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고철 덩어리처럼, 생활이 윤기를 잃어 갈 때마다 이런 물음이 떠오른다.
떠날 때가 되었나?
10대 때부터 2~3년 주기로 나라에서 나라로, 대륙에서 대륙으로 거처를 옮기며 자란 사람은 쉽게 버리고 쉽게 시작하는 어른이 되고 마는 걸까. 20대까지 내 삶은 줄곧 그런 패턴을 보였다. 새로 시작하고 싶은 바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 유학이든 이직이든 실현 가능한 방법을 조사하고 망설임 없이 도전했다. 단 한 군데에서라도 합격 통지를 받으면, 어떻게든 정착금을 마련해 떠나면 그만이었다. 게임의 리셋 버튼을 누르듯, 그토록 간단하게.
마지막으로 그 결단을 내린 것은 서울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일본 유학길에 올랐을 때다. 대학원 논문을 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일본이 또 하나의 임시 거처에 불과할 줄 알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간 소개팅 자리에 미래의 남편이 앉아 있지 않았다면, 정말 그랬을 것이다.
어쨌든 나의 20대는 결혼으로 막을 내렸고, 늘 땅 위를 부유하던 삶도 비로소 뿌리를 내렸다. 어쩌다 보니 살아본 국가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이, 두 번째로 오래 산 곳이 되었다(이대로 가다가는 우리나라에서 산 기간도 조만간 추월할 기세다). 그리고 30대 중반에 접어든 지금, 나는 우여곡절 끝에 '이만하면 됐다' 싶은 직장을 찾았고, 일본 생활에서 얻은 글감 덕에 ‘작가’라는 과분한 명칭도 얻었다. 늘 아낌없는 지지와 사랑을 보내주는 내 영혼의 집, 남편도 빼놓을 수 없다. 먼 미래야 언제나 미지의 영역이지만, 얼마 남지 않은 40대에 집과 차, 고양이가 있는 삶을 누리기 위해 타국에서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외식이나 여행, 쇼핑 등 적절한 보상도 쥐어 주면서.
대단히 풍요롭지는 않지만, 어쩌면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생활. 일견 번듯해 보이는 삶이 권태에 잠식당한 것은 고대하던 고향 방문 직후였다. 코로나 시대를 건너, 자꾸만 약해지는 듯한 부모님과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드는 친구들, 그리고 이제는 일본보다 더 신선하게 다가오는 우리나라의 풍경을 마주하다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결핍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어느 나라에서든 꼭 한두 명의 인연을 움켜쥐고 나왔다. 그들 중 대부분이 이제 고국으로 돌아갔으니, 한국에 가면 나 자신이 완성되는 기분이다. 나의 유년기를 기억하는 가족뿐 아니라, 중학교와 고등학교, 대학교, 전 직장, 유학 시절 등 조각조각 흩어진 과거를 붙들고 있는 친구들이 있기에. '내 사람'인 그들 앞에서는 연기나 부연 설명도 필요하지 않고, 대화의 주제 역시 무한하다.
내가 지금 일본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한국에서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난 뒤 몇 개월 동안 나는 타지 살이의 허무함에 사로잡혔다. 처음 일본에 온 것은 분명 내 의지였는데, 지금은 어떤가. 결혼을 했으니 배우자의 동의 없이 거취를 멋대로 옮길 수도 없고, 나이와 스펙을 고려해도 지금보다 나은 직장을 한국에서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서울의 악명 높은 집값은 또 어떻게 감당할 텐가. 철이 들어서일까, 겁이 늘어서일까. 그동안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한 번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던 현실적인 문제가 화수분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 음침한 무력감과 패배감에 지독히 시달리던 나는 결국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떠날 용기만 부렸지, 안주할 용기는 단 한 번도 진심으로 내어 보지 않았음을. 당장의 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언제까지고 한 삶을 무너뜨리고 다시 일구기를 반복할 순 없는 법이었다. 이제는 봉오리를 막 내밀기 시작한 삶을 믿고 가꿀 시간이 아닐까.
떠날 용기를 향한 찬사는 넘쳐나지만, 안주는 어쩐지 지루한 어감을 풍긴다. 사실, 모든 것을 버릴 용기만큼 정착할 용기도 칭송받아 마땅한데 말이다. ‘한 곳에 자리를 잡고 편하게 살다’라는 안주의 첫 번째 정의는 곰곰이 생각해 보면 꽤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세상이 품고 있을 다른 기능성에 흔들리지 않고, 지금 나를 지탱하는 생활을 매일 선택한다는 뜻이니까. 나는 이것을 지켜낼 용기라고 부르기로 했다. ‘저기’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여기’를 지키는 것이라고.
정신 승리에 성공한 후, 한동안 업데이트하지 않은 일본 여행 원고 파일을 열었다. 아직 가보지 않은 주변 도시와 읽어야 할 서적, 공부해야 할 정보가 무궁무진했다. 지난가을, '언제 또 한국 와'라고 묻는 친구들에게 일본의 황금연휴가 있는 봄에 가겠다고 답했지만, 어쩌면 세 번째 책이 나온 다음으로 미뤄야 할지도 모르겠다.
반짝, 하고 일상이 자그마한 빛을 되찾은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