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곁에 맴도는 베토벤의 선율에 대하여
아버지 곁에는 언제나 감미로운 선율이 울려 퍼진다. 그것은 바로 엘리제를 위하여로 잘 알려진 베토벤의 피아노를 위한 바가텔 25번 가단조 (WoO 59번)의 주제부 멜로디. 귀가 닳도록 들어서 마치 이 선율이 아버지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렇게 말하면 아버지가 무척이나 클래식에 정통한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는 클래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클래식이 자신의 곁에 맴돌았을 뿐.
물류 사업을 하는 아버지는 지게차를 한 대 소유하고 계신다. 톤 단위로 계산되는 육중한 물건들을 너끈하게 들어 올리는 괴물 같은 이륜자동차. 이것은 작업장에서 짐들을 이리저리 나르며 쉴 새 없이 전후좌우로 움직인다. 이때 베토벤의 선율도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지게차에 내장된 후진 경보음이 바로 엘리제를 위하여의 주제부 선율이다. 아버지의 움직임 속에는 베토벤이 함께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멜로디의 출처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한 번은 식탁에서 이야기를 꺼내 본 적이 있었다. 당신을 맴도는 그 선율이 바로 베토벤의 것임을 알고 계시냐고. 하지만 아버지는 무척이나 무심한 태도였다. 그저 그건 자신에게 돈 들어오는 소리일 뿐이라고.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래도 돈이 들어오는 소리니 아버지에게는 의미 있는 선율이겠지.
하루에도 몇 번씩 지게차를 운전하시며 베토벤의 선율에 둘러싸인 아버지를 볼 때면 종종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베토벤을 좋아하는 건 아버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고. 나의 맥북 아이튠즈 재생목록에서 가장 많은 재생 횟수를 기록한 것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2악장이고, 또 가장 좋아하는 건 현악 4중주 16번 3악장이다. 전자는 아름답고 고귀한 선율에, 후자는 장엄한 주제의식에 매료되고 말았다.
언젠가 토마스 만의 소설 <파우스트 박사>를 읽고 몇 날 며칠을 가슴이 두근거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주인공 아드리안 때문이었다. 그는 비운의 천재 작곡가로 유년 시절 베토벤 교향곡 3번에 흠뻑 빠져 그 정서를 언제나 곁에 두기 위해 전 악장의 악보를 들고 다녔다. 멋진 예술가가 되어보고 싶던 나는 아드리안을 모방했다. 다만 20세기의 인물이었던 주인공과는 달리 MP3를 활용했다.
베토벤에 대한 애정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수다쟁이가 되고 싶어 견딜 수 없다. 이십 대 시절, 내겐 연례행사가 하나 있었다. 바로 연말이 되면 홀로 예술의 전당으로 향해 베토벤 교향곡 9번을 듣고 호텔에서 하루를 보내고 오는 것. 게다가 타투를 좋아하는 나는 베토벤이 현악 4중주 16번의 마지막 악장의 일부와, 악보에 남겼다는 메모, 'Muss es sein?(그래야만 하는가?)', 'Es muss sein.(그래야만 한다)'를 다음 도안으로 생각하고 있다.
물론 베토벤을 좋아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아버지 곁에 맴도는 선율 때문은 아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인과 관계를 깊이 따져보면, 아버지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아버지는 내가 유년시절 바이올린을 육 년이나 교육받게 해 주었다. 이따금씩 아버지는 그 시절을 웃으며 회상한다. 당시 벌던 한 달 수입보다 많은 비용을 나의 레슨과 콩쿠르 비용으로 지출했지만 언제나 행복했다는 것이다.
클래식에 대해 친숙하게 만들어준 것은 아버지가 분명하다. 하지만 당시에는 클래식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독서를 사랑했다. 독서가 되려 클래식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밀란 쿤데라나 토마스 만의 문학작품이나 니체의 사상서가 바로 그것이다. 생각해보면 이것 또한 아버지의 애정 없이는 가질 수 없는 취향이었다. 소유하고 있는 천오백 권이 넘는 장서는 대부분이 아버지 덕에 구입했으니 말이다.
베토벤에 둘러싸인 아버지는, 베토벤을 좋아하는 나를 무척이나 자랑스레 여기신다. 그다지 대화를 하지 않는 부자 사이여서 내색은 하지 않으시지만, 주변에는 아들 자랑을 엄청 하신다. 소설도 출판했고, 문학상도 여러 번 탔다며 말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변변찮은 작가 혹은 작가 지망생에 불과한 나를 마치 엄청난 예술가로 말해버렸다. 사실 나는 아버지 곁에 맴도는 건조한 전자음으로 변질된 베토벤에 지나지 않는데.
아버지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언제쯤 그의 곁에 맴도는 선율이 내가 알고 있는 '진짜' 베토벤의 선율로 대체될 수 있을까. 나는 오늘도 아버지를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