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새살이 돋을 수 있게

책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겠지만 오늘 밤은 어떡하나요> 서평

by 이진영


무릎을 심하게 다친 적이 있다. 따가운 게 싫어 소독을 게을리했더니 탈이 났다. 겨우 내려앉은 딱지 아래로 진물이 흘러나왔다. 병원에 가니 딱지를 떼고 처음부터 소독해야 한다고 했다. 생살이 뜯기는 고통 속에서 하나를 배웠다. 덮어놓고 외면한 상처는 언젠가 덧난다.


이 진리는 마음에도 해당한다. 덮어둘 수는 있어도 없어지지는 않는 게 마음의 상처다. 그래서 상처를 정확히 알고 보듬어야 한다. 새살이 돋으려면 죽은 세포를 긁어내야 하는 법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이 분야의 베테랑 의사다. 당장은 아프지만, 나를 낫게 해 줄 거라는 확신을 준다. 그래서 이건 건강한 아픔이다.


고백하자면,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울었다. 힘든 시절 썼던 일기를 다시 펼쳐보는 마음으로, 그렇게 울었다. 내게도 잊히기만을 기다리는 기억들이 있다. 그럭저럭 잊은 체하면 일상은 영위할 수 있지만, 속이 곪아 잘못 건드리면 피고름이 흘러나오는. 그런 기억 말이다. 책은 묻어뒀던 기억을 끄집어낸다. 망각을 바라며 욱여넣었던 기억들이 빼꼼 밖으로 나온다. 그렇게 마주한 기억은 생각보다 거칠지 않다. 담담하게 어루만지고 싶을 뿐이다.


소중한 구절들을 소개하고 싶다. 여러 번 곱씹어도 읽을 때마다 좋은 문장들이다.



나의 쓸모를 증명하려고 살아가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외로운 질문을 머금은 채, 지하철을 탄다.

음악을 고를 의지가 없어서 이어폰만 꽂고 있다.


p. 42 땀 냄새는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삶은 빨간 상처와 노란 진물과 파란 약이 섞인 사악한 장난이라고.

누가 마구 휘저으면 검은색이 되는 거라고.

그래서 악마는 농도 짙은 검은색인 거라고.


p.51 삶원색



오늘 밤을 견디기 위해서

하루를 견뎌낸 나를 위해서

일그러진 마음을 자꾸만 만져주어야 한다.


p77. 눈뜨기 전 30분



얼굴도 본 적 없는 작가는 나와 같은 표정을 한 채로 이 책을 써 내려갔겠지. 그가 조용히 꺼내 보이는 마음을 멀리서나마 위로하며, 나도 위로받았다. 미지근한 현미 녹차 한잔하며 읽고 싶은 책이다. 익숙하고 부드러운, 다정한 맛. 따끈하게 데운 마음을 안고 잠들면 오늘 밤은 어둡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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