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를 좌시하지 않는 행동하는 소설가가 되자
소설가로 커넥티드 북페어에 참가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내게는 중요한 자리였다. 북페어는 새로운 독자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의 장이었다. 소설가의 가장 큰 기쁨은 독자들에게 읽히는 것이라 생각하는 나는, 들뜬 마음으로 북페어로 향했다. 북페어 장소는 젊은 사람들의 유동 인구가 많은 홍대였다. 차에서 싣고 온 그간의 출간작들을 손수레에 옮겨 담았다. 챙겨 온 책이 125권이나 되었다. 당시(2022년) 출간작이 5권이나 되었기에 통 크게 각 25권씩을 챙겼다. 홍대의 거리를 가르는 수레 소리는 요란했다. 드르륵, 드르륵. 북페어 현장으로 향하던 나는 문득 머나먼 타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도착하기 전에 봤던 뉴스 사진들 때문인지도 몰랐다. 러시아가 군사 훈련을 빌미로 우크라이나에 침공한 지 한 달째, 훈련은 전쟁으로 변질된 지 오래였다. 나는 요란한 수레 소리를 들으며 우크라이나를 떠올렸다. 그곳에는 전차들이 이것보다도 더 큰 소리를 내며 진격하고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한국은 너무 평화로운 일상이 지속되고 있었다. 현장에 도착하니 참가자들이 바삐 매대를 꾸미고 있었다. 나도 전쟁을 생각하고 걱정하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서둘러 북페어를 준비했다. 내게 주어진 건 작은 2인용 테이블이었다. 그곳에 그간 출간했던 나의 저작들을 잘 진열했다.
북페어는 내게 중요한 자리였다. 나는 늘 그런 의문을 갖고 있었다. 사람들이 굳이 나를 읽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서점에만 가봐도 책은 너무나 많다. 매일 신간이 쏟아져 나온다. 유튜브에는 재미있는 콘텐츠가 넘쳐난다. 그런데 굳이 시간을 내서 나를 읽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럴 때면 나는 스스로 이유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직 젊은 소설가인 나는 문학적 권위를 갖고 있지 못했다. 이렇다 할 문학상도 '아직' 받지 못했다. 이런 내가 읽히기 위해서는 직접 독자들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고상한 소설가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세를 낮추고 독자들을 만나기로 결심했다
나는 북페어 기간 동안 점심도 거른 채 오전 10시부터 8시까지 종일 서서 독자들을 맞이했다. 독자들이 지나가면 구경하고 가시라고 인사를 했고, 눈이라도 마주치면 만들어 간 굿즈를 드리면서 나의 부스로 안내를 했다. 매대에 머무는 독자분들에게는 각 작품에 대해 소개도 했다. 그들의 질문에도 막힘없이 답을 했다. 매대에 빼곡히 쌓여있던 책은 점점 독자들의 손에 쥐어져 떠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답답한 응어리가 느껴졌다. 독자들에게 작품을 소개하고 책을 파는 내 모습이 내가 꿈꾸던 소설가의 모습과는 어딘가 거리가 있는 것만 같았다.
내가 동경하는 소설가들은 행동하는 문인이었다. 헤밍웨이, 피츠 제럴드, 조지 오웰. 그들은 펜대만 잡고 있는 문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세상의 불의가 터지면 온몸을 던지는 행동하는 문인이었다. 헤밍웨이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미국 육군에 지원하지만 시력 때문에 탈락하고는 어떻게든 전선에 가서 무언가라도 하기 위해 방법을 찾아보게 된다. 그는 적십자에 지원해 이탈리아 야전 병원의 운전병이 되게 된다. 훗날 그의 절친이 되는 피츠 제럴드도 마찬가지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조지 오웰은 스페인 내전이 터지자 그 어떤 망설임도 없이 공화파를 위해 참전했다.
그들은 전쟁 속에서 무엇이 정의이고 불의인지 끊임없이 자문했고, 그에 대한 답을 하듯 참전 경험을 녹여 훌륭한 소설을 집필해 냈다. 나도 동경하는 소설가들처럼 무언가 해야 되지 않나 싶었다. 북페어의 수익금을 우크라이나에 기부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동경하는 소설가들이 불의를 위해 몸을 던졌던 것처럼 전투적으로 책을 소개하고 팔았다. 한 명의 독자라도 놓칠세라 점심도 굶었다. 자리에 앉지도 않고 내내 서서 독자들을 맞이했다. 이틀 동안의 수익금은 70만 원이 조금 넘었다. 나는 이 금액을 모두 우크라이나에 기부했다. 북페어는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했던 강행군이었지만 보람찬 전투였다.
나도 소설가로서 세상의 정의를 위해 무언가를 했다는 뿌듯한 마음에 SNS에 기부 소식을 전했다. 많은 독자분들이 좋아해 주셨다. 자신들이 구매한 문학 작품이 좋은 곳에 쓰여 기쁘다고 했다. 하지만 익명의 계정으로 악플을 받기도 했다. 국내에 기부할 곳이 많은데 굳이 우크라이나에 기부를 했다고 한심하다는, 우크라이나가 먼저 도발한 전쟁인데 뭐하러 돈을 보내냐는 비난도 있었다. 이를 통해 기부를 모두가 좋은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럼에도 나는 다짐했다. 세상의 거대한 불의를 그저 좌시하지 않고, 행동하는 소설가로 살자고 말이다.
이번 글에 대한 영상도 준비되어 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