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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Mar 03. 2019

소통의 결핍, 침묵의 대화

왜 나는 글을 써야만 했는가에 대한 길 위에서의 성찰


격하게 혼자가 될 수밖에 없던 이유는 단연 쓰고 있는 소설 때문이었다. 주인공은 치기 어린 시인이었는데 어느새 그에게 푹 빠져 있었다. 고독 속에서 처절하게 시를 쓰는 그를 그려내기 위해, 또 그를 헤아려보기 위해 내가 직접 그에 게 몰입해야만 했다. 홀로 있는 시간은 내게 즐거움이었다. 그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으니까. 어느새 그를 사 랑하고 아끼고 있었다. 사실 그는 전혀 새로운 인물이면서 동시에 나의 일부이기도 했다. 그동안의 경험, 인식, 생각들이 한데 뒤섞인 새로운 나였다. 


순례 틈틈이, 그리고 하루의 여정이 끝나면 노트북을 펼쳤다. 마주한 지면에 글자들이 막힘없이 쏟아졌다. 다른 사 람이 보기엔 입을 굳게 다문 것처럼 보였겠지만, 실상은 수다쟁이나 다름없었다. 하고 싶던 이야기들, 할 수밖에 없던 이야기들을 쉴 새 없이 떠들고 있었다. 자문을 해봤다. 어째서 나는 수다쟁이가 되고 말았는가. 어째서 가슴속에 쌓인 것들을 누군가에게 직접 이야기하지 못하고 글로 써나가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고등학생 때까 지 방에서 홀로 레고를 조립하며 놀았다. 학창 시절에는 왕따를 당하며 무척이나 마음 아파하기도 했다. 친구도 많지 않았다.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입대 초반, 무릎을 심하게 다치게 되면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했다. 그때부터 가까이하게 된 것이 바로 책이었다. 늘 곁에 책을 갖고 다녔지만 친구는 없었다.


전적으로 소통의 부재였다. 소소한 이야기를 나눌 사람 도, 깊은 속내를 털어놓을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말하지 못해 가슴속에 응어리진 것들을 결코 이야기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였을까. 주위 사람들이 내게 이런 성질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적잖이 당황하곤 했다. 그건 너무 깊이, 치부마저 드러내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이야기를 마치면 한결 나아진 듯 가벼워 보였다. 당시에는 대화가 치유와 인정의 방법이라는 걸 몰랐다. 


사람과의 소통의 방법을 터득하지 못했던 나는 곁에 있는 책을 통해 소설이라는 양식을 어렴풋이 배웠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확실한 세상과의 소통 방법으로, 치유와 인정의 수단으로 채택했다. 그동안 대화의 결핍을 만회라도 하 듯 순례길의 나는 침묵을 지키는 수다쟁이였다. 대화를 하기 위해 홀로 고립되어야만 했다. 그래서 홀로 있는 시간은 순례길의 친구들이 외로울 것이라 오해했던 것과 달리 행복했다. 그들이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길 위의 나는 소설을 쓰고 있었다. 훗날 이 이야기에 누군가 귀 기울여 줄 행복한 상상을 하며. 



 

그렇게 나는 길 위에서 『레지스탕스』를 집필해냈다. 일러스트는 『자기만의 모험』의 삽화.










* 위클리 매거진을 통해 연재한 글이 출간을 했습니다. 미연재분을 포함 총 50개의 에세이가 엮인 산티아고 순례 에세이집 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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