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앙리 마티스, LOVE & JAZZ Review
가위질은 재미가 없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종이에 인쇄된 미미의 옷을 오리다가 흥미를 잃고 던져두곤 했다. 둥그렇게 휘어지는 미미의 겨드랑이와 손가락 사이 사이는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했다. 새끼손가락에 흠집이라도 나면 기분이 상해서 가위를 내려놓고 옷 입히기 '스티커 세트'를 사러 나갔다.
당시의 싫증은 아이의 단순한 변덕이 아니라 기질이었는지, 요즘에도 완벽하게 성공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면 회피하곤 한다. 정해진 선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포기해 버리던 어린 시절에 멈춰있다. 늦었다는 생각에 포기하고, 재능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포기한다.
그러다 최근에 마티스 서거 70주년 특별전인 「앙리 마티스, LOVE & JAZZ」 전시회를 방문했다.
색채를 야수처럼 힘이 넘치게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화가였다. 1946년에 제작된 작품인 '이카루스'가 유명했다. 세계적인 거장의 작품은 얼마나 정교할지 기대가 됐다. 오뜨 꾸뛰르 드레스에 달린 보석 장식을 구경하듯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시장에 발을 들인 뒤, 전혀 다른 감상을 받을 수 있었다.
노년의 마티스는 건강이 악화하여 기존에 작업하던 회화와 조각을 내려놓게 되었다. 대신 그는 시집을 위한 작은 사이즈의 삽화를 그리거나, 종이와 가위를 필요로 하는 '컷아웃' 방식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컷아웃이란 쉽게 말해 '종이를 오리는 것'이다. 당시엔 색종이를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과슈를 종이에 직접 칠하여 원하는 모양으로 잘랐다. 앙리 마티스는 작업실 조수들의 도움을 받아 색칠된 종이를 캔버스에 떼었다 붙이곤 했다. 그는 호텔 방 안에서 원하는 형태가 나올 때까지 생동감 있는 컬러를 조합했다.
위의 삽화는 컷아웃 형식으로 제작된 것이다. 해당 작품이 포함된 아트북의 원래 제목은 「서커스」였다. 앙리 마티스는 이처럼 서커스나 민담, 항해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작품을 제작하였다. 하지만 프랑스의 출판사인 테리아드(Tériade)의 제안으로 인해 최종적으로 「재즈」라는 제목이 결정되었다. 역동적이고 리듬감 있는 시리즈와 잘 어울리는 네이밍이었다.
「재즈」는 경악할 만큼의 디테일을 자랑하는 작품은 아니다. 오려 붙인 조각들은 하나같이 제멋대로다. 예고 없이 볼록해졌다가 다시 홀쭉하게 들어가기도 하고, 멀리선 유려하게 보이던 곡선이 고개를 앞으로 당길수록 투박해지기도 한다. 마치 가위를 들고 놀이를 한 듯이 제작된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스스로의 감상이 의외였다. 어린 시절에 가위를 내려놓았던 순간의 특징들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는 작품을 보면서도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오히려 작가의 의도가 솔직하게 전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만약 정교한 만다라를 오려 붙인 그림 앞에 섰다면 감탄은 했겠지만 지금과 같은 감상은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서커스장의 열기나 긴장감, 즐거움이 생생하게 전달되는 것만 같았다.
나는 내 노력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고,
그저 내 그림들이 봄날의 밝은 즐거움을 담고 있었으면 했다.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무도 모르게 말이다.
/앙리 마티스
앙리 마티스의 목적이 정확하게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판화 드로잉 작품 위주였던 '마티스와 사랑의 시' 섹션에서 투병에 대한 고통이나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강박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모든 선들은 부드럽고 여유로워서, 마치 봄날의 반짝이는 분수대 같았다.
앙리 마티스는 롱사르, 샤를 도를레앙 등과 같은 프랑스의 유명한 서정시인들의 시집에 실릴 삽화를 그렸다. 비교적 작은 사이즈의 판화 드로잉은 육체적으로 부담이 덜 되었으며 정신을 집중하고 평화로워지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1950년에 제작된 '내가 이름을 지을 수 있는 사람...(Poemes de Charles d'Orleans)'에 첨부된 삽화였다. 문장 자체가 굉장히 낭만적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해석의 여지가 다양하다고 생각했다. 대상은 애칭을 지어 부를 수 있는 애인이 될 수도 있고, 더 직관적으로는 자식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사랑스러운 설명에 잘 어울리는 삽화에 빠져서 잠시 멈춰있었던 것 같다. 앙리 마티스가 '이름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을 어떻게 표현했을지는 CxC 아트 뮤지엄에서 직접 확인해 보자.
네 번째 섹션은 앙리 마티스의 4대손인 장 마튜 마티스의 '메종 마티스' 에디션으로 구성되었다. 메종 마티스는 2019년 프랑스 파리에 설립된 라이프 스타일 부티크이다.
앙리 마티스의 작품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가치를 이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이메 아욘, 알레산드로 멘디니, 크리스티나 셀레스티노 등과 같은 현대 아티스트들과 협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크리스티나 셀레스티노의 해석이 좋았다. 그녀는 1980년 이탈리아 포르데노네에서 태어나 베니스의 건축대학을 졸업하였다. 여러 회사에서 일하며 실내 건축과 디자인을 공부하던 크리스티나는 2010년에 밀라노로 이주해 자신의 브랜드 '아티코 디자인'을 설립하였다.
작가가 디자인한 벽지의 무늬는 앙리 마티스의 <가지가 있는 실내>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이국적이면서 기하학적인 원작의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적절하게 재해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의 사진에서 벽면을 장식한 벽지가 바로 크리스티나 셀레스티노가 작업한 것이다.
첫 번째 섹션인 '하우스 오브 마티스'에서는 거장의 작업실에 초대받은 기분이 들었다. 마티스가 앉아있던 것처럼 구성된 스튜디오 공간을 구경하며 전시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이동한 두 번째 섹션 '재즈'에서는 오랜 습관을 털어낼 수 있었다. 그 공간에서는 삐뚜름한 선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작가의 개성을 살리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었다.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정교하게 완성된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사실을 눈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마티스의 노년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투병 생활로 인해 전과 같은 기량을 보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어 나간 작업들이 모여있는 섹션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컷아웃 작업물은 꾸준히 인정받아 후대에 전해지고 있다.
그 증거가 바로 네 번째 섹션의 '메종 마티스'였다. 가치를 인정받고 재해석된 것은 앙리 마티스가 건강하던 시절에 그린 유화 그림 뿐만이 아니다. 마르타 바코우스키의 '캐논 대형 접시'에는 「JAZZ」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컷아웃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던 석호와 삼각형들이 디자인되어 있었다.
그리고 앙리 마티스가 인생의 후반부까지 예술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을 수 있던 이유는 세 번째 섹션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마티스와 사랑의 시'에서 예술 자체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다. 흘러가는 대로 드로잉 된 선들은 유연하고 또 편안했다. 말년의 마티스는 몸은 쓸모를 다했을지라도 영혼만큼은 노쇠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은 '사랑하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란 듯이 성공하지 못할 것 같다는 예상에 겁을 먹고 피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주위의 인정을 떠나 예술혼을 불태우는 것 자체를 즐겼던 것처럼 보이는 앙리 마티스에게서 얻은 깨달음이다.
오늘부터 다시 가위를 들고 종이를 오려보려고 한다. 완벽한 모양으로 가위질을 하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이 즐거웠다면 의미가 있을 테니까.
* 아트인사이트(https://www.artinsight.co.kr/)에서 티켓을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