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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May 16. 2018

우리는 인간으로서 합격인가 실격인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읽고


<우리는 인간으로서 합격인가 실격인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읽고







인간 실격. 제목부터 강렬함이 느껴졌다. 마치 법정에서 최후의 선고를 내리고, 지워지지 않을 낙인을 찍은 듯한 제목이었다. 다사이 오사무가 누구인지 몰랐다. 그저 제목에 이끌리듯 책을 펼쳤다. 아, 멋지도록 지독하다! 밤새 읽어내린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홀로 내뱉은 탄성이었다. ‘멋지도록 지독하다’ 이것은 내가 아름다운 삶에 내리는 최고의 찬사이다. 아름다운 삶이 무엇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여기에 나는 보편성에서 벗어나 특수성을 추구하는 한 개인의 삶이라고 답하고 싶다.


아름다운 삶. 정의가 모호하다면 무언가 특별한 삶이라고 하자. 우리는 무언가 특별한 삶에는 마음속 깊이 반향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로부터 교훈을 얻어 반면교사를 삼거나, 삶에 대해 물음을 던지며, 또 자신의 삶을 반추해보며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인간 실격은 그런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그런 소설이다. 작가의 자화상으로 보이는 주인공 요조는 자신의 삶을 고백한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를 보내왔습니다.” 우리는 그의 고백으로부터 이제 빠져나갈 수 없다.

요조는 유년시절에는 사람들과 공감하기 어려워 특유의 익살로 그들의 관심을 산다. 이것은 하나의 가면 같은 것이었다. 그는 가면 속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하여 하인과 가정부에게 범해진 사실마저 숨기고 지내야만 했다. 중학교 시절 역시 가면은 벗지 못한 채 가면 속 본성에 어울릴 만한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 술, 담배, 매춘과 좌익운동에까지 가담하게 된다. 내연관계였던 유부녀와는 동반자살을 기도하기까지 하지만 홀로 살아남는다. 고등학교에서 퇴학 조치를 받는다. 호적에서 제적 당하고, 또다시 숱한 여자들과 관계를 가진다.

마침내 순수한 여인 요시코를 만나지만 그녀가 다른 사내와 성관계를 갖는 것을 목격하곤 충격에 빠져 또다시 자살을 시도한다. 두 번째 자살미수. 그는 쇠약해진 육체와 정신을 모르핀에 의지하고 중독자가 되고 만다. 마침내 모든 것이 무너진 요조는 친가에 도움을 청하지만, 그가 보내진 곳은 정신병원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더욱더 피폐해져만 간다. 퇴원한 그는 형이 마련해준 자그마한 집에서 늙은 식모와 함께 요양을 한다. 그의 나이 스물일곱. 그는 벌써 백발이 성성하고 이가 빠지기 시작한다. 그는 스스로를 폐인이라 칭한다. 인간 실격이다.

요조는 왜 평범한 삶을 살지 못했을까. 그는 고백한다. ‘세상이란 개인이 아닐까.’ 자신을 판단 지으려는 세상, 용납하지 않으려는 세상, 가르치려 드려는 세상, 매장하려는 세상. 그저 ‘강하고 준엄하고 무서운 것’이라고 생각하던 세상이 사실은 개인들의 편협한 관점에 불과하다는 깨닫게 된 것이었다.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그저 개개인의 관점에 불과하다면, 사람들로부터 버려진 요조에게는 세상이 없어진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세계를 찾으려는 듯 발버둥 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나 그 처절한 시도의 결과는 인간 실격일 뿐이었다.


그의 삶은 정말 인간으로서 실패한 인생이었을까. 삶에 있어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 기준 또한 ‘개인이라는 세상’이 만든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요조에게 있어 그의 삶은 하나의 시도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타인들의 세상으로부터 버려져 자기(自己)만의 세상을 찾으려는 존재를 위한 힘겨운 시도 말이다. 아니, 하나의 실험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어내려는. 아니, 하나의 연습이었다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하나의 유일한 인간이 되려는 연습. 그러나 실격이라는 낙인. 그럼에도 그 연습의 과정이 아름답게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소설은 그를 기억하는 마담의 한 마디로 끝이 난다. “우리가 알던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눈치 빠르고…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 하느님같이 착한 아이였어요.” 순수하고 착한 아이. 우리도 역시 한때 그러한 아이가 아니었던가. 우리는 어떤 인간이 되기 위해 어떤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이란 낙인은 우리에게 물음을 던지고 있다.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인간 합격이라는 낙인을 찍을 수 있을는지. 우리의 인간 연습도 결국에는… 그래도 그것이 유일하다면야, 아름답지 않을까. 다자이 오사무의 지독한 삶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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