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가 알려준 생의 비밀
스페인을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는 산티아고 순례길. 생 장 피드 포르를 떠나온 이래, 하루도 빠짐없이 서쪽으로 나아갔다. 정착하지 않는 순례자를 둘러싼 환경은 시시각각 변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한 가지 사실을 알아챘다. 순례 길 위에 달라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태양의 순행이다. 태양은 동쪽에서 떠올라 서쪽으로 진다. 순례자는 태양을 따라 서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 영원한 순 행과 이것을 따라가는 여정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만 같았다.
이른 새벽, 어스름에 잠긴 길을 걷다 보면 서서히 세상이 밝아왔다. 일출이었다. 어둠이 걷히고 길 위에 기다란 그림자가 드러났다. 문득 뒤돌아보면 감탄사 이외에는 아무 말 도 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색의 향연이 펼쳐졌다. 노랗게 타오르던 지평선의 노을은 동쪽 하늘을 선분홍 빛으로 물들 이다가 이내 온 세상을 밝혔다. 뒤돌아야만 볼 수 있는 노을 은 내 지난 과거와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아름다움의 향연은 나를 위로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그 시절은 아름다웠노라고.
하지만 계속해서 아름다운 광경에 넋 놓은 채 감상에 젖 어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제 눈앞에 늘어선 그림자를 따라 서쪽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묵묵히 걷다 아쉬움에 뒤돌아보면 노을은 어느새 흩어져 사라져 있었다. 뒤돌아본다는 건 언제나 그랬다. 눈부시게 빛나는 건 문득 뒤돌아 마주한 찰나뿐이다. 늘 과거에 빠져 있는 것보다 어느 날 불현듯 돌이 켜 본 과거가 더 아름답게 빛이 난다. 마치 예기치 못한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쁘기까지 하다.
하루의 여정을 마치곤 가벼운 마음으로 길 위에 섰다. 어느새 등 뒤에 있던 태양은 서쪽 지평선을 향해 지고 있었 다. 일몰이었다. 지평선은 아름다움으로 붉게 타올랐다. 세상은 노랗고 붉은, 그리고 연보라 빛의 향연으로 물들어갔다. 그것은 마치 미래에서 기다리고 있는 꿈과 이상의 예고편처럼 느껴졌다. 그래, 나는 저걸 좇아가는 것이다. 어쩌면 노을처럼 가슴 멎도록 아름다울지도 모를 지평선 너머의 세계를 향해서.
나의 여정은 과거를 등에 업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셈이었다. 문득 이 여정이 삶의 메타포라는 확신이 들었다. 예 로부터 동쪽은 탄생과 시작을, 서쪽은 죽음과 끝을 의미했다. 어쩌면 나는 동쪽에서 시작해 서쪽으로 향하는 삶의 여정의 비밀을 어렴풋이 깨달은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끝이 죽음이라도 두렵지 않았다. 일출과 일몰은 언제나 아름다웠고, 길 위의 여정도 언제나 미지의 것들로 가득 차 있었기에.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산티아고로, 서쪽으로 나아가는 이유가.
* 위클리 매거진을 통해 연재한 글이 출간을 했습니다. 미연재분을 포함 총 50개의 에세이가 엮인 산티아고 순례 에세이집 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