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집은 친구들이 자주 사용하는 아지트 역할도 해서 제가 없는 날에도 종종 오거든요. 어느 순간부터 냉장고에 못 보던 반찬이 있길래 친구들이나 가족이 가져다 둔 줄 알았어요. 예상가는 몇 사람들에게 물어봤는데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동식은 일어난 일의 일부를 이야기했다. 김유나가 혹시 지인들이 가져다 둔 게 아니라 본인 집에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면, 확인을 해보기 위해 두 집의 냉장고 물건들을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동식의 냉장고에 생겨난 물건들은 김유나의 집에서 넘어온 것인지 아닌지 밝혀낼 수 있었다.
‘육성호가 살인했고 그 시체를 여자 친구의 집에 넣어뒀다. 그리고 그게 우리 집으로 넘어왔다. 그것만 확실하면 사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야.’
서로의 반찬통을 확인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될진 모르겠지만, 자신의 팬이라면 의문을 함께 해주고 그깟 확인쯤 함께 해주지 않을까 싶은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앗! 그거 혹시 우리 집 냉장고에 있던 반찬 아닐까요?”
동식의 예상대로 김유나가 다급히 외치듯 말을 이었다. 동식은 조금도 놀라지 않고 능청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는 친구 중 한 명이 두고 간 거로 생각해요. 왜냐하면 외부에서 억지로 들어온 흔적 하나 없이 자연스럽게 있던 거라서요. 근래에 냉장고를 열어볼 일이 없긴 했지만 가장 최근에 확인해 본 바로는 그래요.”
사람을 함부로 의심하지 않는 선량함을 지키며, 후에 시체가 나오더라도 자신도 처음 봤다는 듯이 빠져나갈 구실을 만들었다.
“뭐가 있었는데요? 혹시 우리 집 냉장고랑 같은 반찬통인 거 아니에요? 세트로 샀던 유리 반찬통 중에 몇 개 없어진 게 있는데.”
김유나는 자기 집 반찬통을 꺼내보기 위해서 냉장고를 열었다.
“어라, 이게 뭐지? 처음 보는 건데.”
김유나의 멈칫거림에 동식도 냉장고 안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원통형의 일회용 통이 냉장고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다. 동식의 집에 있던 것과 같은 까만색 통에 흰 뚜껑이었다. 김유나는 호기심에 냉장고에서 통을 꺼내 들었고, 자기 집 냉장고에 시체가 들어있던 것과 같은 통을 보고 놀란 동식은 순간 몸이 벌떡 일으켜졌다.
‘퍽’
그 순간 김유나와 동식은 서로 부딪혔고, 김유나가 들고 있던 통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충격으로 뚜껑이 열리자, 안에 들어있던 검정 봉지가 튀어나왔다. 대충 묶여있던 검정 봉지에서 새어 나온 피가 바닥을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꺅!”
놀란 유나가 한발 물러섰다.
“고기 녹은 거…. 겠죠? 살인사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체인 줄 알고 놀라서….”
자기 생각에 동의를 구하는 김유나의 목소리는 동식에게 닿지 않는듯했다. 동식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검정 봉지를 바라보았다. 저것도 분명 동식의 집에 있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 사건과 관련 없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했지만,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토, 통 바닥에 메모가 붙어있어요.”
무서워서 다가가지 못하는 유나 대신 동식이 붙어있던 포스트잇을 떼서 확인해 봤다. 하트 그림이 주황색 형광펜으로 사납게 그려져 있었다. 동식의 집에선 본 적이 없던 것이었다.
"성호 오빠예요!"
"네? 그 사람이 가져다 둔 거라고요?"
"오빠는 어디든 하트를 그렸었어요. 선물, 편지…. 심지어 둘이 카페에 있다가도 냅킨에 하트로 낙서한 걸 주던 사람이라고요."
확신에 찬 김유나의 목소리가 포스트잇을 향해 소리치듯 말했다.
"저 안에 시체가 들어있다면…. 설마 미주가…!"
무서워하던 김유나는 통으로 다가가 중력에 강하게 당겨진 듯 주저앉더니 급히 묶인 비닐을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곧이어 몸의 한 부분인듯한 잘린 덩어리가 나왔다. 굵기로 보아 아마도 다리 부분 같았다. 김유나는 놀라고 슬픈 감정에 휩싸인 듯 바닥을 손으로 쾅쾅 쳤다.
"미주야, 미주야!"
동식은 김유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손을 잡았다.
"이러다 실신하겠어요. 일단 진정하세요. 바닥 그만치세요. 손바닥 빨개졌잖아요, 다치겠어요."
김유나는 동식의 품에서 눈물을 쏟아내다가 시간이 지나고 진정하기 시작했다.
"이제 괜찮아요?"
"네…죄송해요."
김유나는 자신을 토닥여주던 동식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잠시의 침묵 뒤에 동식의 포스트잇을 잡아 들었다.
"이게 육성호씨가 그린 하트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었어요?”
"저는 자주 봤으니까 딱 보면 알죠. 집에서 찾아보면 성호 오빠가 그린 하트가 있을 거예요. 연애할 때 많이 받았으니까 그거랑 비교해서 필체 검증 같은 걸 하면 경찰도 알수 있게 될 거예요."
김유나는 인상 쓰며 하트를 바라보았다. 김유나의 묘한 확신에 동식은 기시감을 느꼈다. 처음 만나던 날에도 자기 집에서 물건이 없어지는 것이 냉장고로 사람을 알아보고 싶어 하는 변태가 범인일 거라며 확신했지만, 동식은 그 생각 자체가 근거가 없는 헛됨으로 느껴졌었다.
"나에게만 착했던 사람이에요. 그 외에는 사람들하고 많이 싸우고 막말도 많이 했어요. 자신이 혐오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옆에 있는 사람이 불편할 정도로 감정을 드러내고 했으니까요."
김유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토막 난 시체로 다가갔다.
"그리고 생각보다 똑똑하지 않은 사람이에요."
시체가 들어있던 봉지 안에서 뭔가 꺼내어 동식에게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