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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Feb 24. 2019

진짜 순례자

진짜 순례자라 자부하던 오만이 산산이 부서지다


내심 ‘진짜 순례자’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소영이와 함께 비탈길을 걷고 있었다. 경사가 그리 급 하지 않아 경쾌하게 걷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갑자기 저 앞에서 요란스럽게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까이 가보니 어떤 중년의 사내가 짐수레를 끌며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다. 수레에는 텐트며 옷가지며 취사도구 같은 온갖 잡동사니가 담겨 있었다. 조금은 평온하던 우리와는 달리 그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보아하니 그 역시 산티아고로 향하던 순례자였다.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고, 얼굴은 고난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도와주고 싶었다. 나는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었다. “도와줄까요?” 하지만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이건 나의 몫이야.” 그는 거친 숨을 내쉬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묵묵히 수레를 끌며 언덕을 올라갔다. 자 신의 몫을 온전히 짊어진 그의 얼굴은 마치 내밀한 심연으로 침잠한 듯했다. 어딘가 그의 여정이 신성해 보이기까지 했다. 우리는 머쓱해하며 그를 그저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그의 거친 호흡과 수레바퀴 소리는 등 뒤로 아스라이 멀어져 갔다. 순간 단단했던 무언가가 무너져버렸다. 그것 은 오만하게 품었던 ‘가짜’와 ‘진짜’를 구별했던 이분법적인 잣대였다. 그야말로 보다 더 엄밀한 의미의 진짜 순례자처럼 보였다. 내겐 서로를 격려하고 도와주는 가족과 다름없는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오롯이 자신만의 몫을 짊어지고, 혼란해진 순례길 위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자신만의 길을 고독하게 걷고 있었다. 진정한 의미의 순례이자 고행이었다.


나는 그런 것들에 매료되고 말았다. 진짜라고 여길 만한 무언가 짙고, 지독하고, 강렬한 인상들 말이다. 그가 주 었던 인상은 계속해서 아른거렸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알베르게의 게시판에서 마주한 한 장의 사진 앞에서 발길을 뗄 수가 없었다. 주인은 사진 속 주인공을 소개해주었다. “두 다리를 잃은 브라질 사내인데 의족에 의지해 순례길을 걸었어요. 정말 멋진 사내였죠. 산티아고에 도착 해선 엽서까지 보내주었답니다.” 사진 한 장으로도 짙은 아우라가 느껴졌다. 


이들에게서 마주했던 강렬한 이미지는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그들을 떠올릴수록, 오히려 내가 그저 가짜 순례 자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벌써 순례길의 절반 이상을 걸었는데, 아직 나는 먼 것일까. 과연 나는 진짜 순례자라고 자부할 수 있는가. 처절하고 절실하게 무언가를 갈망하며 나만의 길을 걷고 있는가. 이제서야 어느 정도 짙어졌다고 여겼건만. 다시 조급해지고 말았다. 서둘러 짙은 색깔의 ‘진짜 순례자’가 되고 싶은 마음에. 







 








* 위클리 매거진을 통해 연재한 글이 출간을 했습니다. 미연재분을 포함 총 50개의 에세이가 엮인 산티아고 순례 에세이집 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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