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것을 이룬다는 것에 대하여
서울신문과 문화일보에 나의 이야기가 실렸다. 서울신문에서는 나의 두 번째 장편소설 <서울 이데아>를 집중 보도해 주셨고, 문화일보에서는 소설가로서의 나를 박상우 작가님과 함께 기획 보도를 해 주셨다. 모두 한 달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신문에 보도된 건 문학의 길을 걷게 되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때문인지 이건 내겐 무척이나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신문에 나의 이야기가 실렸다는 것에 대한 감격이 아니었다. 이제야 받아들여졌다는 감격이었다.
나는 서른넷의 소설가이다. 일곱 권의 책을 냈고, 독자들도 나를 소설가로 불러주니 스스로를 소설가라고 하고 다닌다. 예전에는 부끄러웠지만 이제는 조금 익숙해졌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제 막 문학도의 티를 조심스럽게 벗고 있는 중이다. 문학도와 소설가 사이의 그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아직 과도기에 있는 나는, 겨우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많은 시련과 상처들이 있었다. 작품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과 거절을 수도 없이 받았다. 서울신문과 문화일보도 내겐 상처를 준 곳이었다.
문학도들에게는 연례행사가 있다. 바로 연말이 다가오면 열리는 신춘문예이다. 나는 십여 년 전부터 이 행사에 마치 모든 것을 걸은 것처럼 살았었다. 매년 연말 무렵이면 집필한 원고를 챙겨 우체국으로 향했다. 인쇄된 일고 여덟 개의 원고를 소중히 가방에 챙길 때면 마치 한 해 동안 키운 작물을 수확하는 기분이었다. 이 원고들을 봉투에 고이 담아 신문사의 주소들을 하나하나 적었다. 행여나 원고가 배송 도중 사라질까 테이프로 밀봉했다. 그렇게 원고는 각 신문사로 떠나갔다.
우체국을 나설 때면 늘 기대와 두려움이 공존했다. 이제 나는 할 수 있는 걸 다했고 남은 건 두 개뿐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박수갈채와 찬사 거나, 거절이 내포된 무응답. 나는 전자를 기대했지만, 늘 내게 오는 건 후자였다. 자신감에 가득했던 나는 해를 거듭할수록 무응답에 의기소침해졌고, 점점 침울해져 갔다. 신문사는 내가 당당하게 입성할 곳이라 자신 있게 여겼는데, 점점 내가 닿을 수 없는 세계라는 두려움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결국 닿지 못했고, 신문사는 내게 많은 상처를 남기게 되었다.
신문사의 문턱에서 늘 황량한 겨울을 맞이해야만 했다. 나는 결국 다른 길을 찾아 마침내 소설가가 되었다. 일곱 권의 책을 냈지만 여전히 신문사는 내게 문을 열어주지 않은 세계였다. 서울신문과 문화일보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제는 알고 있다. 그들이 문을 열어주지 않은 건 합당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그것은 바로 내가 부족해서였다. 거절당했다는 상처, 부족함의 쓰라린 인정. 그 위에서 나는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다른 길을 찾아 나는 일곱 권의 책을 포함, 두 권의 장편소설을 쓴 소설가가 되었던 것이다.
서울신문에 이어 문화일보에서 연락이 오고, 인터뷰 끝에 기사가 실리게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받아들여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토록 원할 때는 이루어지지 않은 일들이었다. 간절하게 소망하던 때로부터 거의 8년의 세월이 지난 후였다. 그들은 그때의 내가 아닌, 지금의 내게 문을 열어주었다. 상처와 슬픔 위에서 8년의 정진 끝에 이제 겨우 그들의 눈길 한 번을 받게 된 것이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그들에게 받아들여질 이유를 만들고 있었노라고.
이번 두 신문사의 보도를 통해 나는 큰 교훈을 얻었다. 세상은 지금 내가 원하고, 갈망하고, 소망하고, 욕망하고 또 바라는 무언가를 쉬이 허락해주지 않는다. 시간 속에서 쌓은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지만, 그제야 그 모든 것들 중 아주 일부를 허락할 뿐이다. 사실 우리가 무언가를 갈구한다는 것은 지금의 역량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것들 뿐이다. 가령 부자가 되고, 인정을 받고, 무언가를 쟁취한다는 것도 밀도 있는 시간과 타당한 이유가 필요하다. 그것은 내일, 모래, 아니 일주일 뒤에도, 아니 한 달, 아니 일 년으로도 부족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의 나도 상처 투성이었던 지난날의 문학도였던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 세상으로부터 가감 없이 비판받고 끊임없이 거절당한다. 여전히 인정에 목말라 있고, 더 발전한 작품을 쓰고, 보다 훌륭한 소설가가 되기 위해 입술을 깨문다. 그래서 조급하다. 하지만 새삼스레 깨달았다. 모든 일에는 밀도 깊은 시간과 타당한 이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래서인지 조급하고 답답하기만 했던 나의 하루하루가, 어떤 증거이자 암시인 것만 같았다. 나는 원하는 것들로부터 받아들여질 어느 찬란한 미래, 그 희망찬 나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 보도 자료
- 문화일보 : https://m.munhwa.com/mnews/view.html?no=2023072501032212082002
- 서울신문 : https://m.seoul.co.kr/news/newsView.php?id=20230630017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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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GI_L8tVYNYc?si=1vr1MbKFJ4dK6HD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