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라는 이름의 욕망

매거진을 시작하며

by 이예은

내 인생을 견인하는 가장 지배적인 욕망은 표현욕이 아닐까. 뜬금없이 삶의 이유를 고민하던 어느 날, 이런 결론을 내렸다. 표현욕은 식욕이나 수면욕처럼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욕구는 아니다. 그러나 만약 신이 내게서 자신을 표현할 모든 수단을 앗아간다면, 내 영혼은 반쯤 죽은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불특정 다수에게 얼굴을 드러내거나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다. 내게 표현은 조금 더 조용하고 일상적인 활동을 의미한다. 물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가 나를 알아주기 바라는 마음에 평소보다 많이 떠들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사적인 대화에는 언제나 주관적인 필터가 작용하므로, 상대에게 전달하는 내 모습은 ‘있는 그대로의 나’보다는 ‘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에 조금 더 치우쳐 있다.


SNS 활동도 빼놓을 수 없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올리는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내가 간직하고 싶은 세상의 모습을 표출한다. 일상생활에서는 또 어떤가. 입는 옷과 화장, 헤어스타일은 그 순간 연출하고 싶은 이미지, 혹은 이상향을 드러낸다. 민낯에 수수한 차림으로 외출할 때마저 어쩌면 나는 ‘치장에 관심 없는 나’를 주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표현의 의미를 조금 더 확장한다면, 사소한 말투나 행동거지에서 시작해 소비와 취미 생활, 심지어 직업 선택까지도 ‘사회를 향한 내 존재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글쓰기 역시 표현욕의 연장선상에 있다. 내면 탐구나 생각 정리만이 목적이라면 굳이 공개된 SNS에 올리거나 책으로 출간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글이라는 수단을 통해 내 미미한 존재를 아득한 세상에 알리고, 미지의 독자를 찾아가 말을 건다. 그리고 그 순간 살아있음을 느낀다. 밥벌이를 위해 일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감각이다. 글을 잘 써서가 아니다. 내 문장과 표현은 기발하거나 신선하지도 않고, 오타와 맞춤법 실수도 잦으며, 어휘력과 논리도 부족하다. 그래서 ‘내 글이 좋았다’라는 후기를 만나면 ‘내가 글을 잘 썼구나’가 아닌, ‘아, 이 분은 어딘가 나와 결이 닮은 분이구나’라고 생각하고 반가워한다.


글은 내가 가장 애정 하는 표현 수단이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했고, 자연스레 늘 무언가를 썼다. 10대 학창 시절에는 날 것 그대로의 상상력을 발휘해 단편 소설이나 시를 끄적였고, 매일같이 친구들과 손편지를 주고받았다. 20대에는 블로그를 통해 직장 생활과 일본 유학 생활을 기록했고, 30대인 지금은 직장에 다니며 출간 원고와 브런치 글을 쓴다. 언제나 생각처럼 술술 풀리지는 않지만, 그 괴로움도 사랑의 일부라 믿는다.


평범한 사람도 일정 분량의 원고만 완성하면 얼마든지 책을 낼 수 있는 시대다. 출판사 투고에 실패한다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자비로 출판하는 방법도 있다. 더 이상 출간은 소수의 특권이 아닌, 의지와 실천의 문제다. 나 역시 시대의 특혜를 입어, 지금껏 두 권의 책에 공저자로, 한 권의 책에 단독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세나북스라는, 일본 문화와 언어에 관한 도서를 출간하는 1인 출판사를 블로그로 우연히 알게 된 덕분이다. 하지만 전업 작가를 넘볼 정도의 경제적 보상은 따라오지 않았다. 3권의 책에서 얻은 인세는, 내가 글을 쓰는데 투자한 시간을 최저 시급으로 환산한 금액보다도 한참 모자라다. 일부 베스트셀러 저자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무명작가의 사정은 비슷하리라.


얼마 이상의 인세, 몇 번의 중쇄, 베스트셀러 순위 등 정량적 목표를 정한다면 금방 좌절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꾸준히 쓰는 삶을 목표로 삼았다. 영향력 있는 작가가 되지 않아도, 작문의 대단한 경지에 오르지 않아도 좋다. 어차피 특출 난 재능을 타고나지도 않았고, 그 부족함을 채울 만큼 많은 시간을 쏟을 수도 없다. 나는 그저 노동에서 해방되는 시간에 쓰고 싶은 욕망을 해갈하고, 내 글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인생을 꿈꿀 뿐이다. 일상의 여러 조각을 모아 세 권의 브런치북을 만든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제9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이 기뻤던 이유는 (상금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치 세상이 내게 ‘계속 써도 된다’고 응원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가, 그리고 내 삶이 밖으로 꺼내 보여줄 가치가 있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그리고 이 기회는 나를 비롯한 브런치 작가가 열렬히 갈망하는 것이므로, 초고를 완성하고 나면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를 통한 출간 과정을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거진의 제목은 폭넓게 <글쓰기에 관한 글쓰기>로 정했다. 비록 글쓰기 전문가도 아니고, 이렇다 할 노하우도 없지만, 평범한 사람이 책을 펴내는 특별한 경험을, 그리고 글을 쓸 때 드는 다양한 생각을 공유하고자 한다. 비슷한 길을 걷고 계신 분들이 지치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동반자가 있음을 알리고 싶은 마음도 크다. 그래서 다양한 삶이 책으로 쏟아져 내 독서 경험도 풍부해진다면, 이보다 더한 이득이 어디 있겠는가.


대표 이미지: Photo by JJ Yin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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