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데라토>
바이마르에서 문학 애호가를 자처하는 프랑스 사내와 친해진 적이 있었다. 그는 내가 경도되어 있던 19-20세기 프랑스와 독일 문학에 박식해 보였고 가볍게 대화를 나누어보아도 읽은 척이 아닌 읽었다는 것을 쉬이 느낄 수 있었다. 와인과 함께 우리의 대화는 한껏 고조되었다. 그는 분위기의 여세를 몰아 러시아 문학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러시아 문학을 접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명색이 소설가 지망생을 자처해오며 많은 책을 읽어온 나는 문학 애호가 앞에서 작아지고 싶지 않았다. 도스토예프스키, 솔제니친, 톨스토이. 나는 읽지도 않은 작가들을 평론들과 다른 작가들의 에세이를 통해 접한 정보들을 총동원해 그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쳤다.
나는 오랜만에 문학적인 대화를 한다는 것에 신이 나 얼마 전에 읽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을 통해 부조리를 분석해낸 카뮈의 에세이를 나의 견해 인양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악령을 쓴 작가가 누구인지 갑자기 기억나지 않았고, 생각나는 대로 톨스토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조금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악령의 작가는 도스토예프스키라고 정정해주었다.
아,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 모르면 침묵이나 지키고 있는 것이 현명한 처사인 것이다. 지적 허영심이 되려 나의 무지를 드러내고 만 것이다. 그때부터 그 순간을 떠올릴 때면 얼마나 이불 걷어차곤 했던지. 그날의 수치심은 네 달이 지나 한국에 돌아온 지금까지 남아있었다. 러시아 문학을 알아야 한다는 하나의 사명감으로 변질되어 말이다.
그리하여 한국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솔제니친의 소설을 펼친 것이었고, 어제는 드디어 나를 창피하게 만들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을 읽기 시작했다. 문득 책장을 넘기며 그날 그 수치심이 내겐 얼마나 행운이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기고만장하던 나의 무지와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주는 것이다. 감사한 일이다. 어쩌면 수치심도 나를 움직이는 큰 원동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