닿자, 불청객은 언제 울었냐는 듯이 떨궈있던 고개를 힘 있게 들어 세워서 동식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너, 잘 알아둬! 유나가 너 좋다고 해도 절대, 절대로 둘이 사귀지 마라. 유나랑 나는 함께 할 미래 계획도 서로 같이 생각해 둔 사이야. 지금은 잠깐 서로의 시간을 보낼 뿐이니까…."
"하.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옆집 분에게 사심이 전혀 없으니까요."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동식의 대답이 고개를 저으며 남자를 현관 밖으로 밀어냈다.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김유나의 집에 낯선 남자 두 명이 서 있는 게 보였다. 문 앞에서 김유나와 낯선 남자들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가 동식과 남자가 나오자, 눈이 마주쳤다.
"성호 오빠가 왜 옆집에서 나와?"
놀란 듯 눈이 커진 김유나의 반응에 낯선 남자들은 녹색 머리 불청객의 앞뒤를 막아섰다.
"아. 혹시 육성호씨 되십니까."
"그, 그런데요?"
"저희는 XX 경찰서 형사입니다. XX 하천에서 발생한 피해자분이랑 사건 당일 만나신 게 CCTV에 찍혀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예? 에?"
육성호는 당황한 기색으로 발걸음을 제자리에서 주춤했다. 동식은 아직 전부 닫지 못한 현관문을 등지고 있었다. 형사라는 말을 듣고 문을 완전히 닫고 싶었지만, 지금 타이밍에 닫으면 부자연스러울 것 같아서 놔둘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큰 키가 집안을, 수상한 냉장고를 가려주길 바라며 발 위치를 살짝 옮겨 열린 문틈을 최대한 가렸다.
“그럼, XX 천에서 죽었다는 게 혹시 미주에요?"
"네, 소미주씨 맞습니다. 피해자분과 어떤 관계인지요."
"미, 미주는…유나야…"
용의자로 몰린 듯한 육성호의 눈이 김유나를 쳐다보았다. 유나는 놀란 듯이 자신의 입을 손으로 가린 채 서 있었다.
'그럼, 이 남자가 살인범이란 거야?'
동식의 눈동자가 빠르게 상황을 읽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