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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은 Jul 19. 2023

나라는 사람

일관되게 모순적인

인정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누군가로부터 내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한다. 당연히, 험담이나 악의적인 소문은 예외다(물론 궁금은 하겠지만).


아득한 유년 시절에는 신문에서 띠별 운세를, 조금 큰 뒤에는 십 대 잡지에서 별자리 운세를 보았고, 온라인에서 떠돌기 시작한 각종 심리테스트에 심취한 적도 있다. 혈액형에 따라 사람의 성격을 네 종류로 구분하던 시절에도 겉으로는 동의하지 않는 척하며 내심 신경 썼고, 성인이 되어서는 마음이 어지러울 때마다 사주 카페를 찾았다(심리 상담을 받았어야 했다). 몇 년 전부터 혈액형을 대체한 MBTI 열풍에는 편승하지 않으려 했지만, 어느새 셀프 진단을 하고서 유튜브나 '팩폭' 글을 찾아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승부욕이 강하고 용의주도하다는 뱀띠, 낙천적이라는 사수자리, 소심하다는 A형, 이름에 흙과 불이 부족한 1989년 11월 28일 생(여전히 금수목만 좋아한다), 그리고 '예언자형'인 INFJ와 '전략가형'인 INTJ를 넘나드는 MBTI. 이 모든 결과를 통합하면 나라는 사람을 정의할 수 있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사람을 정의하기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상황에 따라 조금씩 바뀌거나, 적어도 다르게 행동할 줄 아는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 주변 사람들에게 들은 내 모습을 종합하면, 조금은 윤곽이 그려질까.


부모님은 내가 고집이 세고, 경쟁심이 강하며, 돈을 좋아한다고 했다. 친구들에게는 '추진력이 강하다'라던가 '계획적이다'라는 평가를 자주 듣는다. 함께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남편은 입버릇처럼 '(장난스럽게) 못 돼 처먹었다'와 '착해 빠졌다,‘ 그리고 '귀엽다'라는  말을 반복하는데, 그다지 신빙성이 없다.


최근에 도쿄에서 만나 이틀을 함께 보낸 오지윤 작가는, 몇 번이고 나를 '단호하다'라고 표현했다. 과분한 의미로.


그녀의 말하기는 반듯함을 넘어서 단호할 때도 있었다.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말하거나, 그만큼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부정하거나, 문장의 맺음이 확실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커리어도 도전도 모든 게 이유가 분명하고,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녀는 많은 문장에서, ‘저는 제가 행복한 게 제일 먼저예요’라는 말을 붙였다. 다른 사람보다도 더 많은 양의 선택을 하며 살아왔을 그녀는, 자기 자신이 누군지 오롯이 느끼며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원문 링크:  [오지탐험] 비주류로 사는 게 익숙해요


오지윤 작가와는 제9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를 함께 완주한 인연으로, 인스타그램과 카카오톡으로만 1년 넘게 연락을 했다. 그러다 몇 주 전 도쿄 긴자에서 고대하던 첫 만남을 가졌다. 동갑내기라는 공통점 덕분일까, 아니면 그동안 서로의 책을 읽으며 내적 친밀감을 다진 덕분일까. 그녀를 향한 나의 호감도는 만나기도 전에 정점을 찍어 버렸고, 급기야 만난 지 5시간 만에 호텔에서 한 침대를 공유하기에 이르렀다(자세한 이야기는 원문 링크에서 읽을 수 있다).


그녀의 뉴스레터 시리즈인 <외노자 신세자랑>을 쓰기 위해서였겠지만, 주로 지윤 작가가 대화를 주도했다. 나는 질문에 성실히 대답하다 가끔 ‘작가님은요?'라고 되묻는 식이었다. 평소 사교성도 떨어지고, 낯가림이 심한 나는 어쩐 일인지 흔쾌히 성장 배경과 지금 하는 일, 향후 계획, 가족 관계와 결혼 과정 등에 걸친 광범위한 개인사를 낱낱이 털어놓았다.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면 곤혹스러울 내용도 포함해서(물론 알아서 덜어내주셨다). 나중에 뉴스레터를 읽어 보니, ‘내가 저렇게 보이기도 하는구나' 혹은 '내 말을 저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구나'라고 놀라게 되는 지점이 적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주변 자극에 예민하고 내면의 흔들림이 많아, 단호한 어조와 행동으로 약함을 감추곤 했다. 20대 초반에 내린 결정을 아주 오랫동안 후회한 적이 있어(지금은 그 후회를 후회한다), 이제는 한 번 선택한 일은 덤덤히 흘려보내려 한다.


‘내 행복이 먼저’라는 말도 그렇다. 아무리 소중한 사람이라도, 타인이 내 삶의 중심축이 되었을 때 얼마나 휘청이기 쉬운지 알아 버린 탓에 만트라처럼 반복하는 말이다. 그런데, 내가 이런 태도로 십여 년을 살았다면, 더 이상 흉내라 부르기에도 무리가 있는 게 아닐까.


결국 지윤 작가의 글에 나오는 퍽 이상적인 내 모습도 진실이고, 내가 느끼는 초라한 내 모습도 진실이라는 마음 편한 결론이 이르렀다.


우울한 마음도 기쁜 마음도 모두 내 마음이듯이,

독립적이지만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향도,

회식과 스몰토크는 질색이지만 마음이 가는 사람과는 첫날부터 숙소를 공유할 수 있는 능청스러움도,

계획 세우기를 누구보다 좋아하지만 가끔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변덕도,

예민하고 걱정투성이인 마음과 달리 쿨하기 그지없는 말투도,

일관적이게 모순적인 내 모습이다.


그리고 나조차 나를 다 알 수 없다는 한계가,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내 마음에 귀 기울이게 하는 원동력이라 믿는다.


대표 이미지: 사진: UnsplashRyan Hollo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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