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마쓰를 만나러 갑니다> 개정판
하루만 더…
4박 5일간의 다카마쓰 취재를 마무리하며, 나는 먹구름처럼 밀려오는 아쉬움에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팬데믹 시대를 건너 5년 만에 걸음 한 나를 변함없는 얼굴로 반겨준 도시. 울창한 가로수와 물 내음 나는 방파제, 한때 나의 허기와 갈증을 채워 주었던 식당, 들어가 보지는 않았어도 눈에 익은 간판, 그리고 옷이나 책, 기념품 따위를 살지 말지 고민했던 수많은 상점이 오랜 친구처럼 속삭이는 듯했다. ‘우리는 여기에 잘 있었어’라고…
다카마쓰에 도착한 첫날밤에 찾은 유리 등대 세토시루베는 여전히 선명한 붉은빛을 자랑했다. 날씨가 흐렸던 탓인지 예전처럼 사진 찍는 사람들은 만날 수 없었지만, 하루를 마무리하며 등대 주변에서 산책과 조깅, 낚시를 즐기는 일상적인 풍경에 잊고 있던 그리움이 몰려왔다.
리쓰린 공원을 거닌 둘째 날 아침에는 예정에 없던 소나기를 만났지만, 울창한 나무가 제법 듬직한 우산이 되어 주었다. 다실인 기쿠게쓰테이에서 빗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 말차를 들이켤 때는 세상 시름이 모두 잊히는 기분이었다. 방 안에 작은 새가 들어와 좀처럼 출구를 찾지 못하자 기모노를 입은 직원들이 가여워하며 창문이란 창문은 다 여느라 소란스러웠던 기억도 정겹게 남아 있다.
또, 오카다 씨가 아닌 다른 직원이 위스키를 건네주던 나카조라에는 여전히 스마트폰을 보는 손님보다 종이책장을 넘기는 손님이 많았다. 교복을 입고 코코아를 마시며 만화책을 보던 옆자리 남학생은, 오늘도 그곳에 있을까.
마루가메에서 들른 우동 집 나카무라なかむら에서는 휠체어를 탄 할머니와 나란히 앉아 식사했는데, 나에게 예쁘다고 말을 거는 눈빛에서 돌아가신 친할머니가 겹쳐 보였다. 오늘도 어디에선가 맛있는 우동 한 그릇을 잡수고 계시기를. 함께 병맥주를 나눠 마신 야키토리 한스케半助의 이름 모를 단골손님과 취향에 맞는 칵테일을 정성껏 골라 주시며 마지막 밤의 말동무가 되어 주신 칵테일 바 La Camarade 사장님께도 감사드린다.
쇼도시마에는 늘 부채감이 있다. 본문에 소개한 올리브 공원 외에도 특산품인 소면이나 간장을 맛보고 제조 과정까지 체험할 수 있는 시설, 하루 두 번 썰물 때만 모습을 드러내는 신비로운 바닷길 엔젤로드エンジェルロード, 일본 3대 계곡으로 꼽히는 장엄한 간카케이寒霞渓 계곡, 그리고 섬마을에 부임한 여교사와 제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스물네 개의 눈동자(1954)>의 오픈 세트장 등 풍성한 즐길 거리를 갖추었지만, 내 부족함 탓에 책에서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 섬의 규모가 크고 버스가 자주 오지 않아, 욕심 많은 여행자라면 관광버스나 렌터카가 적합하며, 나처럼 평생 운전을 해보지 않았거나 관광버스에 오를 용기가 없다면 1박을 추천한다.
5년 전, 20대를 졸업하며 다카마쓰에서 한 달간의 방학을 보내고 이 책의 초판을 펴냈다. 서른 무렵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자신에게 낙담했듯, 30대 중반에 막연히 이뤘을 거라 기대한 경제적, 정서적 안정감도 환상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다. 여전히 진로는 불안하고, 책은 출간할 때마다 나의 부족함만 들키는 심정이다. 그러나 예전처럼 가가와현의 섬과 도시를 걷고 있으니, 살아가는 고달픔은 잊히고 살아 있는 환희가 되살아나 요동쳤다.
태어난 곳은 있어도 진득하게 살며 정든 고향이 없는 내게, 다카마쓰는 각별한 장소다.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하고 든든한 장소가 하나만 있어도 세상이 살만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려 주었기에. 이 글을 읽어 주신 분들이 자신만의 다카마쓰를 만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2024년 5월
이예은