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다'와 '쓸 수 있을까' 사이에서
직장인으로서 하루하루 비슷한 시간에 같은 자리에 앉아 기계처럼 정해진 업무를 수행하고는 있지만, 머릿속은 늘 퇴근 후 할 일에 관한 생각으로 어지럽다. 그중에는 생산적인 계획이나 다짐도 포함되어 있지만, 대부분은 하등 도움도 되지 않는 막연한 걱정. 원인으로는 내 욕심에 수주한 번역이나 기사 마감도 있지만, 역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책이다.
문화에 관한 소소한 담소를 곁들인 여행 에세이를 쓰고 있다. 무려 2019년부터. 팬데믹이라는 악재로 모든 취재 활동이 중단되고, 얼떨결에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원고는 한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지난해 <콜센터의 말>을 펴낸 후에야 집필을 재개해 어느덧 초안의 70퍼센트가 완성된 상태. 계획대로라면, 여름에 마감해 가을에는 선보일 수 있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그래도 너 정도면’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이 맞다. 첫 책을 함께한 독립 출판사와 기획 단계에서부터 논의했으니, 출판사를 찾아 헤맬 걱정이 없다. 게다가 행여 출판 시장에서 외면받더라도 회사라는 안정적인 수입원이 있으니, 생계에 타격도 받지 않는다(취재에 지출한 비용은 전액 사비지만,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어차피 와인값으로 나갔을 테지). 그런데, 나머지 30퍼센트를 채워 나가는 내 마음은 왜 이토록 무거울까. 마치 결승선에 가까워질수록 동력이 사라지는, 참담한 상황을 맞닥뜨린 마라톤 선수처럼.
가장 큰 이유는, 두 권의 책을 내며 글에 대한 자신감이 오히려 하락했기 때문이다. 첫 책을 쓸 때는 그저 세상에 내가 만든 책 한 권이 나온다는 흥분이 부끄러움을 마비시켰다. 얼떨떨한 심정으로 출간한 두 번째 책 역시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라는 스포트라이트에 도취한 채 마감일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글은 문장이나 어휘력보다 이야기의 고유성에 더 큰 가치가 있다고 믿지만, 절대적인 수준의 차이는 무시할 수 없다. 감히 넘볼 수 없는 경지에 오른 수많은 고수들의 책을 읽으면, 내 책도 그와 비슷한 가격대에 판매되리란 사실이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게다가 4년 전에 쓴 원고를 들여다보면, 지금과 톤이나 스타일이 놀랄 만큼 다르다. 아직 초안조차 완성하지 못했지만, 탈고한 후에도 기나긴 퇴고가 기다리고 있음이 자명하다. 물론 감사하고 행복한 고통이지만, 몸이 기억하는 ‘아는 맛’이라 더 무서운 것도 사실.
마지막으로 취재에 대한 부담도 무시할 수 없다. 아직 네 도시를 더 다녀와야 하고, 한 번의 방문에 한 편의 글이 뚝딱 완성되는 일은 드물기에 실제로 몇 번을 더 가야 할지는 알 수 없다(이미 재방문이 예정된 곳만 두 군데다). 운동을 싫어하는, 지극히 하찮은 체력을 보유한 회사원으로서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시간적, 체력적 타격이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올해 안에 이 책을 마무리 짓고 싶은 이유는, 모순되게도 당분간 책을 쓸 생각이 없어서다. 출간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리는 대신, 글쓰기 본연의 즐거움에 집중해 다양한 분야의 글을 연습하고 싶다. 여행이라는 특별한 경험 대신 평범한 일상에서 얻은 특별한 발견이나, 에세이로는 털어놓기 힘든 자전적 이야기를 각색한 소설 같은. 출간 후로 미뤄진 이 모든 일들에 마음껏 뛰어들기 위해서라도, ‘막판 스퍼트’를 내야 할 때다.
'설레지만은 않는다'라는 말은 어쨌든 '설렌다'라는 뜻이고, ‘쓸 수 있을까'라는 불안은 결국 '쓰고 싶다'라는 욕구가 집어삼키기 마련이다.
눈치채셨을지도 모르지만, 요즘 브런치는 간혹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을 때, 우울감을 글로 해소하려 찾아오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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