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수의사 선생님

by 이월

< to.수의사 선생님 >


선생님, 저의 처음을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애는 2, 3년 전쯤 서울에 있는 부모님 집으로 옮겨졌어요. 부모님의 사랑을 잔뜩 받으며 토실토실한 몸을 유지하고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더 이상 살이 찌면 안 된다던 선생님의 말씀에 조심은 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부모님은 고양이에게 간식을 챙겨주며 골골골 소리를 들으시는 낙이 있으셔서 다이어트는 실패하고 유지만 했습니다. 제이크가 박스를 좋아하는 것을 아시고 집안 곳곳에 박스를 두시는 바람에 집이 제법 좁아졌었답니다. 크기가 작은 박스도 아니고 중대형 박스였거든요.


그렇게 엄마 껌딱지로 집에서 돌아다니다가 뒷마당으로 나가서 콧바람도 쐬며 지냈어요. 저랑 둘만 살다가 가족도 잔뜩 생기고 이후엔 본인을 귀찮게 하는 조카도 태어났습니다. 조카는 저희 엄마를 고양이 할머니라고 불렀어요. 영상통화를 하면 고양이 보여달라고 하고, 귀찮은 제이크가 고개를 획 돌리면 고양이가 안 보인다며 할머니를 졸랐습니다. 조카는 고양이 할머니 집에 오면 제이크를 만지려고 졸졸 따라다녔고 제이크는 피해 다니기에 바빴습니다. 보드랍고 푹신한 고양이의 털이 많이 신기하고 좋았을 테지요. 그렇게 제이크는 저랑 둘만 살다가 대가족의 품에서 냥냥냥 말 많은 떼쟁이가 되어 지냈답니다.


아참. 제이크는 선천적으로 콩팥이 한 개인 채로 태어났대요. 그래서 심부전증으로 9년의 삶을 마감했습니다. 24년 11월 말쯤에 선생님에게 전화해서 예방접종 이름을 물어봤던 것은, 아이가 아픈 원인을 찾으면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작년에 미뤄두며 안 맞은 예방접종 때문인가 싶은 생각으로 서울에 있는 수의사 선생님에게 말씀드리고자 주사 이름을 물어봤던 거였답니다. 당연히 그것 때문은 아니었지만, 혹시 실마리라도 잡힐까 싶었었답니다. 이렇게 글로 먼저 인사를 드리고 안부를 전합니다.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라요.


-제이크 누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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