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와 옆집 [上]

by 이월

“버스 시간 여유 있네, 뭐라도 먹고 나가야겠다.”


냉장고에서 꺼낸 곡물 우유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통장에 여유가 생겨서 처음으로 삼백 원 더 비싼 저지방 우유를 샀다. 동식은 일상의 작은 변화에 만족하는 얼굴을 지었다. 그가 얼음을 꺼내기 위해 냉동실을 열기 전까지는 말이다.


“또 누가 왔다 갔나? 오간 흔적이 없는데, 완전 우렁각시네.”


1인 가구용 작은 냉장고는 더 작은 냉동실을 가지고 있었다. 냉동실에는 낯선 검정 봉지가 들어있었다. 검정 봉지를 꺼내서 묶인 매듭을 풀었다. 봉지 안을 보게 되었을 때 동식은 수십의 바퀴벌레를 본 듯 비명을 지르고는 뒷걸음쳤다.


“으악! 이,이게 뭐야!”


동식의 냉동실에 들어있던 것은 토막 난 사람 손이었다. 마디마디 잘린 여러 개의 손가락과 손바닥 한 덩어리가 피 얼룩이 묻은 상태로 얼어있었다. 놀라서 뒷걸음친 동식은 자신도 모르게 등에 닿은 싱크대를 꽉 쥐었다. 그렇게 몇 초가 지났을까, 친구들이 가짜 손을 넣어놓고 장난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어지럽던 마음을 정리하며 다시 검정비닐 안을 쳐다보았다.


“가짜 손…. 이겠지?”


동식은 조각난 손가락과 손바닥을 차마 꺼내보진 못하고 비닐봉지의 끝부분을 잡고 살짝 움직였다. 좌우로 흔들리는 비닐 안에서 서로 달라붙어 얼은 손가락들과 따로 떨어져 움직이는 마디들이 굴러다녔다. 동식은 가짜의 흔적을 찾기 위해 손가락의 절단선을 유심히 보면서 눈을 찡그리며 집중했다.


“하나, 둘, 셋, 넷…. 잘린 손가락은 열 개가 넘어 보이네. 그리고 손바닥 하나…”


손바닥을 자세히 보니 손가락 연결 부분의 네 군데는 잘린 흔적이 보였지만, 새끼손가락 자리는 원래 손가락이 없었던 것처럼 피부가 덮여있었다.


“손가락에 털까지 있네. 정말... 리얼한 가짜네.”


‘정말’ 다음에는 진짜 같네. 라는 말이 나오려고 했으나, 기어코 가짜라는 말로 바꾸며 자신을 설득하려 했다. 속아주기엔 창백해진 피부 겉면과 새빨간 근육과 갈색빛의 피가 엉긴 단면들이 동식의 눈을 붙잡았다. 말한 것처럼 진짜가 아니길 바랐지만, 자세히 볼수록 가짜의 조잡한 부분을 찾아볼 수 없었다.


[~~♪]


검정 봉지 옆에 내려놨던 핸드폰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그 순간, 냉장고에서 찬 기운이 새어 나오는 듯한 착각. 마치 냉장고 깊숙한 곳에서 전화가 걸려 오는 듯한 불쾌한 감각이 일었다. 깜짝 놀란 동식은 핸드폰 화면을 쳐다보았다.


“모르는 번호인데…. 누구지?”


고민 끝에 통화 녹음을 켠 채 전화를 받았다.


"여보…. 세요?"


전화를 받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십니까, 여론조사기관입니다. 거주하고 계신 지역구가 XX 동이면 1번…"


“에이 씨!”


동식은 힘 빠진 소리를 내며 전화를 끊었다. 시간을 보니 출근 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서둘러 나가야 했다. 동식은 검정 봉지를 대충 묶고는 어디에 둘지 우왕좌왕 찾다가 결국 찝찝한 마음과 함께 냉동실에 다시 넣어놨다.


“어느 놈이 장난친 건지 잡히기만 해라! 집 비밀번호 이제 안 알려준다.”


동식은 현관 비밀번호를 엄마 생일로 바꾸고는 급히 집을 나섰지만, 평소에 타던 버스를 놓쳐서 카페 사장님에게 지각할 것 같다며 죄송함을 담은 카톡을 후다닥 보냈다. 그리고 바로 친구들 단톡방에 들어가서 누가 장난을 친 건지 물었다.


김동식 : [ 냉장고에 장난쳐놓은 거 누구냐 ]


소유준 : [ 뭐야 갑자기. 냉장고 뭔 일 있어? ]


김민후 : [ ? ]


소유준 : [ 떵식이 냉장고 고장 남? ]


이은성 : [ 이 몸 주말에 소개팅한다. 크크 ]


김민후 : [ 누가 너랑 소개팅을 하냐. 크크크 남한테 피해주지 말고, 솔로로 있자~ ]


단톡방에서 무슨 얘기만 하면 주제가 자꾸 새 나가는 건 왜일까. 우선 출근이 급한 동식은 긴 다리로 카페까지 성큼성큼 뛰어갔다. 삼분 지각이었다.


"출근 시간에 맞춰 오라고 해도 15분씩 일찍 오더니, 웬일이야? 우리 카페 얼굴마담 혹시 여자 친구 생겼나?"


사장은 앞치마를 매는 동식을 장난스레 쿡쿡 찔렀다.


“그런 거 아니에요. 화장실 때문에 늦었어요.”


여느 때와 같이 점심시간이 되자 직장인 손님들이 물살처럼 오갔다. 그중에 몇 명은 동식 배우를 알은체하는 사람도 있었다. 동식은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기에 평소보다 더 친절하게 움직이면서도 바쁘게 음료를 제조하느라 몸이 두개로 쪼개질 지경이었다. 오늘따라 유독 더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머릿속을 가득 채운 냉동실 속 검정 비닐봉지도 한몫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수영이 등장!”


동식의 타임이 끝나고 알바를 교대할 임수영이 특유의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며 들어왔다. 탈색한 분홍색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수영을 본 사장은 에버랜드 알바생인 줄 알았다며 삼촌과 조카 같은 케미로 인사를 했다. 임수영은 스텝 실로 들어가서 카페 로고가 적힌 앞치마를 입었다.


"동식 오빠 XX동 살지 않아요?"


"응. 맞는데 왜?"


수영은 핸드폰을 켜서 화면을 손가락으로 빠르게 톡톡 쳤다.


"거기 근처에서 시체 나왔다던데, 토막살인이래요."


놀란 동식은 수영의 핸드폰을 붙잡고 기사를 읽어 나갔다.


"오빠 그거 다 보면 폰 좀 충전기에 꽂아줘요~"


임수영은 스텝 실로 들어온 동식과 배턴터치 하듯 손님 대응을 하러 나갔다. 동식은 알겠다고 인사하고는 핸드폰을 바싹 잡고 집중했다.


[ XX 하천 토막 살인사건 ]


불안함과 불길이 가슴에서부터 퍼지는 느낌이 들자 숨을 고른 뒤 퇴근길을 나섰다. 평소였다면 오늘 오후 일정은 예약한 연습실에 갔다가 운동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자신만을 위한 스케줄로 차 있는 날이라서 동식이 좋아하는 요일이었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서 모공까지 뾰족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랑은 관련 없을 거야. 우리 집에 있는 건 친구들이 장난으로 넣어둔 장난감일 테니깐.'


연습실 예약을 취소하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자신을 다독여봤지만, 냉기에 갇힌 손가락 조각들이 하루 종일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불안한 마음이 XX 하천 살인사건과 관련된 기사들을 들춰보게 했다.


[시체를 유기한 장소는 담당 경찰서와 거리가 멀지 않은 곳이었다.]


[시체의 부패 상태가 각자 다르다. 묻은 날이 다를 것이다.]


[XX 하천은 산책길이라서 유동 인구가 제법 있으나, 유기된 장소 부근은 공사로 인해 길이 막혀있다.]


[경찰은 해당 지역 CCTV와 부근 차량 블랙박스를 조사하고 있다]'집에 있는 건 가짜일 거야.'


검색 [ 리얼한 가짜 손 ]


친구들이 구매했을 법한 가짜 손을 찾기 위해 검색해 봤다. '마술용 가짜 손','핼러윈 용 특수분장' 등이 줄지어 나왔다. 아무리 클릭해 봐도 냉동실 속 손과 비슷하게 생긴 건 찾아볼 수 없었다. 마른세수를 벅벅 해댔다.


'만약 우리 집에 살인범이 들어왔었고, 토막 난 손을 냉장고에 넣어 놓고 간 거라면…내가 범인으로 몰리는 건가? 아니, 근데 왜 하필 우리 집이야.’


온갖 생각들이 머리를 맴돌수록 발걸음은 점점 잘린 손이 있는 자기 집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에이잇! 이 세금 좀 먹는 쓰레기들아!”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대낮부터 술에 취한 아저씨 한 명이 비틀거리며 육중한 몸을 흔들고 있었다. 키가 180 중반쯤 되어 보이고 몸무게도 평균을 훨씬 초과했을 법한 외관이었다. 경찰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양쪽에서 취한 아저씨를 붙잡고 달래가며 몇 미터 떨어진 경찰차로 데려가려고 애쓰고 있었다.

“선생님 많이 취하셨어요. 일단 저희가 모시고 갈게요. 가서 물 좀 드시고…. 으악!”

앳돼 보이는 목소리의 경찰이 취객의 팔꿈치에 얼굴을 맞았다. 경찰들과 아저씨의 실랑이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더 늦기 전에 빨리 신고해서 범인을 잡아달라고 해야 하나? 내가 범인으로 의심받는 건 아니겠지? 설마 이상하게 꼬여서 내가 용의자가 되고, 연기 인생이 끊기면?'


검색창에 자신의 이름을 치면 연관검색으로 살인이 뜨는 상상을 했다. 그러자 점점 높아지는 스트레스에 목구멍을 무언가가 막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멀미가 나는 듯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고 미간에 주름이 좁혀져서 팽팽하게 올라오는 토악질을 막아냈다. 집에 들어 온 동식은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냉장고에 뭘 넣은 적이 있는지 다시 물어보았지만, 친구들은 그동안 과일이나 반찬 등 먹을 것도 넣고 간 적이 없다고 했다.


“내가 없을 때 우리 집에서 놀다 간 거 아니었어?”


“그런 적 없는데. 너 없을 때 너희 집 갔던 날이 있나? 아, 저번에 충전기 두고 가서 너한테 말하고 간 적 한 번 있네. 그날 말고는 말없이 간 적은 없는데?”


“….”


동식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동안 친구들의 말 없는 응원이라고 생각했던 반찬들과 과일, 그 모든 것들이 낯선 누군가의 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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