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사회에서 소외되어가는 노년에 대하여

by 이우

세무서에 업무를 보러 갔던 날이었다. 번호표를 뽑고 순서를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소파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고갤 돌려보니 어느 아주머니와 직원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아니 세무서에서 이런 업무도 안 해주면 어떡해요?" 그녀가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족히 6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그녀는 주방에서 일하다 왔는지 앞치마를 그대로 하고 있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 걸까. 그녀의 사정이 궁금했던 나는 언쟁을 지켜보았다.


"아까도 말씀드렸잖아요. 이제 정책이 바뀌어서 홈페이지에서 직접 하셔야 해요." 젊은 남자 직원은 짜증을 억누른 친절한 말투로 대답했다. "이 나이 먹고 인터넷에서 내가 어떻게 하란 말이에요." "은행에 가서 공인 인증서를 발급받으시고 국세청 홈페이지에 등록하시면 쉽게 할 수 있어요." "공인인증서가 뭔데요? 그리고 컴퓨터는 만져본 적도 없는데 무슨 인터넷을 하겠어요." "주위에 젊은 사람들한테 도와달라고 하세요." "그래서 내가 여기 온 거잖아요."


"공인인증서는 개인적인 거기 때문에 저희가 직접 해줄 수는 없어요. 직접 하셔야 하는 거예요." "컴퓨터도 없는데 어떡해요 내가." "컴퓨터가 없으시면 피시방 가서라도 하셔야죠. 그 방법밖에 없어요." "혼자 식당 하면서 주방 보고 서빙하고 다 하는데, 언제 피시방을 가요. 아이고." "아주머니, 이렇게 하신다고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는 건 없어요. 죄송하지만 안내 사항대로 해주셔야 합니다." 그의 대답에 아주머니는 울화가 치민 듯 자릴 박차고 일어나 소리쳤다. "나 같이 늙으면 개인 사업도 못하는 세상이네!"


여느 식당 주방에서 본 것만 같은 짧은 파마머리의 아주머니. 그녀의 여운은 컸다. 세무서에서 업무를 보는 내내, 아니 하루 종일 그녀의 생각이 들었다. 왜 세무서에서는 그녀를 도와주지 않은 것일까. 어떤 업무길래 홈페이지를 통해 개인적으로 하도록 절차를 간소화한 것일까. 햇살 좋은 날이었지만, 가슴이 먹먹하기까지 했다. 그녀의 잔상에 이상하게도 부모님이 오버랩되었던 것이다. 늙어만 가는 나의 부모님도 어디 가서 저런 취급을 받지 않을까. 그리고 어쩌면 먼 미래의 어느 날, 속절없이 늙어버린 나도.


그녀의 잔상은 오래도록 내 곁에 맴돌았다. 친한 동생을 만났던 어느 날이었다. 그녀에게 좀처럼 잊히지 않던 그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너무 슬픈 이야기네요. 매몰찼던 그 직원도 분명히 아주머니처럼 늙는 날이 올 텐데." "근데 그 사람도 공무원이니 절차대로 한 거겠지. 아무래도 우리나라는 행정 절차가 너무 디지털화, 간소화되는 것 같아. 이제는 뭘 배우지 못하면 사회 구성원이 되기 힘든 거지." 나는 인터넷 뱅킹도 하지 못하는 부모님을 예로 들며 말했다.


"그런 것 같아요. 근데 가만 보니까 독일이 그런 면에서는 살기 좋은 나라였던 것 같아요."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그녀가 말을 이었다. "독일은 행정 절차가 복잡해서 서류의 나라라고 하잖아요. 뭘 하려면 무조건 서면으로 서류를 작성하고 기다려야만 하죠. 또 얼마나 오래 걸린다고요. 근데 중요한 건 느린데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업무 처리를 해줘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또 순전히 아날로그 적이죠." "아날로그 적이라. 독일은 여전히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고 있는 거네."


그녀가 고갤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것보다 독일과 한국은 보편적인 시민상(像)을 다르게 상정하는 게 아닐까요." "그게 무슨 말이야?" "가령 우리나라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공인 인증서를 쓰고 인터넷을 통해 행정 업무를 볼 수 있을 거라 여기는 거죠. 사실 그건 젊은 세대에 국한된 거잖아요. 그런데 독일은 보편적인 시민의 기준을 달리 보는 것 같아요. 아날로그 적이고 절차가 복잡하고 느리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죠. 서면이라는 것이 어린 사람들도, 노인도 쉽게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공인 인증서와는 달리."


그녀의 말이 맞았다. 우리 사회는 편의를 위해 행정 절차를 간소화, 디지털화시키지만 그것을 배울 수 있는 세대는 한정적이다. 이런 변화의 물결은 오직 젊은 세대들을 위한 것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들은 아무래도 적응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사회에 새로운 절차가 생긴다. 그것을 익히면 동화되고, 익히지 못하면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그렇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은 이제 사회의 변방으로 조금씩 밀려나게 된다. 그리고 사회의 언저리를 맴돌며 소외된다.


우리 사회에 대한 슬픈 성찰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이었다. 책을 빌리기 위해 도서관에 갔던 때였다. 조용한 도서관에 큰 소리가 났다. 어느 노인과 도서관 사서가 목소리를 높이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주고받는 몇 마디 대화에서 언쟁의 원인들이 파악되었다. 컴퓨터가 없던 노인은 은행에서 받은 서류들을 들고 컴퓨터를 이용하기 위해 도서관에 들른 거였다. 그리고 사서에게 업무를 도와달라고 했다. 하지만 사서는 공인 인증서는 개인적인 일이기 때문에 도와줄 수 없다고 했다.


사서는 그래도 친절하게 노인을 달래 보냈다. 서류 뭉치와 은행 보안카드를 주섬주섬 챙겨 가는 백발의 노인에게 연민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그를 도와줄 수 없었다. 나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친구를 만나러 약속 장소로 가야 했다. 애석하게도 나 역시 매몰찬 이 시대의 일면이 아닐까. 우리 시대는 밀어내고 있다. 시대의 조류를 익히지 못한 노인들을 말이다. 그들의 뒷모습에서 저 먼 옛날에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지층 속으로 사라진 공룡들이 떠오른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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