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우리 집에 모르는 반찬이 있길래 너희가 두고 간 줄 알았는데… 그럼 그동안 누가 우리 집에 들어온 거야.”
“우리 아들 이제 진짜 배우 같네. 아들~ 연예인들 나쁜 일 하는 거에 끼지 말고, 손가락질받을 만한 일 하지 말고, 교회 못 가더라도 집에서 항상 감사 기도드려야 한다.”
“알았어요.”
“그리고, 네 사진이랑 사인 좀 집으로 보내라. 집으로 오면 더 좋고. 문석이 아줌마 딸이 너를 그렇게 좋아한다는데 뭐라도 줘야지.”
“공연 끝나서 여유 있으니까, 집에 한 번 들를게.”
“엄마가 팔자에도 없던 팬 미팅 준비하게 생겼어요~ 김 배우님~~ 호호호.”
동식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즐거움이 가득한 엄마의 수다가 이어졌다. 동식은 어느 정도 맞받아치다가 바쁜 척 전화를 끊었다. 집에 도착한 동식은 냉장고 앞에 섰다.
'토막 난 손도 반찬도 주변 사람들이 두고 간 것이 아니라니.'
동식은 냉장고에서 발걸음을 돌려 집에 있는 창문들이 잘 잠겨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별 이상 없이 다 잠겨있었다. 혹시 몰라서 현관 번호를 이번엔 아빠 생일로 바꿔 놓고는 다시 냉장고 앞에 섰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마냥 냉장고 문만 바라만 봤더니 불안감과 온갖 생각들로 머리가 무거워졌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야.”
지금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은 112신고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들이 와서 조사를 했더니 가짜 손이더라 하는 헤프닝을 담은 해피엔딩을 상상했더니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 범인은 유기 현장의 근방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 추측되며, 곧 수사망이 좁혀질 수 있을 거란 소식입니다. ]
기자는 믿음직한 경찰서를 배경으로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외쳤다.
“수사망이 좁혀져…?”
혼란스러운 동식이 TV와 냉장고를 번갈아서 바라보았다. 그러자 믿기 힘든 광경이 동식을 놀라게 했다. 문이 열려있는 냉장고에 낯선 반찬통이 ‘팟’하고 생겨난 것이다.
“어…? 뭐야…? 순간이동?”
당황한 동식이 의자에서 엉덩이를 들어 냉장고 쪽을 향하자 또 다른 반찬통이 생겨났다.
“어…. 어…? 안 되는데... 설마!”
동식은 잘린 손이 들어있던 차가운 냉동실을 급히 열어보았다.
“악!”
처음 보는 검정 봉지들이 작은 냉동실 안에서 쏟아져 나왔고 그중 하나가 떨어져서 동식의 발가락을 찍었다.'
“이이게 뭐야. 그만 생겨…! 그만!”
동식의 간절함이 허무하게 검정 비닐과 일회용 반찬통들이 마구 채워지다가 냉장고에 빈자리가 없을 때쯤 멈췄다.
“이거 설마 다 시체야?”
동식은 어지러운 냉장고 안과 바닥에 떨어진 것을 바라봤다. 머리가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워 몸은 멈춰 있었지만 눈동자는 빠르게 흩어진 것들을 번갈아 봤고, 심장과 숨소리는 달리기하고 있는 듯이 가빠왔다.
[띵동띵동]
그때 집 초인종이 울렸다. 날카로워진 경계심이 현관문을 쏘아보듯 빠른 시선을 던졌다. 잠시 뒤 다시 한번 초인종이 울렸고, 동식은 냉장고가 잘 닫혔는지 다시 확인해 본 후에 현관문에 있는 방범 렌즈에 눈을 가져다 댔다. 구멍을 통해 보이는 건 20대로 보이는 여자였다.
“누구세요?”
“앗! 저 옆집인데요. 301호요…”
여자는 동식의 목소리에 살짝 놀라더니 이내 말끝을 흐렸다. 집에서 벌어지는 일을 숨기고 싶어서일까, 동식은 문을 열고 나가 현관을 등지고 인사를 건넸다. 옆집 여자는 일회용 통에 담긴 과일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아랫집 분들에게 과일을 좀 나눠드렸는데, 옆집에도 드리려고요.”
동식은 일회용 통에 담긴 과일을 보고 자신의 냉장고에 불쑥 생기던 과일과 반찬들이 생각이 났다. 요즘은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데 젊은 사람이 이웃들에게 과일을 돌리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기분이 좋은 평범한 날이었다면 동식도 웃으며 받았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동식은 모든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고, 냉장고에 벌어진 이상한 일의 일부일 수 있다는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누나-!”
빌라 복도의 끝에서 초등학생 5학년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종종걸음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어? 203호네 아이네.”
“203호라뇨~! 송승현이라고요. 엄마가 이거 가져다 달라고 하셔서요. 과일 주신 답례라고 말하면 된대요.”
복도식 빌라는 건물 밖이 내다보였는데, 남자아이의 친구들로 보이는 또래들이 ‘승현아’를 외쳐댔다. 남자아이는 동식과 301호 여자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곧장 내려갔다. 상황을 보니 과일을 나눠주고 있다던 옆집 여자의 말이 거짓말은 아닌듯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멀어지니 동식은 자신이 냉장고의 일로 신경이 곤두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친절을 내미는 여자에게 괜히 험악한 표정을 지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헛기침하며 얼굴을 풀었다.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무슨 일 있으세요?”
“집에 있던 물건이 없어지는데, 돈이 안 되는 것들만 사라져요.”
혹시 자신과 같은 일을 겪고 있는 건지 싶었지만, 냉장고와 시체 같은 게 아니라 다른 방향의 대답이라서 자신도 모르게 한시름 놓는 기분이 들어서 숨을 한번 내뱉었다.
“어떤 것들이 없어지는데요?”
“냉장고에 있던 것들이 없어져요.”
옆집 여자의 말에 풀렸던 마음이 다시 차가워졌다. 눈이 커진 동식은 아차 싶어서 바로 진정하며 안부를 물었다.
“괜찮으세요? 참 이상한 일이네요. 생활형 범죄…. 뭐 그런 걸까요?”
동식은 누구나 건넬법한, 적당히 걱정스러운 말과 추측을 내뱉었다. 301호는 냉장고 물건들이 없어지고 302호는 냉장고에 물건이 생기고 있는 기이한 현상은 서로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활형 범죄라면 생활 물품이나 현금을 가져갔을 것 같은데, 우리 집 저금통은 잘 보이는 곳에 뒀는데도 그대로 있어요. 제 생각엔…”
여자는 귓속말하려는 듯이 발끝을 세워 동식의 키에 맞추려 했지만 188cm의 동식의 키에는 닿지 않았다. 동식은 허리를 숙여 여자의 속삭임에 맞춰주었다.
“변태 같아요.”
“네? 변태요? 냉장고 물건을 훔쳐 가는 변태도 있나요?”
예상외의 말에 놀란 동식의 눈동자를 설득하려고 하는 듯이 여자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 말 있잖아요. ‘냉장고는 그 사람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식재료, 관리 방법, 평소에 요리를 하는지 등을 알 수 있어서 생활이 그대로 노출된다고요. 일기장처럼 그 사람을 알기 쉬운 곳 중 하나인 거죠.”
“예?”
‘이 사람 정상인가?’
엉뚱한 생각을 자신 있게 말하는 여자를 보자 동식은 거리를 멀찍이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에 대해 집착하고 알고 싶어하는 부류들 있잖아요. 집 밖으로 잘 안 나가고 사람도 안 만나고 음침하게 지낼 것 같은 느낌이요. 그런 사람이 범인일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은 훔쳐 간 물건도 다 보관하고 파일링 해놓고 그렇겠죠? 미드 덱스터 속 주인공처럼요.”
여자의 말이 한 템포 쉬었다가 예상치 못한 뒷말이 달려 나왔다.
“혹시, 저랑 같이 범인을 잡아주실래요?”
작은 목소리로 첫인사를 건네던 옆집 여자는 어느새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동식의 눈썹은 물결모양이 되어 여자의 말들이 이해가 안 감을 표시했다.
“배우분이라면서요, 공인이시니깐 이상한 짓은 안 하실 것 같아서요. 즉, 범인이 아니라는 말이죠. 그리고 우리 집에 물건이 없어지던 날 집에 안 계셨던 것도 확인해 봤어요.”
“배우인 건 어떻게 아신 거죠? 게다가 방금 제가 집에 없는 날을 알고 있다고 …말씀하신 거죠?”
여자를 바라보는 눈이 또 한 번 찡그려졌다. 그런 동식의 얼굴을 보자 여자는 급히 양손을 저었다.
“아, 아니. 제가 의심해서 확인해 본 건 아니고 우연히! 오늘처럼 과일 좀 드리려는데 안 계신 날이 있었어요. 그날 냉장고 물건이 또 없어져서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거죠. 배우이신 건 집주인분이 알려주셨어요.”
“범죄가 일어나고 있으면 신고해야죠. 전 그냥 일반인인걸요.”
동식은 고개를 까딱여서 굿바이 인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여자는 그런 제스처를 못 본 듯이 말을 이어서 했다.
“역시 경찰을 불러야겠죠…? 경찰에 신고하면 우리 집을 막 뒤질까요?”
경찰이 집으로 찾아온다는 여자의 말이 동식의 발을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