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우 Oct 28. 2018

길을 찾다

순례자가 되기로 결심하다


길을 잃고 말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스마트 폰을 꺼내 지도 어플을 켰다. 길 찾는 데 이것만큼 정확한 걸 알지 못하기에. 이제 목적지를 검색하면 최단 경로를 알 려줄 터였다. 허나 아무것도 입력하지 못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조차 잊고 말았다. 분명 내겐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있었다. 절박하게 매달리는 것도, 뜨겁게 열망하는 것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것도 있었다. 목적지는 바로 그곳이었다. 그 모든 것이 기다리고 있는 희망의 왕국. 하지만 그곳으로는 어떻게 가야 하지?


꿈의 목적지로 데려다줄 것만 같던 이동 수단에 몸을 맡겨본 적도 있었다. 어쩌면 이 도로의 끝에, 이 철로의 끝에, 이 항로의 끝에 있을지도 몰라. 모조리 올라타보았다. 오토바이, 자동차, 버스, 기차 그리고 페리와 비행기까지. 머나먼 이방의 변두리까지 가보았다. 하지만 그곳에 꿈꾸던 세계는 없었다. 분명 무언가를 놓쳐버린 것만 같았다. 어쩌면 너무 쉽게 도착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곳은 빠르고, 편하고, 쾌적하게는 도착할 수 없는 곳인지도 몰랐다.


어디론가로 향하는 가장 근원적인 수단, 도보를 간과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향해 진득하게 두 발로 걸었던 적이 언제였던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걷는 게 등한시되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 되도록 걷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최단 시간에 최단 경로로 가는 것이 경제적이라고, 그 시간에 다른 걸 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여겨지는 세상이다. 뚜껑을 열고 굉음을 내며 쏜살같이 내달리거나, 편하고 안락하게 반쯤 누워서 가면 멋지다고 여겨지기까지 한다.


때문에 사람을 위한 길은 온갖 이동 수단에 자리를 내어 주고 말았다. 대지는 아스팔드 포장도로와 철도로 잠식되어 갔고, 그것도 모자라 바다와 하늘은 항로로 수놓였다. 이것은 사람을 위한 길이지만, 사람을 위한 길이 아니기도 하다. 가령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여정을 검색하면 갖가지 이동 수단으로 다양한 경로가 제공된다. 하지만 도보길에 관한 정보는 나오지 않는다. 원초적인 길에 관해선 수요도 정보도 제대로 없는 것이다. 도대체 사람을 위한 길은 어디로 간 것 일까.


길을 걷고 싶었다. 사람다운 속도로 걸을 수 있는 그런 소박한 길을 걷고 싶었다. 햇살을 만끽하고 대지와 호흡하며 지평선 너머의 아득한 목적지로 나아가고 싶었다. 그것은 어떤 향수가 아니었을까. 인류의 집단 무의식 속에 잠재 되어 있는 저 태곳적의 기억. 무언가 중요한 것을 찾아 정든 고향을 떠나 험난한 여정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태초의 인간. 초라하지만 위대한 여정. 어쩌면 길이 끝나는 곳에 꿈의 왕국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바로 그런 길을 찾아 나섰다.



낭만적인 무언가를 찾아 방황하는 순례자. 바로 그런 순례자가 되고 싶었다. ©2015, leewoo









* 위클리 매거진을 통해 연재한 글이 출간을 했습니다. 미연재분을 포함 총 50개의 에세이가 엮인 산티아고 순례 에세이집 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