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전압에 나는 얼마나 잘 맞는 것일까
스무 살 무렵, 나는 한 친구가 무척이나 존경스러웠다. 함께 매일 밤 클럽으로 향하던 친구는 내가 갖고 있지 않은 능력을 갖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여자를 대함에 있어 거리낌이 없었다. 연상을 만나도, 연하를 만나도, 엄청 예쁜 여자를 만나도, 짙은 눈 화장에 완전 세 보이는 여자를 만나도 흔들림이 없었다. 언제나 그들을 웃게 했고, 어느새 허리에 손을 감고 있기까지 했다. 나는 감탄 아닌 감탄을 했다. 어떻게 저 녀석은 다양한 여자들과 저렇게 소통이 잘 되는 것일까.
그는 나와는 확연하게 다른 점이 있었다. 여자마다 대하는 태도가 달랐던 것이었다. 상대들의 성향들을 재빨리 파악하곤, 그녀들에게 맞는 대화 주제들, 달콤한 칭찬들, 그리고 개그들을 쉴 새 없이 퍼부었던 것이었다. 친구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수십 개의 어댑터를 갖고 있는 것만 같았다. 상황과 상대에 따라 때에 맞는 규격과 전압을 갈아끼웠던 것이었다. 누구와도 잘 맞았다. 반면 나는 그 누구를 만나도 같은 주제에 같은 레퍼토리를 늘어놓고 있을 뿐이었다. 아! 지루하다! 나는 가면이 없었던 것이었다.
친구처럼 누구와도 두루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친구를 모방했다. 녀석의 능청스러움을 따라 했고, 개그들을 차용했으며, 행동들을 체화(體化) 했다. 모방은 생각했던 것보다 효과가 좋았다. 드디어 나도 어댑터가 생긴 것이었다! 하지만 항상 문제가 생겼다. 당장에는 만사가 좋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댑터가 사실 나와는 전혀 맞지가 않는 것이었다. 어댑터를 끼운 나는 기능 고장을 일으키기 일쑤였던 것이었다.
실로 긴 시간이 걸렸다. 나는 어댑터를 끼곤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기까지 말이다. 그것은 비단 스무 살 무렵, 나의 모든 것을 지배했던 이성문제에 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도저히 가면을 쓰고 사람을 만날 수 없었던 것이다. 젠체하는 것이 불편했다. 애써 재미있는 척하는 것도 불편했다. 전압을 바꾸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편했다. 어리숙하고 부끄러운, 그래도 나름 재미있다고 자부하는 나의 모습 그대로 말이다.
내 나이 서른하나. 주위를 둘러보면, 그때 친구 녀석처럼 유능한 어댑터를 끼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곤 한다. 그들은 유능하다고 불린다. 유쾌하다고, 긍정적이라고, 인간관계가 좋다고, 사회생활을 잘 한다고 칭송을 받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제는 지난 시절의 친구 녀석처럼 그 사람들이 부럽지는 않다. 나는 저 사람처럼 어댑터를 여러 개 갖고 다닐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어댑터는 나 자신은 물론 그것에 연결되는 타인까지 망가뜨린다는 것을 알기에.
이제 나는 나만의 규격과 전압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 어딘가에 잘 맞는 사람들이, 세계가 있을 거라 희망을 가져보며 말이다. 그렇다. 내게 어댑터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