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의사들 Chapter 2.
매장 상태로 발견되는 신석기 시대 유해의 대부분의 연령은 40세였다. 당시 많은 어린 산모들은 출산 중에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해 사망했다. 설령 운 좋게 태어났다고 해도 그 아이들 중 절반 이상의 영유아들이 4세 이전에 사망했다. 장수하지 못하고 사망한 당시 사람들의 75%는 탈수가 수반되는 설사가 포함된 감염에 의한 사망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렇듯 여러 가지로 가혹했던 환경과 극악의 유아기 생존률을 감안하면 석기 시대인들의 평균 수명은 25세 ~ 30세 정도 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도 오늘날 같이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하진 않았다. 과도한 음식 섭취로 인해 발병하는 만성 성인병도 없었다. 별도의 가공 과정을 거치지 않고, 조미료도 첨가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원시 인류의 음식은 오늘날 우리 기준에서 봤을 땐 매일 건강 생식을 하던 것과 다름 없었다. 그때의 사람들을 상상해본다.
해가 오래 머물면서 날이 따듯하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사슴 사냥이 수월하다. 강한 체력이 요구되는 사냥을 못하는 소년과 노인들은 주로 송어를 낚아왔다. 입 안에 나쁜 기운이 든 사람들은 사슴 고기 보다는 송어 고기를 더 선호했다. 어머니는 우리들에게 수지 덩어리를 나눠주며 부지런히 씹어 뱉게 했다. 입안에서 침과 함께 걸죽해진 수지 덩어리를 부서진 그릇이나 부러진 창 사이에 붙여 고정해 한나절 놔두면 감쪽같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나저나 막내가 걱정이다. 막내 역시 입에 나쁜 기운이 들어 턱이 단단히 부어 있다. 수지 씹는 것도 힘겨워 한다. 아버지가 저렇게 오래 놔두면 나중에 더 크게 화를 치를 수 있다고 해서 곧 의사에게 데려갈 것 같다. 그래서인지 막내는 아버지만 봤다하면 도망 다닌다.
튀르키에 메르신 대학이 주도한 연구진이 1만년전 석기 시대 스칸다나비아의 스웨덴 서해안 HusebyKlev에서 발굴된 Pitch (주로 자작나무에서 추출한 수지로 휘발 성분이 증발하면 송진이 된다. 씹어서 접착제로 사용했다. 자작나무는 신석기 시대 중요 자원이었다.) 조각 분석에 의하면 당시 10대 ~ 20대 젊은이들은 사슴, 사과, 붉은 여우, 회색 늑대, 청둥 오리, 삿갓 조개, 송어, 헤이즐넛을 섭취했던 것으로 보인다.
HusebyKlev에서 발견된 씹은 피치 조각의 주형 주조물, (출처 : Cosmos Ancient ‘chewing gum’ reveals poor Stone Age dental health, Evrim Yazgin)
당시 신석기인들은 사냥 도구나 다양한 생활 용품에 Pitch를 접착제처럼 사용했다. 식물에서 채취한 수지를 씹어 사용하기 좋게 만들면 숙련된 공예가들에 의해 접착 용도로 활용됐다. 해당 현장에서 100개 이상의 Pitch 조각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해당 장소는 이와 같은 도구들을 제작하는 장소였을 것이다.
3명의 10대 아이들 중 하나의 DNA에서 심각한 치주염을 앓았던 흔적도 발견됐는데 이 소녀는 수지를 씹는 것 뿐 아니라 사슴 고기를 씹는데도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 13,700년 전의 모로코 국립고고학 연구소와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2014년도 ‘비둘기 동굴에서 발견한 원시 인류 화석 52구에 대한 분석’ 연구에 따르면 아프리카 북서부 지역 원시인들의 치아 상태는 매우 부실했으며 극심한 치통과 구취에 시달렸을 것으로 추정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치아에 조금만 신호가 와도 바로 치과로 달려가겠지만 당시에는 그냥 참고 견뎌야 했을 것이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결국 신경은 죽었겠지만 그때까지 통증은 상상 못할 고통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주로 도토리, 잣, 피스타치오와 함께 종종 달팽이도 먹었다. 이와 같은 식단은 치아의 법랑질을 부식시키는 박테리아에겐 더할 나위 없는 에너지 공급원이었다. 특히 도토리는 치아 사이 사이에 틀어 박혀 충치를 유발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을 것이다. 박테리아의 왕성한 구강내 활동은 참기 힘든 구취를 몰고 왔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 입냄새가 난다며 다투거나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지 않고 대화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토리의 달콤함을 포기할 순 없던 것 같다. 이들 공동체의 도처에는 압도적으로 많은 도토리 껍질이 발견됐다.
오른쪽 어금니에 심한 충치를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아래턱엔 농양으로 인해 뼈에 천공이 생긴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 BBC, Jonathan Amos의 Moroccan Stone Age hunters' rotten teeth)
그렇다고 신석기인들의 치아 상태가 마냥 심각하기만 했던 상태는 아니었다. 2007년, 스위스 국립 방송은 베른 대학과 취리히 대학 교수진과 함께 라인강 유역에 석기 시대를 그대로 재현한 환경을 조성한 뒤 10명의 피험자를 대상으로 4주 동안의 관찰 실험을 진행했다. 피험자들은 ‘신석기 식단’을 제공 받으며 어느 누구도 치약이나 칫솔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제약 조건이 있었다. 그들이 양치를 위해 사용할 수 있던 건 오로지 라인강 유역에서 발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천연 재료에 한해서였다.
4주가 지난 후 대부분 구강 상태가 더 악화됐을 것으로 생각했겠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양치를 안해서 구강 상태나 나빠지는 것 보다 정제된 설탕을 섭취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4주 동안 치은염의 심각도가 감소한 결과가 나왔다. 우리가 먹는 식단에 따라서 구강 건강에 더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이다.
호주 애들레이드 대학의 고대 DNA 센터소장인 앨런 쿠퍼 연구팀이 2013년 2월 18일자 Nature Genetic 지에 발표한 보고도 비슷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농경 사회가 도래하면서 식단이 바뀌고, 식단이 바뀌면서 구강 박테리아 구성이 변화됐다. 그 뒤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가공된 식재료들을 소비하게 되면서 구강 박테리아의 다양성이 극적으로 감소하면서 우식 유발 균주가 더 유리한 상황이 조성됐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대인의 구강 상태가 충치 유발에는 더 취약한 상황이 된 셈이다. 그래도 현대인에겐 다양한 종류의 치약 칫솔, 휴대용 치실, 리스테린이 있다. 물론 원시 인류들에게도 나름의 방법이 있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자치대학· 영국 요크대학 선사 고고학 연구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선사 시대인들이 충치균을 억제하는 ‘향부자’ 를 식후에 씹어 양치 역할을 했음을 밝혀 내기도 했다. 향부자는 사초과에 속하는 다년생 식물로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잘 자라는 식물이다. 이 향부자에는 사이페린(cyperene)· 사이페롤(cyperol) · 이소사이페롤(isocyperol)같은 성분이 풍부하고, 스트렙토코쿠스 무탄스(Streptococcus mutans) 같은 치태와 충치 생성균을 억제하는 성분이 들어있다. 원시 인류가 이와 같은 성분을 알았을 리는 없다. 단, 식물 특유의 향이 있어 원시 인류가 식후에 이 향이 강한 향부자를 씹고 입 안을 헹구어 내며 일종의 양치 행위를 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겠다. 그 때의 사람들을 상상해본다.
치아 중 하나에 뚜렷한 마모 자국이 있어 그가 이쑤시개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 The man from Korsør Nor / Dental health in the Mesolithic period)
며철 전부터 아내의 볼이 크게 부어 올랐다. 그 좋아하는 사슴 고기도 통 먹질 못한다. 연어 같이 부드러운 생선들만 삼키고 있다. 오늘 아침엔 아예 일어나질 못했다. 몸이 불덩이 같다. 끙끙 앓는 소리만 낼 뿐이다. 이대로 뒀다간 며칠 못 넘길 것 같다. 그렇게 조심했건만 악령이 입으로 들어오다니, 내일은 족장에게 사정을 말하고, 사냥에서 빠져야겠다. 이제 사냥감을 몰이하는 몰이조에 속한 아들 녀석이 추격조로 들어갈만큼 성장하기도 했다. 날 밝는대로 의사를 찾아가 봐야겠다.
13,000년전과 12,740년전 북부 이탈리아 Riparo Fredian 유적지에서 발견한 치아 화석에는 충치에 감염된 치아내 조직을 닦아내고 긁어낸 뒤 역청으로 떼우는 작업까지 한 흔적이 있다. 역청이 주로 석기 시대 무기들을 손잡이와 연결하는 접착제 역할을 했던 것을 감안하면 태초의 치과 의사들은 치아를 메우는 데 있어 당시에 동원 가능한 최고의 소재를 사용했던 셈이다.
발견된 화석을 컴퓨터를 재구성한 이미지로 연구자들은 각 구멍의 내벽에 있는 자국이 감염된 조직을 제거하는 데 사용되는 뾰족한 돌 도구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추정한다. 구멍이 치수강까지 뻗어 있어 시술 과정은 매우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출처 : Stone Age hunter-gatherers tackled their cavities with a sharp tool and tar Tooth find adds to evidence that some form of dentistry has existed for at least 14,000 years)
파키스탄 서부 인더스강 계곡의 9,000년전 석기 시대 대단지 메흐가르(Mehrgarh) 유적지에서 발견된 300개의 표본에서는 모두 11개의 구멍 뚫린 어금니를 확인했다. 치아에 구멍을 뚫는 사례로는 최초의 사례인 셈이다. 이러한 치료법은 이 지역에서 무려 1,500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태초에 치아에 구멍을 뚫은 치과 의사들의 환자는 모두 9명이었다. 이 중에 여성이 4명, 남성이 2명, 성별을 확인할 수 없는 3명이 있었다. 연령대는 20세에서 40세까지 다양했고, 이 중 1명은 3번이나 치료를 받았다. 대부분 입안 깊은 곳 어금니 표면에서 치료가 이뤄졌다. 미학적 목적이었으면 이가 보이는 곳에 뚫었을 것이다.
발굴 현장에서는 매우 가느다란 부싯돌 드릴 헤드도 나왔다. 이와 같은 기기를 다뤘던 태초의 치과 의사들은 모두 고도로 숙련된 공예 장인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곳에서 다양한 보석류 구슬에 치아에 낸 구멍보다 더 작고 정교한 구멍을 낸 구슬이 발견됐고, 그와 같은 구멍을 내는데 쓰인 더 가늘고 날카로운 드릴 헤드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구멍을 뚫은 치아에 충전재를 넣은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천공 주변에 마모된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특정한 충전재를 사용해 고통 없이 씹는 행위를 지속할 수 있게 조치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안타깝게도 이 의사들의 기술은 다음 세대로 전수되진 않았다. 9명의 환자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드릴링 기술을 보유한 태초의 치과 병원이 일부 높으신 분들만을 위한 전유물은 아니었던 셈이다.
교합면에 두 개의 구멍이 뚫린 Mehrgarh 성인 남성의 상악 왼쪽 두 번째 대구치, (출처 : L. Bondioli (로마 L. Pigorini 박물관)
치과는 오늘날 마취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질겁하고 싫어하는 치료 분야다. 마취는 생각조차 할 수 없던 시대, 이들의 치료 과정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아마도 사지를 묶는 것으로 모자라 많은 인원들이 팔 다리를 붙들어 매고 있었을 터다. 석션 같은 장비는 있었을 리 만무하니, 치료 과정 중에 발생하는 출혈은 쉴새 없이 목구멍을 넘어가다 못해 피로 가글을 하고 있는 상황이 전개됐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명의 시민들은 당장의 치통을 끝장내기 위해 공포의 치과 치료에 몸을 맡겼다. 그래도 태초의 치과 의사들은 자신 있었을 것이다. 치아보다 더 작고 정교한 보석을 세공하던 보석 세공사가 본업이었을테니 말이다. 쉴새 없이 내지르는 환자의 비명 속에 부싯돌 드릴 헤드를 들고 땀 흘리며 중얼 거렸을 태초의 치과 의사를 상상해본다.
“집중해, 이건 호박 목걸이야, 이건 호박 목걸이야, 난 호박 목걸이를 세공하고 있는거야!! ”
★ 브런치 진출 기념해 앞으로 지난 3월 11일 출간된 <태초의 의사들> 책 내용을 나눠 매주 월,목에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