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나와 '밀당'을 하나 싶었다. 공식 발표보다 조금 더 빨리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그리고 당선작이 <일본 콜센터에서 520일>이란 사실을 알고 나서는, 인생 참 모를 일이라고 생각했다.
2020년 초 프리랜서로 자리를 잡아보겠다는 치기 어린 도전이 실패한 후, 안정적인 수입원을 마련하고자 들어간 곳이 여행사 콜센터였다. 세나북스와 펴낸 <다카마쓰를 만나러 갑니다> 이후 차기작으로도 여행 에세이를 준비 중이었기에 같은 업계에 머물고 싶었던 것이다. 몇 달 뒤, 신종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전 세계 하늘길이 막힐 줄은 꿈에도 모른 채.
그곳에서 상상도 못 했던 전개에 휘말리며 얼굴 모르는 외국인의 화풀이에 시달리는 사이, 20대에 안전 이별한 줄 알았던 우울감이 다시 나를 집어삼켰다. 글 쓰며 사는 꿈은커녕 생존 욕구마저 희미해진 탓에 콜센터를 뛰쳐나온 게 불과 몇 개월 전이다.
그리고 나는 늘 그래 왔듯 당시의 경험을 글로 남겼다. 콜센터도 여행 업도 아닌 다른 일자리를 구했을 때는, 다시 책을 쓸 수 있으리란 기대를 반쯤 접었던 것 같다.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해주시는 소수의 독자 분들과 지인에게는 ‘계속 쓰겠다,’ ‘지금도 쓰고 있다’ 말했지만, 어쩌다 책 한 권 내본 직장인으로 사는 것도 내심 나쁘지 않으리라 여겼다. 서점 어딘가에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이 꽂혀있는 것만으로도 꽤 근사한 일이니까. 얼마 전 대본집까지 구매한 드라마 <인간실격>의 주인공, 부정의 꿈이었을 만큼.
그렇게 현실과 타협하면서 내면의 소용돌이가 잠잠해질 때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소식이 날아들었다. 작가라는 꿈을 완전히 버렸다면 지원조차 하지 않았을 공모전이므로 당연히 뛸 듯이 기뻤다. 그러나 이내 다시 불안해졌다. 기회만 생기면 단단한 현실 감각을 뚫고 튀어나오는 작가라는 꿈이 다시 내 일상을 망쳐버릴까 봐. 그러다 결국은 실패할까 봐.
하지만 다정하면서도 열정적이긴 편집부 선생님들과 화상 회의를 하며 절실히 깨달았다. 나는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걸 던져 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 불안한 행복을 언제나 원하고 있었음을.
알고 있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이 내 재능을 증명하는 타이틀이 아니란 사실쯤. 글재주보다 소재의 독창성과 시의성, 그리고 출판사의 취향이 더 큰 영향을 미쳤을 테다. 내가 일본에 살지 않았다면, 코로나 시대에 여행사, 그것도 콜센터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엄두도 못 냈을 영예다.
경위야 어찌 됐든 과분한 기회를 얻었으니, 또 한 번 속는 셈 치고 최선을 다하려 한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지난해, 매일 아침 죽음을 떠올리며 일어나 고객의 성난 목소리에 고요히 울부짖던 나를 찾아가 다독여주고 싶다. 쓰라고. 더 쓰라고. 너에게 1년 뒤 상상도 못 할 행운이 찾아갈 테니.
마지막으로 나처럼 재능보다 비대한 글쓰기의 욕망을 부끄러워하며, 쓰지도 멈추지도 못하는 분들께도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는 필력이나 사유의 우열을 가리는 장이 아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열 군데의 출판사, 그리고 흙 속의 진주를 샅샅이 뒤지고 있을 더 많은 출판인에게 손쉽게 투고할 수 있는 기회다.
아무것도 쓰지 않으면, 당연히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무엇이라도 쓴다면, 눈먼 행운이 불시착할 미끼라도 되지 않을까.
덧. 콜센터 이야기는 목차를 새롭게 구성해 처음부터 다시 쓰고 있어서, 당분간 브런치 업데이트가 어려울 듯합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원고가 완성되고 나면,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선정 이후 벌어지는 일에 관해서도 써보려 해요. 궁금해하실 분들, 그리고 분명 그중에 계실 다음 수상자분들을 위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